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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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집은 즐겁지 않다. '우리 집'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각자의 삶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로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 그래서 선뜻 이 책의 제목에 끌린 것 같다.  공지영이 이야기하는 '즐거운 나의 집'은 어떤지 알고 싶었다.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더더욱 끌렸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삶을 궁금해하는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은지라 세 번의 결혼으로 얻은 세 아이와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잘 읽었다. 용기를 백배는 얻은 듯하다. 

주인공은 재혼한 아빠와 줄곧 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의 집으로 옮긴 위녕이다. 위녕에게는 세 명의 동생이 있다. 재혼한 아빠와 새엄마 사이에서 난 여동생 위현과 친엄마가 아빠 이후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얻은 성이 다른 두 명의 남동생 둥빈과 제제가 있다. 위녕은 학교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동생이 셋 있는데 모두 성이 다르다고 떳떳하게 밝힐 정도로 자신의 평범하지 않은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 속깊은 아이다. 우연히 알게 된 서점 아저씨를 엄마의 새 남자친구로 연결해주려 할 정도로 개방적이기도 하다. 물론 엄마는 알아서 서점 아저씨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유명한 작가인 엄마는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이라는 상처를 가진 세 아이의 엄마답지 않게 유쾌하고 거침이 없다. 물론 그만한 상처를 가지고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사는데 시종 유쾌하고 즐거울 순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그렇다. 술 마시고 딸아이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강연에서 미용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자신의 미용 비결은 술과 담배, '내일은 꼭 세수를 하고 자야지'라는 굳은 결심이라는 말을 태연하게 하며, 편의점에서 첫눈에 반한 남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매일 같이 편의점을 들락거리며 전화를 기다리는, 보통의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가족은 처음에는 조심스러움으로 서로를 대하며 별 문제 없이 잘 지내는 듯하지만 차차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여느 가족처럼 충돌과 갈등을 빚는다. 위녕은 엄마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엄마가 행복해지길 바라면서도, 동생을 간호하느라 밤을 새운 엄마를 미워하고 동생을 질투하기도 한다. 고양이의 죽음으로 상심해서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엄마가 힘들어하는 순간에는 항상 그 곁을 지켜준다. 엄마와 싸운 후 집을 나오면 항상 서점으로 달려가 다니엘 아저씨의 따뜻한 위로를 받고, 엄마와 다니엘 아저씨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점덤 더 가까워진다,

둥빈은 갑작스런 아빠의 죽음으로 극심한 사춘기를 겪고 엄마는 학교에도 불려간다. 아이의 성적을 걱정하는 담임선생님에게 엄마는 공부를 잘한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공부 때문에 뭐라고 하진 말아달라. 대신 다른 잘못을 한다면 자신이 달게 벌을 받겠다며 단호하게 말한다. 엄마가 학회 때문에 밴쿠버로 떠날 즈음에 외할아버지가 암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세상 참 재미있고 후회없이 살았다며, 엄마에게도 밴쿠버에 다녀오라고 말한다. 

엄마와 10년 만에 다시 만나 여섯 번의 계절을 함께 보낸 위녕은 대학을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게 된다. 수능을 본 후 위녕은 지방의 교대에 원서를 내고 선생님이 되겠다며 엄마아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더 이상 교복을 입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야.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아니 그 이전에 유치원 때부터 선생님들이 생각났어.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은 알까? 그들이 우리에게 실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어왔는지...그것이 상처든 감동이든 지식이든 말이야...엄마,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어. 그래서 엄마 없는 아이들을 돌봐주고 싶었어. 아빠 없는 아이들, 엄마 없는 아이들, 아니면 엄마 아빠 없는 다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어. 학부모님께, 로 시작하는 동지서 대신 보호자 되는 분께, 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 수업 시간에 무심히 내일 엄마 오시라고 해요, 라는 말 대신 보호자분 오시라고 하세요, 라고 하고 싶었다구......." 

위녕의 굳은 결심에 눈물만 흘리던 엄마는 스물이 된 딸에게 긴 편지를 쓴다.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사랑했는지, 어떻게 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구세주를 낳았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그냥 놔두었다는 거라는 걸, 모성의 완성은 품었던 자식을 보내주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딸아이의 앞날을 응원한다.  

소설 곳곳에 드러나는 엄마의 불행했던 결혼생활. 두 번째부터는 이혼보다는 자살이 나을 것 같았다는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충분히 공감이 됐다. 그래, 이혼을 두 번씩이나? 결국 엄마는 남들이 한 번도 하기 힘든 일을 세 번이나 해냈다. 외할아버지에게도 "배 다른 아이 셋보다 성이 다른 아이 셋이 낫지 않냐"고 말하고 외할아버지는 웃으며 그 이야기를 받아주는, 보통의 집과는 다른 분위기에선 피식 웃음도 나왔다. 외할아버지 또한 딸이 이혼하는 것은 싫지만 불행한 것은 더 싫다며 딸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 자애로운 분이시다. 그러했기에 엄마는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게다. 아이들의 반항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엄마가 죄가 많아서 너희를 낳아서 미안하다고 울먹이기도 하지만 다시 꿋꿋하게 일어서는 엄마. 세상이 뭐라고 해도 항상 보듬어주고 용기를 주는 부모가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랑은 다시 나의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또 자신의 아이들에게 온전히 베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작가는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는 '소설'이라고 강조하지만 소설 곳곳에서 그녀와 아이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개인사를 팔아 돈을 번다는 비난을 받았겠지만. 그런 비난조차 웃음으로 넘길 그녀겠지만 이런 비난이 참 우스울 뿐이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상상력이 최고의 무기겠지만 그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이 아닌가. 경험하지 않고 상상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뼈아픈 실연을 해봐야 가슴 절절한 연애소설을 쓸 수 있고, 아이를 낳고 키워봐야 모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한국사회에서 흔치 않은 이력을 가진 공지영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녀의 유쾌하고 발랄한 문체로 완성된 작가 엄마와 세 아이들의 '즐거운 나의 집'. 지금 그녀와 아이들은 좀 더 성장했고 성숙했을 것이다. 저마다 가진 상처를 서로 보듬어주며 정말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들어가고 있을 그들의 앞날에 박수를 보낸다. 

 

**기억에 남는 구절 

"미리 걱정하면 무슨 소용 있겠어. 닥쳐서 걱정해도 늦지 않아. 곰곰 생각해보고 바꿀 수 있는 일이면 열심히 준비해야겠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면 얼른 단념하고 재밌게 지내는 거야." 

"아빠는 내 딸이 세 번이나 이혼한 여자가 되는 거 정말 싫다...하지만 네가 불행한 건 더 싫어...건강만 챙겨라. 앞만 보고 가거라.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건 우리가 안다. 그러니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해야 한다. 사람의 일이란 것은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다른 사람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오직 너와 네 아이들 생각만 해야 해." 

사랑하는 딸, 너의 길을 가거라. 엄마는 여기 남아 있을게. 너의 스물은 엄마의 스물과 다르고 달라야 하겠지. 엄마의 기도를 믿고 앞으로 가거라. 고통의 너의 스승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네 앞에 있는 많은 시간의 결들을 촘촘히 살아내라. 그리고 엄마의 사랑으로 너에게 금빛 열쇠를 줄게. 그것으로 세상을 열어라. 오직 너만의 세상을.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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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의 서평을 써주세요
작은 거인 - 고정욱 감동이야기 좋은 그림동화 16
고정욱 지음, 김 담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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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참 순수했던 것 같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쑥스럽긴 하지만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낼 때도 돈을 아끼던 친구들과 달리 용돈을 다 털어서 냈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주머니를 뒤져 꼭 돈을 줬다. 적어도 10대 시절에는 그랬다. 헌데 20대가 되니 그 순수함이 확 사라져버렸다. 지하철, 기차역 등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 노숙자요 앵벌이였고 왜 멀쩡한 몸으로 일은 하지 않고 구걸하며 사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곤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둘러싼 환경은 내 안에 더 이상 순수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작은 거인>의 대학생들도 나처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터미널에서 돈을 구걸하는 아이를 앵벌이로 생각해 무시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구걸은 습관적인 거라고, 그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더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게중에 '난 사람'이 있어야 사회도 돌아가고 어려운 이웃들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고 느낄 터이다. '키 작은 대학생'이 그런 사람이다. 구걸하는 아이가 앵벌이가 아님을 알아보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집까지 찾아가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돈을 거둬 마트에서 장까지 봐준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너희가 배 고픈 걸 몰라서 그래"라며 답한다. 그 순간 키 작은 대학생이 거인처럼 느껴진다. 

비록 키는 작지만 그 마음만큼은 거대한 작은 거인. 그를 만나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그리고 잃어버린 내 안의 순수를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는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들이 많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줄 작은 거인은 어디에 있을까? 나부터 거인이 되자. 그리고 내 아이도 거인으로 키우자. 아이가 좀더 자라 이 책을 읽으면 스스로 거인이 되려고 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키우는 것은 순전히 우리 사회와 어른들의 몫일 것이다.  

**사족-책의 내용은 좋으나 약간은 미흡한 교정교열 상태가 아쉽다. 첫 페이지부터 어색한 문장이 등장해 솔직히 놀랐다. 어린이책인 만큼 좀더 신경을 써서 만들었으면 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우리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우리 이웃의 따뜻한 이야기. 

초등 고학년이라면 이 정도 책을 읽으면서 우리 이웃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자기만 생각할 줄 아는, 조금은 편견을 가지고 친구를 대하는 초등 1,2학년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배고프면 아무 생각이 안 나거든. 무슨 짓을 해서든 오로지 먹어야겠다는 생각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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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타파 동물기네스북]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심심 타파! 동물 기네스북 - 지식in 02
위르겐 브뤼크.페리알 칸바이 지음, 이동준 옮김, 한국동물학회 감수 / 조선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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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각종 동물들을 기네스북의 큰 틀로 분류하여 '가장 무엇무엇한 동물은?'이라는 제목으로 한 페이지에 한두 동물에 대한 내용과 사진을 실었다. 물을 거의 안 마시는 동물은? 가장 먼 곳까지 이동하는 동물은? 가장 귀가 밝은 동물은? 이런 식으로 구성하여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찾아볼 수 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누가 먼저 정답을 찾는지 내기를 해보자며 이 책을 활용할 수도 있겠다.  

이 책에는 300여 가지의 동물이 등장한다. 그래서 익숙한 이름보다 처음 듣는 생소한 이름이 많다. 이런 동물까지 알아서 뭘할까 싶을 정도로 많은 동물이 나온다. 이 동물들을 기네스북처럼 꾸미려니 별의별  기록을 다 갖다붙여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좀 억지스러운 것이 많이 보인다. 포유류 편을 살펴보면 포유류 중 가장 기다란 코를 가진 동물은 코끼리, 가장 큰 동물은 아프리카코끼리, 임신기간이 가장 긴 동물은 아시아코끼리 이런 식이다. 코끼리 종류를 나누어 여러 개의 질문을 만든 것이다. 질문이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은?'이 아니라 '나무 위에서 사는 포유류 중 가장 큰 동물은? 오랑우탄' 이런 식이다. 포유류, 양서류 식으로 나누는 것보다 전체 동물들을 대상으로 하여 질문을 나누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포유류 중에서 무엇은? 이렇게 질문의 범위를 좁히니 기네스북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 같지 않다.  

또 동물마다 그렇게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정말 제목 그대로 심심타파, 짧은 시간 동안 뒤적이며 읽을 용도로 적당하다. 오랑우탄 같은 경우 내용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키 150센티미터, 몸무게 90킬로미터, 두 팔을 벌리면 2미터. 땅으로 거의 내려오지 않으며 땅 위에서는 아주 조심스럽다' 정도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요즘 같이 백과사전이나 자연관찰책이 잘 나오는 시대에 부모들의 눈높이를 만족시켜주긴 힘들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고, 이런 형식의 짤막한 읽을거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만 일부러 사보긴 힘들지 않을까. 내용이나 비주얼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함을 유지하니 말이다.

사족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물이 나오는 책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종 동물의 사진을 친절하게 실어놓은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기절하는 줄 알았다. 솔직히 사진만 봐도 기절할 것 같은 파충류, 양서류 파트의 페이지는 펼쳐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건 반쪽짜리 서평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지루할 만한 동물들에 대한 내용을 기네스북이라는 큰 틀로 분류하여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동물이나 백과사전류를 좋아하는 유치원,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과 그런 자녀를 둔 부모.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넘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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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남긴 한 마디]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9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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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지즈 네신이라는 생소한 터키 작가의 책. 작은 크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 내용도 짧막한 것들이 15편이나 실렸다. 짧은 이야기는 단 4페이지로도 끝나니 화장실에서나 잠시 짬이 나서 어정쩡한 시간에 읽기 딱이다. 맘 먹고 읽으면 금방 읽게 된다.

이 책은 풍자집이다. 권력, 재물, 위선 등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들이 다 까발린다. 권력자들은 끝없이 권력을 추구하다 제 무덤을 파고,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비난이 돌아도 그것이 자신을 향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내 앞의 누군가가 없어지기만 하면 내가 최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사람을 비롯하여 당나귀, 고양이, 빈대, 물고기, 양, 개 등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여 인간 세상을 풍자한다.   

도둑질을 해도 되지만 들키면 욕 먹는 마을에서 사랑받던 도둑고양이가 죽은 자리에 국세청 건물이 들어서자 사람들은 고양이의 혼이 부활했다고 하고(도둑고양이의 부활), 사랑하는 개의 장례를 치르다 들킨 남자가 개가 재판장에게 돈을 주라고 유언했다고 말해 재판장을 감동시키고(개가 남긴 한마디), 난폭한 양치기에게 매일 맞던 아기 양은 늑대로 자라고(늑대가 된 아기 양), 아이들에게 자신들만 보고 자라라던 부모는 아이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라고 말한다(삐뚜름한 모델). 

이 책은 1958년에 출간됐다. 그래서 슬프다. 도대체 2008년에 읽어도 이렇게 웃기고 공감되는 내용이라니! 권력자들은 여전히 추악한 권력을 놓지 못해 더 추악해지고, 인간은 자신만은 고결한 존재라고, 자신의 모든 불행은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 책의 내용은 특정 계층에 대해서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읽으면서 뜨끔한 부분이 있을 정도로 이야기 속 어떤 인물은 내 모습 같기도 하고, 우리 이웃의 모습 같기도 하다. 욕심에 치우쳐 남을 바로 보지 못하고, 나만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인간 군상의 모습이 잘 담겨져 있어서일 게다.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 풍자는 사라질 수 없다. 예전에는 코미디 프로에서 세상에 대한 풍자극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외모나 신변잡귀적인 것들로 웃기는 대신 신랄한 사회 풍자가 한판 벌어졌으면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그나마 다행인 건 TV에서 보기 힘든 신랄함과 웃음을 주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 그것도 청소년용으로 나왔다는 사실이다. 다사다난했던 한해, 정치권에 대해 냉소를 보내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많은 중고등학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 대해, 자신에 대해 진진하게 생각해봤으면 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짧은 내용으로 깊이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풍자집이다. 긴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이동 중에 책을 읽고 싶을 때 봐도 좋을 만큼 책 크기나 분량이 부담 없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오래 전에 읽어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읽은 후 "이런 풍자도 있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인간의 착취에 반발하여 동물들이 새로운 사회를 꿈꾸지만 결국 인간 사회와 다를 것 없이 변했다는 내용.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풍자 소설 중의 으뜸.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긴 이야기를 읽기 싫어하는 중고등학생, 성인 모두 읽어도 좋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우리는 엄마아빠를 모델로 삼은 채 살아왔어요. 엄마아빠가 무엇을 하시든지 그냥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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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 까마득한 이야기 1
편해문 글, 노은정 그림 / 소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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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동해 용왕 ,석달 열흘 빌고 빌어, 예쁜 딸을 낳았구나. 

쓰다듬고 쭉쭉 빨며, 귀하게 키웠더니, 해코지만 느는구나.

용왕 따님 쫓겨가매, 그 어미가 인간 세상, 아기 낳는 법 알려주니

처음 만난 부부에게, 아기를 점지하나, 낳는 방법 모르누나.

사연 들은 하늘왕은, 명긴국의 아기씨를, 삼신아기씨 삼는구나.

용왕 따님 대패하여, 죽은 아기 키워내는 저승을 맡는구나.

아기 어미 심한 입덧, 아기는 밤낮 울음, 용왕 따님 짓이로다.

삼신아기씨 살살 달래, 한 달에 세 차례만, 이승 방문 허용하네.

아기 얼굴 흉터 내는 마마대별상 행찻길에, 삼신아기씨 납시었네.

마마대별상 약속하길, 마누라에게 자식 주면, 아기 목숨 살려주마.

삼신아기씨 약속이행, 마마대별상  해코지는, 그칠 줄은 모르니

상심한 삼신아기씨, 스물넉 달 지나도록, 쳐다보지 않는구나.

뉘우친 마마대별상. 빌고 빌어 아기 낳고, 세상 아기 살리누나. 

세상 아기 주고 길러, 백발이 된 아기씨를. 삼신할머니라 불렀더라.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할머니들은 삼신할머니가 점지해준 것이라 말한다. 삼신할머니가 누구예요? 아기를 점지해주시는 분. 그 이상은 설명이 곤란하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삼신할머니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이름이지만 그 존재의 의미나 구체적인 형상에 대해선 거의 모르고 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삼신할머니에 대해,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는 요즘에는 생소한 출산 풍경과 신생아의 모습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삼신아기씨가 엉덩이를 때려 아기를 울게 하는데, 이는 크게 울면 온갖 구멍이 열려 나쁜 것들이 빠져나가고 숨을 크게 쉬어 아기에게 좋단다. 이때 맞은 손 자국이 우리들 엉덩이에 퍼런 멍으로 남아 있다.사흘 안쪽으로 아무것도 먹이지 않고, 사흘이 지나면 첫 배내똥을 누더라, 사흘 지나 태반을 묻고, 배똥줄은 열다섯이 될 때까지 간직하라는 등의 자연주의 육아법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을 전래동화에서 보게 되니 신기하다. 어머니, 할머니들의 지식과 지혜는 삼신할머니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것이었던 게다.

이 책은 저자가 제주도의 <삼승할망 본풀이>를 바탕으로 7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여 썼단다. 그 기간과 정성이 대단하다. 전래동화라지만 분량이 만만치 않고,문장이나 내용이 맛깔나다. 오히려 어른들이 재미를 느끼며 술술 읽을 수 있을 구성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우리 신화의 바리데기나 삼신할머니보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제우스나 헤르메스 등의 이름이 더 익숙할 것이기에 이 책의 의미가 더 크게 와닿는다. 이번 겨울, 전쟁과 복수, 질투가 난무하는 서양의 신화 대신 용서와 화해, 따뜻함으로 이루어진 우리 신화도 있다는 것을, 오랜 세월 우리를 보살펴준 우리의 신들도 있다는 것을, 그 첫 번째로 할머니, 엄마, 너를 만들어주고 보살펴준 삼신할머니가 있었다고 이 책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어른들도 잘 모르는 삼신할머니의 전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임신과 출산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썼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책.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우리 신화에서 꼭 알아야 할 또 다른 인물 바리데기. 삼신할머니보다는 아이들이 좀더 많이 접했을 수도 있지만 우리 신화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바리데기에 대한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긴 내용의 전래동화를 소화할 수 있는 초등 고학년(엄마가 쉽게 풀어서 읽어준다면 저학년도 좋다), 태교 동화를 읽어야 하는 임산부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삼신아기씨. 아기 가진 어머니들에게 끝으로 이르기를 / 높은 데 오르지 말고 담 넘어 다니지 말고 /소나 말 짐승 매어둔 줄 넘어 다니지 말고 / 무거운 물건 들지 말고 싸움하는 것 보지 말고 / 음식도 가려 먹되 기름지거나 탁한 음식은 먹지 말고 / 말고 곱고 고운 말만 쓰되 쓴말은 하지 말라 하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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