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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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박연준 산문집

 

 

책을 많이 사다 보니, 책 사는데 들어가는 돈을 무시할 수가 없다. 책에 밑줄이나 읽을 때 드는 생각을 중구난방으로 적어놓는 타입이라 되파는 것도 안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알라딘에서 수준의 책을 구매할 때가 있다. 책에 밑줄이 없는 비교적 깨끗한 상태의 책을 정가보다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이다. 인기 있는 책일수록 중 수준보다 확실히 가격이 비싸다. 그런데 이 책을 사고 망했다. 표기에 상 수준에는 밑줄 흔적이 없어야 하는 것이거들 책의 반 정도는 밑줄이 그어 있었다. 이럴 거면 반값도 안 되는 중 수준의 책을 샀지. 하고 화가 난다. 그러다가 생각의 전환이 왔다. 밑줄이 그어 있다고 내가 책 못 읽냐. 어차피 나도 책 읽고 팔 것도 아니니까, 앞으로는 중 수준의 싼 책을 사자. 이런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누렇고, 지저분한 책을 박연준 시인의 소리로 읽으려니 여간 찝찝하지 않다.

 

[그건 삶의 축약이자, 시간의 외투가 될 수 있는 말이다. 시간은 왠만하면 외투를 벗고 싶어하지 않는다. 외투를 벗으면 많은 것들이 함부로 쏟아져나올 수 있으므로. 마음도 휑하니 뚫린 것 같았다. 내 모든 가련한 시절이 눈밭에 풀어지는 것 같았다. 슬프고 망측하다.

 

무엇이든 적당한 거리에서 숨쉬듯 받아들이는 자세, ‘되는 대로 즐겁게해보려는 자세가 좋다. 숨쉬듯 자연스럽다는 것. 그들이 자기로 충만해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대체로 타자의 생각과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가. 체면과 치레라는 말은 관계 속에서 늘 우리를 억압해 왔다. 무리하지 않고, 나답게, 편안한 자세로 사는 일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원할 줄 몰랐고, 슬픔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용할 줄 몰랐다. 한밤중 창밖에서 어슬렁거리며 뚱뚱해지는 어둠이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괴롭겠지요. 진심과 진실로 어우러진 원석 한 덩이가 당신이 가진 재료의 전부. 전부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 잠깐 한눈을 팔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 무게도, 색깔도, 높이도, 깊이도 없는 것.

 

나뭇잎은 멍들었고, 가장자리부터 올이 풀리던 하늘은 급기야 사라졌다.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들, 떠나고 싶지만 발이 묶인 것들, 동적이면서 동시에 부동인 것들, 하염없으면서 속절없는 것들은 슬픔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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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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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지음

 

좋았다. 너무나도 비참하게 겸손해서 좋았다. 누군가 이런 태도를 취하면 얕잡아 보면서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비참하게 겸손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정말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고, 멋졌다. 엄마, 아빠, 남편 필수, 영화감독, 박찬욱이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글인데 그 안에서 나름의 자부심과 스스로 따듯하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에게서 귀여움도 봤다.

 

글들이 전반적으로 위트있고, 잘 썼다. 다른 이들도 읽어봤으면 좋겠다. 글쓰기를 전문으로 배우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 곁에서 따뜻하게 성장하는 어른을 봐서 좋았다. 나는 어른의 성장이 항상 기대된다.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나서는 사람들이 성장보다는 자신이 아는 것을 확고히 하기에 여념이 없다. 어른은 그저 타이틀이다. 앞으로 늙겠습니다. 하는 전조증상을 나타내는 두 글자에 불과하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그저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자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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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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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여자가~

라는 말이 붙었다. 여성이 무언가를 하려면 여자가~라는 말이 모든 것을 막았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여자는 스스로 정해진 일만 해야 했다.

 

여자인 게 무슨 상관이냐는 행동은 지금의 편견과 많이 다르다.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리다.

 

소설의 내용은 뭐 이런 식이다. 혼기가 찼는데도 결혼할 생각을 안하고 공부를 더 하려고 한다. 그리고 진취적으로 일을 만들어서 하고, 종이라고 부려먹기보다는 함께 한다. 오히려 종은 쉬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알아서 한다. 어느 정도 신분이 있어서 그나마 가능했던 이야기였을까? 종이 아니었고, 돈이 많았고, 그럼에도 이리 여자로 사는 게 힘들었으니 말이다.

 

페미니즘, 여성이라는 주제에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내가 여자이기에 시선이 간다. 남자였다면 어떤 시선이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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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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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 지음

 

처음 읽을 때는 이것도 과하고, 저것도 과했다. 작가의 감성이 너무 짙어서 질퍽거리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갈수록 문장력도 깔끔해진다. 그래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책 중 모르는 것이 나오면 사야 될 것 같다. 그런데 아는 그림책을 가지고 쓴 글을 보면 그 정도는 아닌데 싶기도 하다. 그만큼의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다.

 

2월 중순 도배를 하고, 책을 잃어버렸다. 여기저기 정리되지 않은 책들을 하나둘 정리한 끝에 겨우 찾았다. 밑줄이나 여백에 쓴 글들이 많아서 워드에 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오랜 시간 붙들고 있었는데, 정작 여기에 담지는 않기로 했다.

 

문방구에 갔다가 공기를 샀다. 6살 아이가 공기 놀이를 한다. 그러자 아빠가 그거 아니야라고 하며 공기를 가져가 시범을 보인다. 그러자 아이가 뿔났다. 그렇다. 그게 아닌 건 없다. 가지고 놀고, 즐기면 그뿐이다. 놀이는 놀면된다. 규칙은 그다음이다. 놀이의 방식은 배우기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초등시절, 할머니 집에 가는 것이 싫었다. 어른들은 모두 어른들의 일로 바빴다. 나는 툇마루에서 신발을 신고 마당을 걸어 나왔다. 그 먼 길을 걸었다. 이 길이 맞는지 어쩐지 모르게 걸었다. 가다가 무서워졌다. 그리고 커다란 개도 만났다. 씩씩하지 않았고, 겁도 났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무사히 건너 언제 두려웠냐는 듯 내 방에 누웠다.

 

얼마 전 논문 설문지를 버렸다. 끌어안고 있기를 4, 안녕했다. 끌어안고 있을 때는 찾을 일이 없더니, 버리고 나니 쓸 일이 생겼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버리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큰 고민에 빠진다.

 

글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관통한 과거들이 떠올랐다. 어느 글에서 어떤 경로와 같은 이어짐보다는 불현듯이 올라왔다. 그림책을 소개하는 글 속에서 사유의 바다를 거닌다는 것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일이다. [무엇보다 어딘지 조금씩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이상하게 바라봐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상한 일상,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외롭지가 않다. 오해받는 사람이 제일 좋아. 세상의 언저리에서도 재미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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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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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The April Bookclub

20225월 둘째주 수요일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 고전, 철학, 에세이를 가까이 하는 대신 소설과는 담을 쌓아갔다. 밝은 밤, 바깥은 여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등 소설책은 읽지 않은 채로 쌓여 갔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나? 읽으면서 내가 왜 이 책을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독서모임에서 [시선으로부터] 이야기를 하다가 [지구끝의 온실]이 나왔고, 그래 박완서의 글 말고 신진작가들의 책도 한번 읽자. 나도 사놓고 안 읽고, 너도 사놓고 책꽂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구끝의 온실]에게 눈을 돌려 보자. 뭐 그런 흐름이었지 싶다.

 

책은 대기오염으로 인해 사람들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런 오염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찾아 헤매는 이들. 그리고 결국 작은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는 문을 열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이야기한다.

 

모스바나의 푸른 빛, 프림 빌리지에서 나온 이들이 세계 곳곳에 심어둔 모스바나로 인해 서서히 지구를 찾을 수 있었다. 프림 빌리지는 지구 끝의 온실로 사이보그 레이첼이 가꾼 식물로 숨을 쉬며 살아가던 공간이었지만, 종말이 왔다. 사이보그에게 사랑을 조작했던 이지수는 인간으로 기계를 다룬다.

 

코로나 시대와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다. 코로나를 대기오염으로 바꾸면 끔찍하고 한심한 인간들의 행동의 퍼즐이 완성된다. 코로나로 인해 삶이 피폐해졌다. 감염되어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걸리지 않은 채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 격리 해체가 되고 마스크를 벗으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코로나 전쟁의 2년 동안 될대로 되라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돈이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자연에게 숨을 돌릴 시간을 주고, 환경 보호를 위해 자신의 동선을 아꼈던 작은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지금의 해제를 알렸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해제와 동시에 산으로 들로 오염시키며 떠다니기 이전에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 한 번이라고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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