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설계 1 - 몽생미셸의 지하
프레데릭 르누아르.비올레트 카브소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머리가 복잡하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일 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나를 멀리 떨어진 곳, 나와 무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는 가벼운(그렇지만 재미있는) 소설을 한 권 읽는 것이다. 이럴 때 읽는 환상적인 소설 한 권은 힘겨운 무더위가 온 몸의 기운을 빼앗아 가버리는 한여름에 읽는 그것만큼이나 큰 위안이 되곤 한다.

  <이중설계>는 원래 읽고자 했던 책은 아니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를 읽으면서 이제 비슷한 형태로 쓰여진 즉, 팩션 소설이라 분류되는 소설은 왠지 더 이상 보게 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연히 거실 탁자에 놓인 책을 집어드는 순간, 당연히 읽게 되었고, 읽기 시작한 이상 웬만해선 끝까지 읽어내는 성격 탓에 두 권 모두 보게 되었다. <이중설계>는 <다빈치 코드>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소설이다. 물론, 작가가 다르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빈치 코드>가 숨쉴 틈도 없이 전개되는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같았다면(안 그래도 영화로 제작되고 있지만) <이중설계>는 그야말로 낭만적인 한 편의 중세소설이다. 역사적 장소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그 비밀을 파헤치는 주인공들, 역사적 사실들과 허구적 이야기들이 긴밀하게 얽혀 들어가는 것은 동일하지만, <이중설계>의 미스터리는 아쉽게도 <다빈치 코드>의 그것만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살인사건이 있고 숨겨진 비밀이 있고 복선이 깔려있고 어느 정도 독자의 추리력을 필요로 하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듯 싶다. 1권을 읽고 나서 그 숨겨진 비밀이 무엇인지 범인이 누구인지 결말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조심스런 추측을 해보면서 2권을 펼쳤을 때, 2권에서 그 조심스런 추측을 배신하지 않는 이야기가 진행되면 누구나 조금은 실망하게 되지 않을까...

  오히려 이 책을 그나마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기대했던 극적인 재미보다는,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로망과 모이라의 사랑이야기이다. 이야기 구조만 놓고 따지고 들면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옛날 옛적 사랑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몽생미셸이라는 신비로운 공간과 종교, 민족, 역사 등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은 주제들에 힘입어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내내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이 소설의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또 다른 주인공인 조안나의 심리 상태에 관한 것인데, 처음부터 매우 불안정한 양태를 보이는 조안나의 심리 상태는 그 자신과 친구, 정신분석의에 의해서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뜻밖의 인물에 의해 그 마음 깊은 곳, 무의식의 의미가 드러난다. 조안나의 갈등과 방황의 의미, 그리고 남겨진 선택이라는 결말은 통상적으로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모든 비밀이 드러나는 것으로 끝나는 여타 소설들보다는 조금 색달라서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내 마음 속의 갈등은 무엇이고 나는 어떤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지 내가 선택할 곳은 어디인지 등등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흥미진진함이라는 요소는 좀 덜했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남다른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고 프랑스 몽생미셸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졌으며 마지막 조안나의 선택은 어떤 것이었을지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보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 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완전한 직역에 가까운 문장들이 가끔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는 점을 유의하시길. 가끔씩 작가가 원래 쓰고자 했던 문장의 뜻이 무엇이었을까를 추리해야 하는 번거로움만 감수한다면 멀리 떠나버리고 싶은 기분일 때 읽기에 나쁘지 않은 책이다.

마지막 사족 - 개인적으로는 <이중설계>를 영화로 만들면 <다빈치 코드>보다 훨씬 더 잘되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글자로 전개되는 내용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계속해서 상상해 보게 만드는 소설이다...특히나 몽생미셸의 돌들이 어떤 모습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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