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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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장강명 작가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됐다. 종종 그런 식으로 책을 고른다. 읽는 느낌이 맞아 떨어진 작가가 추천한 책을 사들곤 한다. 이 책은 아쉽게도 이미 절판된 상태다. 2018년도에 발행된 책이 벌써 절판이라니. 나만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결국 알라딘 중고로 새 책에 맞먹는 돈을 주고 샀다. 돈에 대해 여유를 두면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표본으로 살고 있다.

 

오랜 세월 가구점을 운영하다가 접고, 버스기사를 직업으로 삼은지 5년 차 되던 해에 써내려 간 글들은 엔틱과 빌트인 가구를 반복하고 있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저자만의 필력의 맛을 안 이상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플롯이 짜인 글이나 숲의 형태를 하고 있지도 않아도, 저자 특유의 옷을 입고 있어 난잡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내용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나, 불쑥불쑥, 그것도 좀 자주 튀어나오는 저자의 손맛이 마음에 들었다. [정류장의 승객은 샘물처럼 고인다] 뭐지? 이런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글은? 그렇다고 이게 끝맺는 말로 가기 위한 장치도 아닌데 끝까지 읽게 되는 이 보기 좋고, 소리 좋은 글들에 약간은 반하기도 했다.

 

반면, 내용은 오히려 반감을 사기에 충분한 것들이 많았다. 친절하지도 오히려 난폭하기까지 한 버스기사의 이야기와 거친 말이 갑자기 툭 튀어 나오기라도 하면 불편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승객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은 나는 저자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했다. 할 수 없다. 애초에 나는 저자의 입장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 채 읽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동의하지 못하면 뭐 어떤가. 평소 내가 수긍하고 열렬히 동화된 주장들이 얼마나 있는가. 그는 그대로의 버스기사 생활을 이야기하고, 나는 불편한 버스를 자꾸 안 타게 되는 승객의 입장에서 읽고, 그리고 그것이 하나가 되기도 했다가 둘이 되기도 하는.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고 약간은 싸우자는 식으로 써 내려간 글이 밉지 않았다. 누구를 대상으로 삼고 글을 썼는지조차도 모르게 솔직하게 쓰려고 한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자신을 벗 삼아 일상을 깁고 이야기 치료를 하듯이 내면을 치유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또 다른 성장을 의미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아직 거기에 머물러 있는 듯도 하다. 꼭 성장을 하고 앞으로 뛰어가야만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쓰여질지 모르는 인생의 지도가 있어서 행복이라는 것을 찾아 헤메고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들의 많은 좌표들이 조화되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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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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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임경선 저자의 [평범한 결혼생활]을 읽었다. 이십여 년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평범한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주문했나? 책에는 만난 지 3주 만에 결혼하고, 장문의 청첩장을 썼으며,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 오랜 기간 자신의 별난 성격에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저자가 있었다. 그렇다. 이 책에는 평범한 결혼생활이 아니라, 평범하지 않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저자가 있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자신에 대한 자아도취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남편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관대함을 대놓고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는 보수적인 성향이 눈에 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런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면 단 한번도 꾸준히 평온했던 시간이 없었다.] 이러한 면을 대변하는 핵심문장이다. 모두의 인생이 평온하지 않다. 그러나 평온하지 못한 이유는 제각각이다. 저자는 객관적인 자기를 바라보지 못함으로 인해 평온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덕분에 나도 내 8년 결혼생활의 현재를 잠시 생각하게 됐다. 요즘 내 기분은 한마디로 쉐엣 이다. 이 침체된 기분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러다 이틀 전 아이가 내 핸드폰을 숨겨놓아서 하루 종일 못 찾은 일이 있었다. 별거 아닌 일이 기름을 붓는 꼴이 되어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불러왔다. 덕분에 한밤중에 미친 듯이 청소를 하고, 지칠 대로 지쳐 잠이 들었다.

어제 남편이 퇴근 시간에 전화를 했다. 평소와 다르게 일찍 온다고 했다. 퇴근을 하고 아이 하원을 한 뒤,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 때 내 곁으로 걸어와 꽃 한 다발을 내미는 남편.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홀로 긴 싸움의 연속에서 처음으로 남편이 손을 내밀었다.

당신 고생하고 있는 거 내가 다 알고 있어’. 그 위로 한 줌이 필요했던 것이다. 원인도 이유도 모른 채 곪아가던 내 마음에 연고가 발렸다.

결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는, 밀집되고 수없이 접촉하는 밀착된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나도 모르게 숨 쉴 곳을 발견하곤 한다. 숨 쉴 수 없이 답답한 곳이 때론 숨을 트이게 해주는 곳.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서 불쑥 내민 막대기에 감격하기도 하는 곳. 거기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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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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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56일 목요일

The April Bookclub

 

소설가의 일

 

김연수

 

책 전체에 대한 소감은 잘 썼다이다. 그래서 잘 봤다. 글에 예의를 지켜가며 바른 자세로 써내려간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책 초반부터 밑줄 그을 문장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그러다 이내 밑줄 긋는 것을 멈추었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책 대부분이 밑줄을 그어야 할 문장이었다.

 

나는 소설가가 될 생각이 없다. 너도 나도 소설가가 될 생각은 없지만, 누구나 글 한 자 쯤은 쓰게 되어 있는 세상을 살고있다. 그리고 이왕 쓰는 거 잘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된다는 절차적 이야기보다는 그 이면의 내용을 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작가가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소설가 김연수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강의하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좋은 글을 읽고 싶다면, 저자의 자세를 배우고 싶다면, 굳이 소설가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일말의 걱정도 없이 그의 글을 실컷 만나는 것을 추천한다.

 

저자는 글쓰기 공식, 핍진성과 같은 것들을 반복하면서 외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되풀이해준다. 소설가는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야아 한다. 그리고 있을 법하지만 그렇지 않을지까지는 고민해도 되지 않는 핍진성을 가진 이야기의 주인공에 생고생을 시키면, 그리고 어떻게라는 의문을 가지고 글을 이어나가면 그것이 소설이다. 예를 들어, [감각적으로 구성된 캐릭터에게 욕망을 부여한 뒤에 방해물로 그 욕망을 실현되는 것을 저지하면 이야기가 발생한다던 그 공식. ······ 고생길이란 보고 듣고 느낄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불우해진 중생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간절히 원하건만 세상의 갖은 방해로 그걸 얻지 못하는 과정을 뜻한다].

 

거기에 소설가가 되는 것은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인생을 바라보고 보듬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작업이라는 것을 여러 문장에서 보여준다. 그런 글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해 보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글들이 품고 있던 이야기를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소설가에게 현재란 지금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니까 지금 뭔가를 쓰고 있다면, 그는 소설가다. 그러니 일단 써보자.

누구나 죽기 전에 한번은 소설을 쓰는데, 그게 바로 자기 인생의 이야기다. 우리에게 자신이 경험한 시간의 흐름을 소설로 보여줄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그는 소설가가 된다.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따라서) 자기 인생이 어디서부터인가 잘못됐다고 해도 이야기의 관점에서는 별문제가 안된다. 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인생의 묘미는 뭔가 일이 벌어지는데 있으며, 그러고 나면 예전과는 다른 삶이 전개되는 데 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그 중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그리고 그것을 꿈꾸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나 대표할 수 있는 직업군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은 글쓰기를 통해 삶에 대한 자세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바른 근성을 이끌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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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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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202156일 목요일

The April Bookclub

 

가족의 생계를 훌륭하게 책임지고 있는 미혼의 남성, 그레고르.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이지만, 다르다. 그레고르의 2층 방에는 거대한 갑충이 된 자신이 있다. 부모님, 여동생, 집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만, 더 이상 그대로일 수 없는 하루의 시작이 거기에 있다. 거대한 바퀴벌레같은 존재로 바뀌면서 가족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 그리고 어떻게 삶을 마감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요즘 접하는 글들은 은유적이다. 직설적인 글 같은데, 참으로 은유적이다. 그런 글들은 범접할 수 없는 찬란함까지 느껴진다.

 

멀쩡하던 사람이 사고를 당한 뒤, 그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말로를 떠올리게 한다. 사고 이전에 우수한 사람이었던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가족에게는 애물단지가 되고, 더 이상 사람으로서의 자신은 없는 상황. 자신만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어제까지의 환경도 없다. 그대로인 환경에서, 변화된 환경을 만나는 것.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내가 이렇게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이전의 기능을 할 수 없는 내가 되어 버린다면.

그들이 지금처럼 나를 대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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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부터 친구와 단둘이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그게 뭐가 독서모임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독서모임이다!!!!” 라고 말하겠다. 이 책의 독서모임 일원들처럼 이름있는 구성원들도 유명한 단체도 뭣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자신있게 The April Bookclub 이라고 외치겠다.

나이 서른 여덟에 모임을 시작해 1년을 잘 지내왔고, 나름 만족스럽다. 처음에는 책을 다 읽느냐 마느냐/너는 읽었네, 나는 안읽었네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안다. 책을 사서 한 줄이라고 읽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른 세상임을. 물론 정해진 책을 온전히 다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어야지하고 생각만 한 채,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날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라딘에(지금은 매주 목요일로 생각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는 일은 단순히 읽는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 다른 일들도 잘 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준다. 이렇듯 북클럽(영화 제인오스틴 북클럽을 의미있게 보고, 책모임을 묵클럽이라고 말한다)은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해 우울한 자기를 생성하던 나의 내면을 채워주고 있다. 이를 통해 과거의 나를 보듬고 치유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는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오래된 빈집을 매일매일 고쳐나가는 일과 같다. 지치고 방치되어 있던 내 마음을 어떤 날은 정성을 들여, 어떤 날은 무심한 듯 하지만, 손을 놓지 않고 토닥여 주는 것. 그리고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내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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