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 2003-10-09
쉐벡과 송두율, 그리고 다른 회색인들 얼마 전 fiction으로 외도를 했다는 책이 어슐러 K. 르귄의 '빼앗긴 자들'이었다. 주인공 '쉐벡'의 행보가 여러 가지 면에서 요즘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송두율 교수 등과 겹쳐지는 것 같다.
이 이야기의 배경인 '우라스'와 '아나레스'는 쌍둥이 행성이다. 행성은 쌍둥이이지만 거기에 사는 이들의 사회체계는 대조적이다. 우라스에는 현재의 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소유주의자'라고 표현된,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 혼란한 제3의 국가로 이루어져 있고, 아나레스는 우라스의 소유주의 국가에서 아나키스트 혁명을 일으키고 이주해 온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두 행성 사이에는 필수적인 구상무역 이외의 교류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이른바 냉전 상태에 있다.
주인공 '쉐벡'은 아나레스의 물리학자로, 시간에 관한 통일된 이론을 완성하는 인물이다. 아나레스에서 자신의 물리학 이론에 대해 이해 받지 못하자, 쉐벡은 정치적으로는 수백년간 적대적 관계를 지속했지만 자신의 이론을 이해하는 우라스로 간다. 거기서 쉐벡은 자신의 이론을 완성하는 한편, 우라스의 소유주의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고, 빈민계층의 투쟁에 참여하고는 다시 아나레스로 돌아오는 줄거리이다.
여기서 작가는 여러 사회 체제의 특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또한 우라스와 아나레스인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체제가 주입한 편견도 묘사하고 있다. 우라스나 아나레스, 어느 사회 체제에서든 공동체의 발전과 함께 개인의 의지를 존중하는 노력이 끊임 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내가 볼 때 쉐백이 완성하는 시간물리의 개념을 통해 이런 갈등의 극복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실재 소립자 물리학에서 물질의 가장 기본 구조가 입자인지 파동인지에 관한 논쟁이나, 불확정성의 원리 등 한가지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쉐벡이 제시하는 시간 이론도 '동시성'과 '연속성' 이론을 아우르는 이론이었다. 어느 하나의 이론, 하나의 사상만으로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실상을 왜곡하는 것이다.
요즘 송두율 교수의 귀국과 그간의 행적으로 인해서 떠들썩 하다. 내 개인 생각은 송두율 교수를 비난하기에 앞서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가 그의 행보를 비난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된 사회였는지부터 반성해야 할것 같다.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한 조사를 정확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나, 지금과 같은 여러 어려움을 예상하고도 귀국을 감행한 만큼 포용하는 조국이 되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사회 혹은 종교에서나 이른바 '믿음' 혹은 '신념'이 강하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가장 배타적이고 억압적이다. 하지만 상생의 길은 검거나 희기를 거부하는, 그럼으로써 비난을 감수하는 회색인들에 의해 열린다.
회색인들이여,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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