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중 잣대와 재현의 문제

   

이중 기준을 통과하기

여자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잣대는 이중적이다. 공적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은 여성에 대한 편견어린 시선과 싸우면서 동시에 여성에게 더 엄격하게 세워진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은 능숙하면서 동시에 호감 가는 인물로 보이기 어렵고, 리더로서의 자질을 끊임없이 의심받는다. 이는 여자 대표와 남자 대표를 겨루는 평가 자체가 여성에게 이중 구속(double-bind)적이기 때문이다. 책임감 있고, 신중하며, 타인의 의견을 잘 듣는 것과 같은 자질에 대해 대중들은 남자 대표에게는 리더의 자질이 있고, 책임감 있다(take-charge)고 평가하는 반면, 여자 대표들이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그저 조심스러운 (take-care) 행동으로 이해한다. (Catalyst, The Double-Bind Dilemma for Women in Leadership: Damned if You Do, Doomed if You Don’t, 2007 July, 7쪽)  


     


<The Double-Bind Dilemma for Women in Leadership>의 표지
이미지 출처: www.catalyst.org
 


또한 여자 정치인들은 위기 상황에서 감정을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늘 의심받는다. 남자 정치인의 눈물은 인간적인 공감을 자아내지만 여자 정치인의 눈물은 유악함의 징표가 된다. 한편, 감정 통제를 잘 하는 여자 정치인들을 칭찬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여성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의 이미지를 가진다. 이들은 남자보다 더 남자 같으며 여자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는 ‘철의 여인’들로 불린다. 여자 정치인에게 대중들이 기대하는 모습은 철의 여인도 유약한 여자도 아니다. (어쩌란 말인가!)

2008년 예비 선거에서 힐러리는 “자신이 유권자의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 줄 수도 있는 사람인 동시에 이란의 핵무기도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힐러리가 남자처럼 행동하건 여자처럼 행동하건 간에 유권자들은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했고, 솔직하지 않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보여주는 것이 힐러리에게 놓인 과제였다. 하지만 문제는 힐러리가 ‘보통’ 여자가 아니라 어떤 전형성에도 들어맞지 않는 모든 것의 예외였다는 데 있다. 이중 기준에 지칠 대로 지친 힐러리는 거의 패색이 완연할 무렵 우연히 한 유권자 앞에서 눈물을 비추었다. 
눈동자에 맺힌 힐러리의 눈물을 포착한 미디어는 이 눈물로 인해 힐러리의 패배는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뉴햄프셔의 여성 유권자들 중 절반이 힐러리의 눈물에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의 눈물이 ‘약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읽혀졌던 것이다. 힐러리는 뉴햄프셔의 승리 연설에서 “(드디어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다”라고 말했다. (디디 마이어스, 윤미나 옮김, <우머노믹스>, 비즈니스맵, 2009, 68-73쪽 참고.) 
  

여성 재현의 문제

대표로서의 여성이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위한 길은 험난하다. 징표적 대표에 머무를 수도 없고, 이중 구속도 통과해야 하며, 평범하지 않은 여성으로서 평범한 보통 여성들을 대변해야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 정치인 중 이러한 이중 구속에 곤란을 겪었던 대표적인 인물은 강금실이다. 2006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강금실은 최초의 법무부장관이라는 이력을 바탕으로 ‘따뜻한 카리스마’, ‘매혹의 카리스마’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상대편 진영에서는 강금실의 대항마로 오세훈을 선택했다. 오세훈은 ‘부드러운 남성’으로 이미지화되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의 강금실 후보와 오세훈 후보
이미지 출처: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055&code=113
 

두 후보 모두 기존의 전형적인 젠더 표현과는 다른 이미지를 표방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두 후보의 젠더 차이는 결정적이었다. 오세훈은 두 딸과 부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노출시키며 부드럽고 가정적인 남자의 이미지를 여성 유권자에게 호소했다. 강금실 역시 ‘따뜻한 카리스마’라는 이미지를 통해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인 자질을 표현했다. 하지만 오세훈이 부드러움을 강조하며 남성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여성 친화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데 성공한 것과 같은 방법이 강금실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다. 카리스마와 능력을 강조하면 남성적으로 보이고, 여성적 매력을 강조하면 다른 여성들과의 차이가 부각되었다.      

 

   
 

“평소 여성지에 소개될 때 오세훈 씨는 항상 부인, 두 딸과 함께 사진을 찍는데 굉장히 가정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였어요. 저 사람이라면 여자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겠구나, 저런 사위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반면에 강금실 후보는 남자들에겐 여성적인 매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여자들이 보기엔 남성적인 면이 강해요.” - (<뉴스메이커>, 2006년 6월 16일, 한 전문직 여성의 인터뷰 재인용)

 
   

 

인용한 전문직 여성의 말처럼, 오세훈의 부드러운 이미지는 가부장제라는 사회에 대해 저항의 욕망을 가지고 있으나 현실에서 협상하는 여성들이 호감을 가질 수 있게 최적화된다. 반면 강금실은 여성들에게 ‘더 나은 이미지’를 가진 여성이기는 하나 협상하고 순응하는 여성들의 욕망과는 배치되는 존재이다. 이혼한 여성, 아이 없는 여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으로 성공한 여성으로서의 강금실은 20~30대 독신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인 존재이나,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경쟁의 대상으로 ‘위협적’인 존재였다. 수잔나 D. 월터스는 “더 많은 여성, 더 나은 이미지가 우리의 문화적 지평을 확장시킬 수는 있지만 가부장적 시각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스테레오타입이 아닌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애초에 그러한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데 관여한 의미화 과정의 심층적 구조의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다”라고 지적한다. (수잔나 D. 윌터스, 김현미 옮김,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여성들>, 또하나의 문화, 1999, 67쪽) 
 

이미지 통제의 실패

강금실은 ‘더 나은 이미지’ 혹은 ‘다른 이미지’를 가진 것만으로는 오세훈의 이미지 정치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미 여성 자체가 성적 타자로서 문화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다름’은 여자라는 문화적 관념 속에서 차이로서 인식된다. 전형적인 여성 이미지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다르게 살고 있는 여성들이 자기 이미지를 원하는 방식대로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용산 재개발 계획을 설명하는 강금실
이미지 출처: 오마이뉴스 


그 결과, 강금실의 선거 전략은 매우 극단적인 이중성을 띠게 되었다. 선거 초기에 보육·교육·문화·복지에 중점을 두고 ‘생활 정치’를 표방한 것은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경쟁적 담화와 선거라는 게임의 법칙에 익숙한 사람들은 생활 정치라는 의제(agenda)는 선거용이 아니라고까지 단언했다. 심지어 이런 정책들은 선거라는 경쟁적 상황에 익숙하지 않고 선출직 경험이 없는 강금실의 아마추어리즘을 대변한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선거용으로 적합하고, 표에 도움이 된다고 가정된 기준에 적합한 몇 가지 쟁점들이 다시 선택된다. 그것은 ‘중심적’이고, ‘거대하며’, ‘여성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대규모 도시계획 프로젝트인 "역사문화도시 서울"과 "용산 플랜", "서울광장 조성" 등이었다. 이후 이 플랜은 상대 후보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여 선거가 끝날 때까지 용산 플랜의 구체적인 숫자를 검증해야 했다. 이후 강금실은 다시 “교육과 보육, 복지”로 정책의 핵심 쟁점을 재구성하려 하였으나 이미 때를 놓친 터였다. 여성에 대한 이중 잣대와 이미지 통제의 실패가 불러온 혼선이 빚어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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