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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으로부터의 해방
이베타 게라심추쿠 외 지음, 류필하 외 옮김 / 자인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된 독일의 바이마르 시가 개최한 <미래로부터 과거의 해방, 과거로부터 미래의 해방>이라는 주제의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열 편의 수상작 모음집이다. 당시만 해도 흥분되는 화두였던 대망의 21세기 "2000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씌여진 각각의 작품들은 저마다 독특한 문체와 서술방식 다양한 주제(물론, 시간의 해방이라는 대주제 아래에서)로 읽는 사람의 만족감을 크게 해준다. 2000년. 벌써 까마득한 옛날일처럼만 느껴지는 그 때는 정말이지 광신적 종교론에서부터 각 분야의 '밀레니엄 버그' 를 없애기 위한 노력들로 하루하루가 긴박하기만 했었다. 드디어 그 역사적 순간 2000년 1월 1일 00:00시가 되면서 천 년 단위의 달력을 보며 살게 된 내 생이 나도 모르게 기쁘고 감격스럽기까지 했지만, 자고 일어난 그 날의 아침은 여전히 평온하기만 했더랬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했던 그 순간도 결국 지나가는 순간. .... 연말과 연초야말로 "시간"이란 것에 대해 평소보다 더 많은 것을 떠올리게 되는 때가 아닐까 싶다.
"시간"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몇 번을 곱씹어도 언어 그 자체에서 얻어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2위 수상자인 루이스 월처가 말했듯이 <<'시간' '과거' '현재' '미래' 같은 말은 '책상'이나 '버터'같은 말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말들을 사용할 떄 우리가 뭘 말하고 있는지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의 글을 좀 더 인용하자면 <<주인공은 시간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만든 시간의 이미지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연속적으로 흘러갈 뿐일 흐름(하나인지 여러개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안에서 쪼개는 순간 흘러가버리고 주어진 이름을 버리게 되는 시간이라는 물결을 굳이 나누고 나누어 기억을 안치하고 소망을 묻어두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한편 8위 수상자인 미하일 엡스테인의 신조어인 '시간의 살인(tempocide)'에 따르자면, 나는 늘 과거로 미래를 죽이고 있는 시간의 살인자에 속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에 닥쳐서, 아니면 그저 감상적인 향수에 빠져서 유년기에 침잠하는 일이 잦은 나로서는 무의식적으로 과거로의 도피를 무기삼아 내 앞에 다가서는 미래를 죽이고 있는 셈이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지식인들의 풍부한 이야기를 이렇게 한 권의 책을 통해 한꺼번에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각각의 이야기가 보잘 것 없고 실망스러울 뿐이라면 그런 기회가 썩 반갑지 않겠지만 개인적 감상으로는 이 책이 주는 기회는 매우 반가운 축에 속한다.
"바람의 사전"이라는 제목으로 1위에 입상한 게라심추쿠의 경우(나와 동갑인 그녀는 20살 되던 해에 이런 일을 해냈다!) 사전적 서술 방식으로 에세이를 작성함으로써 단연 눈길을 끌었는데 그녀가 선택한 저술방식은 확실히 눈에 띌만 하며, 사전의 각 항들과 설명내용은 다른 에세이들과는 달리 은은한 문학적 향을 풍긴다. 각 에세이들은 은유적이기도 하고, 정치적이거나 혹은 역사적이며 때로는 작가의 목소리가 격앙되기도 하고 어떤 글은 읽는 이를 설득하기도 한다. 교육한국 대한민국에서 자라서인지 역시 순위가 결정된 작품의 경우에는 일단 그의 등수부터 확인하게 된다(이 책은 수상 순위대로 배열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 내 나름의 등수를 다시 매겨보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 순서없이 3위까지를 뽑는다면 시간의 언어(원래 2위), 시간의 살인(8위), 향수(9위) 정도랄까. 몇 편의 경우에는 저자의 현란한 서술기법과 동서양 넘나드는 지식의 깊이를 따라가기 어렵기도 했지만 이는 그저 읽는 나의 지식과 사유의 깊이가 그에 미치지 못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련다(번역은 모두 잘 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