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25만 부 기념 퍼플 에디션)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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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매트 헤이그 지음/노진선 옮김

 

 

 노라는 지쳤다. 삶에 버려진 것 같았다. 삶의 끈을 놓았다. 그런데 눈을 뜬 그곳은 죽음도 삶도 아닌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는 노라는 것이 살아가면서 결정을 할 때마다 생긴 후회로 만들어진 책들이 꽂혀 있었다. 도서관에서 어떤 순간이 후회되는지에 대해 말하고, 책의 첫 장을 읽으면 그녀는 수정된 삶 속의 노라는 것이 된다.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돌아와 또 다른 노라는 연기한다. 그러다 원하는 삶을 찾았다고 여겨 그곳에 자신을 우겨 넣어보지만, 결국엔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후회의 삶이라 여겼던, 그래서 포기했던 원래의 삶도 다른 이에게 희망을 주며 의미 있게 살았던 생이었음을. 그리고 다시 그녀의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미래가 있고, 자신이 있는 삶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이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이야기를 모른 채 살아간다. 삶을 온전히 바라보고 희망을 찾으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이 단순한 명제를 놓아버린 채 살고 있다.

 

일요일 오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소파 테이블 위에 놓인 귤을 까먹는다. 무엇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속 허기를 느낀다. 도래할 시간 앞에서 막막해짐을 어찌하지 못한 채로 회사에 나가길 반복한다.

 

충분한 음식, 충분한 돈, 충분한 문화. 우리는 충분한데 행복하지 않다. 왜 그럴까? 많은 것을 가지고도 느낌 없는 길을 걸은 지 오래다. 충분한 거로는 이미 부족해져 버린 사람이 되어 버렸다. 보란 듯이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 왜 힘들어할까. 그렇게 힘들어 울다 주변을 보면, 온통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울고 있는 우물 안 개구리들. 우리는 왜 이러한 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울어대고만 있는 것일까.

 

안다. 누군가를 밟기 위해 시간을 쓰고, 짓밟는 행동을 하며 인생을 사는 이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비방과 비난이 난무하는 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지만, 마음속은 수없이 떨어져 나가고, 흘러내린다는 것을. 결국 스스로 밟혀도 되는 존재가 되도록 놓아버리고 만다. 회사에 나가기 전날이면 잠이 쉬이 오지 않고, 이 마음이 언제쯤 증발하는지 보라는 냥으로 베개를 적시는 일이 반복된다. 분명 응원하는 이들이 있는데도, 비난하는 이들로 인해 마음 졸이며 아파한다.

 

그런 때, 내가 그리고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절망으로 몰아가는 어둠 속에서도 싹을 트고 줄기를 뻗을 용기이다. 그 용기를 얻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해결책이 아닌 자신의 마음에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래서 내 일 하기에도 바빠요라고 그들을 내치기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응하게 된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공격에 싸울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될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리고 그들은 현실의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성장을 하고 내면을 치유하여 밝은 모습을 되찾아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다.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깨닫게 해줄 누군가와 장소는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한다. 힘듦을 대신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 힘듦에 경청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만 거기에서 나와라. 더는 그곳에 머물지 말아라. 우리 같이 살자.’라고 말해줄 곳. 수많은 후회와 회한의 점철 속에서 나를 일으켜 줄 불씨 하나를 바라는 것이다.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행복의 반짝임을 던져주고 싶은 소망을 하면서 나도 다시 삶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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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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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처럼 텅 비어

최승자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시인의 삶을 바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정신과 육체의 일반적인 선 너머, 그녀는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봤다.

 

[책상 앞에서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천국이었음을 깨닫는다]는 시인의 마음을 나도 느낄 수 있는 날이 가끔 있다. 지금이 그렇다.

 

[너는 묻는다

 

너는 묻는다. 언제냐고

나는 대답한다 모른다고

확실한가 안 확실한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내일이 올지 안 올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너는 눈을 떨군다

 

수 세기의 바람이 그냥 불어간다

수 세기의 눈이 그냥 잠잠하다]

 

모든 시가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시는 몇 번을 소리 내어 대뇌였는지 모르겠다. 철학적이고 사유적이고, 비참하다. 인생이 이리 비참한 것이라는 걸, 의미를 찾아 헤매지만 나도, 그리고 너도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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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찾고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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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찾고

요시타케 신스케 글, 그림

권남희 옮김

 

제목 보고 골랐다.

절실한 외침을 주는 말이다.

나는 매번 도망치는 것에서 끝났었고, 이제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사고 현장에 매몰되어 있다.

위험한 순간을 만나면 도망쳐야 한다.

매일 교통사고를 접할 수는 없다. 거기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쉴 곳을 찾아야 한다.

 

또 다른 포인트는 [당장은 찾지 못할 수도 있어]이다.

그런다고 찾기를 그만두면 두 번 다시 나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할 무언가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주저앉지 말고 계속 찾고, 움직이자.

그래야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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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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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사람들은 천문학자라고 하면, 별을 보는 일을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 별을 보지 않는 천문학자도 많다. 저자도 그중에 한 명이다. 우주의 무언가를 관측하고 이를 토대로 연구하는 이들을 천문학자라고 한다. 저자는 행성, 달을 연구하는 이다. [지구는 별이 아니다]

 

심리학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얼굴만 봐도, 이야기 몇 마디 주고받지 않아도, 상대방의 심리를 뚫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런 심리학자는 없다. 그리고 심리학이라고 하면 상담을 통한 사람들의 내면을 치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심리학에는 상담, 임상, 생물, 인지, 산업 등 무수히 많은 세부 전공이 있다. 고로 심리학과를 나와도 상담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다는 말이다. 어떤 이는 통계만 계속 돌리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실험을 통해 인지적 접근을 하는 이도 있다.

 

의사라고 하면 사람들의 아픈 곳을 고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듯이(연구든 수술이든), 심리학자라고 하면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고, 천문학자라고 하면 우주의 어딘가를 관측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천문학 교수님의 강의와 함께 삶의 체험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똑똑한 이들의 삶은 이렇겠지. 글도 내용도 깔끔하고 왠지 저자의 삶도 그러할 것 같았다.

 

[너무 졸려서 미각이 거의 마비된 상태로 밥을 국에 말아 후루룩 한 그릇 비우고는, 관측자 숙소의 암막 커튼이 주는 그 따뜻한 어둠 속에서 죽음처럼 잠들고 싶은 관측하기 딱 좋은 날]. 좋아하는 일을 하자. 좋아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자. 핸드폰 보는 것은 좋지만 의미가 있지 않으니까. 의미 있는 좋아하는 일이 뭘까. [그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열정적이고 무해하고 아름다운] [하늘의 어디] [위기를 이겨낸 우리의 마음속에도 언젠가는 봄꽃이 간질간질 피어나리라.]

 

[내가 큰 잘못을 한 건지, 미안한 건지, 고마운 건지, 당시의 내 지적 능력과 어휘력으로는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이 범벅되었던 그 날. 아마 나는 한층 자랐던 것 같다. 수많은, 표현하거나 단정 짓기 어려움 감정들과 마주쳤다. 그것은 예나 아니오가 아니었다. 기쁨이나 슬픔도 아니었다. 분노나 절망도 아니었다] 겪어보지 않은 일. 그로 인한 낯선 감정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했던 퓨마 뽀롱이는 분류상 맹수에 속한다는 이유로 발견 직후 사살되었다] 퓨마가 탈출하기 며칠 전 나는 그곳에 있었다. 유난히 적응하지 못하고 울부짖던 울음소리를 기억한다. 무서움과 연민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사람들 마음대로 잡아 온 퓨마는 하늘로 갔다. 인간의 잔악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회적인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다양한 것을 보고 듣고 접하면서 감정의 어떤 주파수는 진폭이 줄어들고 어떤 주파수는 증폭되는 구조를 갖게 되는 게 아닐까?] 내 안의 비사회적 나이가 고개를 든다. 지난 주말 동물원에서 뽀롱이의 작은 비가 마음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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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리단 지음, 하주원 감수 / 반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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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리단 지음

 

반성, 반추하게 된다.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삶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의 심한 정신적인 증상을 동반하는 이들의 삶이 녹록치 않은 삶임을 안다(사실은 알지도 모르지도 못하는 그 어딘가에 내가 있겠지). 그런 저자가 쓴 글은 전문의의 글보다 탄탄하고 열심이다.

 

발병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자세로 수많은 자조 모임과 저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저자에게서 사람들은 책의 내용 너머의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전공 서적으로 봐도 무색할 만큼, 조울증을 비롯한 여러 병력들에 대한 이해 및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일치를 여러번 보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처음엔 저자 이름만 보고 외국 저서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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