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것은 때로는 그 어떤 영화를 보는 것보다도 생생하게 나의 무뎌진 상상력을 자극하고 일깨운다. <개미>로부터 시작된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실의 시대>로 시작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천사와 악마>는 <다빈치 코드>로 시작된 댄 브라운 읽기의 연속이었다. 가장 궁금하게 여겨졌던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안겨주는 재미가 <다빈치 코드>보다 더 컸다. 물론, 사건의 시작부터 너무나 동일한 스토리의 전개방식이나 100% 예측가능한 각 등장인물의 역할, 좀 더 유능한 독자에게는 무척이나 빤해보이는 나름의 반전을 생각한다면 <다빈치 코드>에 나름대로 열광했던 독자라도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동일한 스토리 전개와 등장인물에도 불구하고 분명 "전작(우리에게 알려진 순서로 본다면)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은 주제가 나름대로 명확하다. <다빈치 코드>의 경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성배와 예수의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 <천사와 악마>는 전혀 새로운 에너지원인 반물질의 개발을 통해 우주의 기원에 관한 종교계와 과학계의 오랜 반목의 역사, 그 갈등을 조명하고 있다. 커다란 줄기가 되는 이러한 주제를 중심으로 <다빈치 코드>의 성공 요인이라 일컬어졌던 역사적 사실(fact)과 소설적 허구(fiction)를 혼합하여 진실과 허구 사이를 넘나드는 이른바 팩션(faction)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능력은 <천사와 악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특히 로마와 바티칸을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직접경험에 못지않은 환상적인 경로를 따라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은 마치 로마의 어느 유적지를 걷고 있는 듯이 말이다.

  <천사와 악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종교와 과학의 갈등은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문제이다. 작가는 이 오래된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꽤나 많은 자료를 모으고 고민을 했을 것이다. 작가의 고민은 등장인물의 상황과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특히 바티칸에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궁무처장의 발언이야말로 살아있는 듯한 목소리로 글자를 통해 읽는 이의 마음 또한 움직인다. 신기술 개발과 놀라운 발전의 속도로 점차 현대사회의 거대한 신이 되어가고 있는 과학과 그 거대한 모습의 그림자 속에 감추어져있는 수많은 부작용들, 우리가 만들어냈지만 우리 스스로는 그 속도를 결코 따라잡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소외된 모습으로의 인간들,  삶의 의미를 찾아 수많은 길로 방황하고 헤매이는 현대의 영혼들과 그 많은 질문들. 소설 속에서는 어쩌면 종교와 과학이 서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서로를 견제해서 이끌어나가야 할 동반자적 관계는 아니었는지 묻고 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명확한 선악의 판단을 배제함으로써 읽는 사람 모두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굳이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문제 말이다.  허구적 이야기에 불과한 소설 한 편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닌가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읽는 사람의 마음에 와닿는다면야 글의 형식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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