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큰애가 중학교에 입학해서 첫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이다.
세상에 시험을 이렇게 태평하게 보는 애는 내 태어나서 첨 보았다. 

1. 낌새는 입학하면서부터 나타났다.

학원 다니는 것을 싫어해서 영어, 수학만 학원을 보내는데, 예습은 고사하고, 복습이나 착실하게 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언제나 '할게 없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었다.
 

2. 시험 2주전, 명란님의 '시험전 증후군'이 시작되고도 1주가 지났을 때, 아들을 불렀다.

종이 한장에는 시험때까지 날자별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적고, 
다른 한 종이에는 시험 전까지 공부해야 할 것들을 적고, 
공부해야 할 것들을 날자별로 배치해서 계획을 세워보라고 했다.

남은 시간과 공부해야 할 것을 가늠해보면 조금이라도 공부해야겠다는 마인드가 생기리라는 기대로 그렇게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도대체 나아진 것 같지가 않다.
'계획대로 하고 있니?' 하는 질문에는 늘 '벌써 다 해서 더 할게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3. 시험 3일 전, 그러니까 지난주 금요일이다.

책장에 꽂힌 큰애의 참고서와 문제집을 조사해 봤다. 죄다 새책이다! 펼쳐본 흔적조차 없다!!! 
'너 계획대로 했다더니 왜 참고서와 문제집이 이렇게 다 새거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학교 교과서와 노트를 보고 복습을 했단다.
그럼 교과서와 노트를 보자고 했더니,.....  학교 사물함에 두고 다닌단다.... 오마이 갓!!  ㅡㅡ###

그러고는 전과목 요점정리가 된 노트북 참고서 같은 것을 밑줄 설설 치면서 읽는것이었다. 
으이구~~~!!!   


4. 시험 전날, 일요일.

월요일부터 3일간 3-4과목씩 시험을 본다.  첫날이 국어, 과학, 미술, 기술/가정이었던가...?
아침부터 군기 잡아서 식탁에 앉혔다. 동생은 분위기 흐리지 않게 친구와 같이 영화를 보러 보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6시간쯤 공부했다. 그새 참고서랑 문제집을 다 풀고 더이상 할 공부가 없단다.
학교 교과서와 노트는 역시 학교 사물함에서 가져오지 않았단다.

저녁때가 되자 오늘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매일 하기로 약속되어 있는 1시간의 컴퓨터 게임 시간에 30분을 더 달라고 한다.  이애가 제정신인가? 
기어이 1시간 반을 컴퓨터게임을 하더니는 더이상 할 공부가 없다고 몸을 뒤튼다.
월요일거 말고 화요일, 목요일거라도 해라 했더니 수학을 조금 깨작거리다가......
11시쯤 들어가서..... 소설책을 보고 있다.  ---- '얘! 차라리 잠을 자라! 잠을!'


5. 월요일 방과 후.....  

첫 시험 소감: 음... 미술이 장난 아니던데? 그런데 시험 점수에 안들어간데!
다음날 과목이 사회, 일본어, 그리고 음악이었다. 저녁에 공부거리를 가지고 나왔는데,
공부라는 것이, 일본어 히라가나를 외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이구 나 미쳐~~!

그 히라가나는 입학하면서 일본어 선택할때부터 외우라고, 히라가나만 외우면 일본어 반은 끝내는거라고 그렇게도 말했건만! 시험 전날에서야 외우구 앉았는 꼴을 보자니 정말 없는 고혈압이 생길 것 같다.
히라가나 외우느라 시간 다보내니, 사회 공부할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밤 11시 좀 넘으니까 졸리다고 비실비실거리다가....   --;;
11시 반에 '공부 다했어' 하고는 들어가 잔다.  


6. 화요일 방과 후.... 

시험 소감: 음... 앞으로는 엄마가 공부하랄 때 공부해야겠던데?

다음날이 어린이날이라 하루 쉬지만, 우리집은 시아버님 생신이셔서 저녁에 서울 올라갔다가 어린이날 아침만 먹고 내려왔다. 우리 애는 도덕 참고서를 들고 왕복을 했지만, 몇쪽 읽지 않은 것 같다.

시험을 핑계로 일찍 내려왔건만, 이노무 자식은 참 한가하게도 공부한다.
다해서 오후에 2-3시간 공부하더니는 또 더이상 할게 없단다.


7. 나와 남편은 부득부득 이를 갈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렇게 태평할까?
'친구들 중에 이렇게 공부 안하는 애도 있는데 나는 그애들보다는 더 하는거라구!'  오히려 큰소리다.

한번 큰코 다쳐봐야 깨닫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시험을 망쳤기를 바라고 있다.
아이가 시험 망쳤기를 바라다니, 나도 이성을 잃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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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5-06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그 무렵 제 얘기를 해주시는 것 같아서 뜨끔하기도 하고, 왠지 재밌기도 하네요. 그런데요 저 역시 말씀드리고 싶은 건 분명 어머님의 말씀과 걱정이 모두 옳았단 것입니다. 물론 아들인 저는 저희 어머님 말씀을 그리 잘 따르진 못했지만요. 가을산님도 힘드시겠네요. 가을산님의 걱정은 말 그대로 사랑이란 당근과 분노란 채찍을 그야말로 적재적소에 꺼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소굼 2004-05-06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어;시험 전날 히라가나 다 외웠던;;기억이 나네요;;
헤헤 마음가짐은 왠지 마음에 드는데요;;;;여튼 시험 결과가 나와봐야^^;

비로그인 2004-05-0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시험소감이 너무 웃긴데요~ "엄마가 하랄때 해야겠던데?" ^^ 일단 시험결과가 나와봐야 천재인지 개구리인지 밝혀지겠군요! 저렇게 공부하고도 잘하는애들이 있으니, 천재쪽이 아닌가하고...왠지 긴장되는데요! 결과도 꼭 알려주시어요~ ^^

sooninara 2004-05-06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공부하고 말지..아들놈 공부 시킬려니 속 터집니다..초등학교 일학년인데..벌써 이럽니다^^

마립간 2004-05-0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람된 이야기같지만, 아이 외삼촌도 그러시지 않으셨나요?
중요한 것은 열정을 갖고 평생 할일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불행합니다.) 공부야 고등학교 진학한 후 남 하는데로 해도 넘치는데요.
예전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일때, 명문고등학교에서 신입생이 입학하면 배치고사를 보면서 평균 30점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자만심을 갖지 않도록.

마냐 2004-05-0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클. 아이가 거의 '도인' 수준이여요...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보다, 그래도 마음만은 언제나 여유로운 편이 낫죠...호호...저 고1때, '전쟁과 평화' 책을 폈는데, 덮지를 못해서 생물을 60점대 받아...나중에 그거 만회하느라 고생 많이 했죠...만약, 울 애들이 나중에 저런다면, 저는 가을산님처럼 평정을 유지하긴 힘들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중1이니까, 아직 괜찮은거 아닌가요?

가을산 2004-05-06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저도 중2때 벼락치기한다고 - 그래도 전 벼락치기라도 열심히 했어요... - 몇일 밤을 샌 후 잠들어버려서 세계사를 43점 받은 적도 있습니다.
당시 엄마 말씀: '이거 50점 만점이니?' ... 아.. 그때 처참했슴다. ㅜㅜ

진/우맘 2004-05-06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전 수학, 백 점 만점에 5점도 받아봤어요.TT

비로그인 2004-05-0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다들 과거가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가을산님 결과 꼭 올려주시어요. ^^

明卵 2004-05-0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 서재 브리핑에 가을산님 글이 올라왔길래, 제목도 그렇고... 날짜도 그렇고... 분명히 시험 이야기겠구나!! 하면서 들어왔는데 역시 그렇군요~ 느긋느긋한 모습이 정말 무슨 도인같네요. 속으로 '남자애들은 이렇구나'하면서 보고 갑니다. (저희 학교 여학생들-어차피 저희 학년은 여학교지만-은 1학년 중간고사 때 거의 목숨을 걸었는데 말이죠) 개구리인지 천재인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가을산 2004-05-07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저때는 다 저래요'라고 대답한 분이 로렌츠의시종님밖에 없는걸보니 진짜 심각하긴 한거네요. --;;

그리고.. 왜 폭스님은 과거를 안밝히세요? 여기 댓글다신분들은 자수하고 댓글달기.. 흠흠...

비로그인 2004-05-07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시험 때마다 결과무관하게 종종거리기만해서 가을산님 아드님의 여유가 저를 낯뜨겁게 합니다. 얼마전에 어떤 분들이 학원보내기와 자녀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흘리는 말이, 한국의 엄마들이 왜 자녀를 결국 학원에 보내는지 아냐고, 애들하고 공부하는 문제로 실랑이하기 싫어서 차라리 학원보내고 마는거다, 둘 다에게 스트레스라는 자문자답이었지요.

몇년 후의 일이겠지만 저는 아이가 학원에 안간다고 하면 안보낼 생각인데 어떨까 몰라요. 저도 닦달을 하는 성격이라서...

그냥 요즘에 자녀교육때문에 고민하는 다른 부모님들 보면, 저게 다 내 일이지 싶어서...

마태우스 2004-05-07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아이가 잘 모르는가봅니다. 저도 그랬으니, 시험 결과를 보고나면 달라지겠지요. 앞으로도 시험은 많습니다.

superfrog 2004-05-0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결과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혹시 정말 할 공부를 다 해서였던거 아닐까요..?
결과도 잘 나오고..ㅎㅎ 그럼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려나.. 흥미진진..^^
님, 아이 참 매력있는데요?^^

2004-05-17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4-05-2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이렇게 잘 써 놓으셨는지....
우리 아이도 그러더라구요..할게 없대요..맨날 다했대요..맨날...
그러면서 지가 젤 잘났다고 하고.....
요즘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많은것에 비해 이렇게 태평 스러우니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제 스스로 위안이 되기에..
우리아이도 시험 기간에 해리포터 보더이다..잠자리에 누워서 요점 정리라도 한자 더 보면 좋을것 같은데 그건 순전히 애미 욕심이고...
해리포터 보며 깔깔거리고 11시도 안되서 졸린다고 ..아..말하면 뭐해..
그래서 시험결과는???
그야 물론 바닥을 헤매지요....
그래도 지가 잘했다던걸요???......실은 저도 학교 다닐때 공부 안하긴 안했어요..누굴 탓하리요.........

가을산 2004-05-2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배꽃님! 동지가 한명 있어 위안이 됩니다.
요즘 아이를 어떤 방향으로 기를 것인지 고민 중입니다.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니 미래는 니가 준비해라! 라고 맡겨놓을지,
아직 의지가 약한 나이이니 공부 습관이 들도록 관리를 일일이 해주면서 살살 꼬셔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