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극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동물이 아니기에, 관계가 필수다. 각자의 속도를 가진 채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속도의 차이가 간극을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속도에 치여 버거워하고, 누군가는 답답해 하기도 한다.

 

친구가 이마에 주름이 생겨서 고민이라고 했다. 친구가 슬쩍 보톡스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서 피부과에 가서 보톡스를 맞으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군가 이마에 주름을 없애려고 보톡스를 맞았는데 눈을 뜨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망설여진다거나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은 없는 이야기다.

나도 피부과에 갈 일 있으니까 갈거면 같이 가자고 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그러면 듣는이는 다른 사람은 보톡스를 맞고 부작용이 있지만 나는 이마의 주름이 더 신경 쓰여서 시술을 받아야겠다는 말로 알아듣게 된다. 다음날 보톡스를 언제 맞으러 갈거냐는 이야기가 나오니 내년에 집을 이사하고 맞겠단다. 그러면 아직도 네 달이 넘게 남았다. 네 달 이후에 할 일을 왜 지금 말하는 거지?

 

직장동료는 더하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도 진행중이다. 아직도 그것을 방금 한 것처럼 기억하고 있는 것이 더 대단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그리고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냥 프로젝트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진다.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지만 내실은 없는 창피한 노릇이다. 아니면 내가 너무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계속 다른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시간의 간극이다.

 

한 사람이 너무 급하다 싶으면 조금 천천히 걸어보기도 하고, 느리다 싶으면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 한 템포 업시켜 가면서 우리는 그 간극을 줄여나가야 한다. 문제는 자신의 속도를 고수할 때 온다. 상대방이 당신의 속도에 대해 언질을 주었다면 그건 오래전부터 생각해 두었다가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을 때까지 온 것이라 여기고 주위를 둘러보아야 할 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 받아주세요라고만 하지 말고 노력의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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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타인과 마주하며 살아간다. 타인과 함께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는 편한 가면이지만, 누구에게는 물에 젖은 수건을 얼굴에 올려놓는 것처럼 숨막히는 일이다

 

친구의 친구였던, 지금은 친구인 윤씨가 얼마전 연락이 왔다.

나 망상인거 같아.” 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망상과는 거리가 멀어서,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2주 후에는 진정이 됐다며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들로 인해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요동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가 이상한 건지,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회사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람들한테 욕을 먹는데도 그 자리에서 변론은 못하고 분한 감정만 들고, 돌아서서 왜 그 말을 하지 못했을 까 싶고. 그렇다는 것이다.

 

나도 매일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평생직장을 절대 그만두면 안된다고 한다. 그말인 즉슨, ‘너 거기서 나오면 절대 더 좋은데는 못 들어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다. 신입이 오자 칼로 무자르듯이 나를 버리는 상사나 그것을 등에 업고 날뛰는 신입이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고 있는 나나 모두 제정신이 아닌 곳이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쓴 글이나 회사에서 잘 지내는 법을 쓴 글은 여럿 보았다. 그러나 이보다 필요한 것은 도살장에 끌려오듯이 다닐 수 밖에 없는 회사에서 내 마음 건사하는 방법을 쓴 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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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 -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박혜진 외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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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

박혜진, 이영준, 박경리, 천정은, 양희정

민음사

 

20215월 민음사 창립 55주년, 대표 도서 55종 중 10권에 관한 편집자의 회고.

 

나머지 45권도 기다려진다.

 

저자만큼이나 편집자의 시선이 책의 가치를 올리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그리고 편집자들의 글솜씨 또한 여느 저자들과 견주어봐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책은 대표 도서 10권을 어떻게 제작하게 됐고, 편집자들이 저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존경심을 넘은 경외심이 때로는 신앙적으로, 때로는 조용한 감탄으로 기술되고 있다.

 

[책 만드는 일]을 읽는데, 모두 내가 읽어보지 않은 책이어서 산뜻하면서도 민망했다. 책에 편협함을 담아 읽기 쉬운 책들만 만나고 있었던 것 같다. 김수영, 보르헤스, 밀란 쿤데라, 앤 드루얀, 이수지 등 그들의 세계에 들어갈 숙제가 주어진 것 같다. 이 행복한 숙제를 준 이 책을 보고 민음사의 대표 도서 55종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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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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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왠지 범접할 수 없는 어린이가 어른들의 생각은 다 허상이라는 듯이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려줄 것 같은,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리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런데 책 소개를 보고 꼼지락, 머뭇거렸다. 내가 생각한 책이 아니었다. 어린이의 세계에 대해 통찰하게 하고 뭔가 기똥찬 것을 알게 될 것 같은 제목에 마구마구 끌렸는데, 독서지도하는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엮은 책이라는 말에 몽글몽글하고 따뜻따뜻한 느낌이 들어 반감이 일었다. 구매는커녕 장바구니에서도 밀려났다.

 

ㄷ ㄷ ㄹ ㄷ 독립서점에 갔다. 출판 클라스가 코로나 격상으로 예고없이 연기됐다고 한다.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완전 내 취향의 책들이 가득한 2층에 올랐다. 내가 서점을 하고 책을 들여놓아도 이럴 것 같은 내 마음에 꼭 드는 곳이다. 그런데 두둥. 하늘색 버전의 [어린이의 세계]가 있다. 아날로그 감성의 나는 오프라인 서점에서 사는 한두 권의 책에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데 하늘색 버전이라니. 거기에 책을 사면 새싹 배지를 준다니. 안 살 수가 없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였는데, 그 어린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의 시각으로만 보는 것을 조용하고 따뜻하게 타이른다. 어린이의 눈높이로 생각한다고 해도 그것을 직접 어린이에게 물어보지 않는한 그건 어른으로서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물어보자.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맞춰 동행하자. 어린이는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어른을 보고 배우는 어린이게서도 배운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어린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오늘도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어린 시절 생각만해도 진저리가 처지는 나같은 사람이 있다면, 더는 속상해 하지마라. 그것은 어린이였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어린이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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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258
이수지 지음 / 비룡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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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이수지

 

[책을 만드는 일]을 읽다가 알게 된 작가다. 이리도 유명한 작가를 미처 알지 못했다니. 그래도 그림작가들은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위대한 도구임에 틀림이 없다.

 

샀다. 어제 도착했다. 춥고 배고픈 강아지가 사람과의 인연을 통해 따뜻하고 배부른 시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은 외로움을 가르쳐준다. 울 준비를 가득 준비하고 책을 읽었는데, 내 기꺼이 울어줄 수 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여러 번 다시 보아야 더 의미있는 책일지도 몰라. 그래. 어제 3번 봤으니, 오늘 또 다시 봐보자. 분명 뭔가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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