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내인생의 ~ ' 를 주제로,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나 책 등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으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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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흘리며 쓰러진 노숙자 어떻게 하겠냐? 묻던 선생님
한창 사춘기였을 때, 성당 주일학교에 학생들이 무척 따랐던 선생님이 계셨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선생님은 생각이 깊고, 후배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자칫 지루하거나 엄숙해지기 쉬운 미사에 기타 반주를 시도하기도 한, 독특한 분이었다.
어느 주일날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만약 여러분이 길을 가는데, 육교 밑에 머리에 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의 남루한 옷차림으로 보아 노숙자 같았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했겠나”
“그래야 했죠? 하지만 전 어제 그러지 못했어요”
이제 막 사회나 종교, 원론적인 가치에 눈뜨기 시작하던 때인 학생들은 다양한, 그리고 지극히 지당한 대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경찰에 신고한다, 병원에 데리고 간다, 치료비를 쥐어준다 등등. 나는 ‘부축해서 응급실에 데리고 간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서 어떤 방법이 타당한지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던 나는 선생님의 대답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그렇죠, 그래야 했죠? 하지만 전 어제 그러지 못했어요.”
의외의 이 대답이 내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당위’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이에는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선택의 과정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고, 그런 선택과 실천에 대한 고민 없이 머리와 입으로만 나불나불 ‘부축해서 응급실에 데리고 간다’고 대답했던 것이-중3 여학생이 과연 할 수 있는 일인지-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또한 대부분 사람이 무심코 지나쳤을 상황에 대해 비록 그 자리에서 돕지는 못했지만 마음에 두고 고민한, 그리고 그런 마음의 짐을 후배들과 나눈 선생님의 문제의식 덕에 나는 사회 문제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때의 각성 덕에 진학할 때 약간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좀 더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방향으로 진로를 바꿀 수 있었고, 이것이 그 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많은 귀중한 만남과 경험의 바탕이 되었다.
당위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실천, 그리고 행동이 뒷받침되는 말. 늘 이 명제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