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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사르트르/프로이트/키르케고르
반 리이센 외 / 종로서적 / 1983년 2월
평점 :
절판
끝까지 읽을까 말까를 계속 고민하게 만들었던 책이다. 아마 고등학교 때 구입한 책인 것 같은데, 출판년도를 보니 그 당시에도 상당히 오래된 책이었나 보다. 막연히 제목에 등장하는 대단한 인물들의 이름만 보고 샀다가 손도 못 댄 것 같은데, 지금도 쉽게 읽히진 않는다.
이 책에서 선정한 4명의 인물은 말 그대로 사상계의 거목들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대단한 인물들에 관한 책이 대단한 책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이 책은 미국 장로교 개혁 출판사에서 발간된 현대 사상가 시리즈 중 일부를 발췌해서 번역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책의 이러한 배경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으나, 읽다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배경이었다. 전체적으로 책의 구성은 읽기에 좋은 편이다. 니체의 경우엔 허무주의, 사르트르에서의 존재 등 각 사상가들의 중심되는 사상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비평이 매끄럽게 잘 이어진다. 그러나 구성의 미학은 거기까지이다. 가뜩이나 어렵고 난해한 주제들을 더욱 심란하게 만드는 것은 두 줄의 문장만 이어지면 처음 시작했던 얘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번역의 문제이다. 특히 '존재'에 관한 사르트르 이야기에서는, 엄청나게 남발되는 '존재'의 존재가 이리저리 뒤섞여서 어느 곳이 자기 위치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물론 매끄럽게 번역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주어와 술어가 제 짝을 찾지 못하는 경우에는 원래 하려던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추리하면서 읽어야 했다.
저자들과 역자 모두 신학에 관계된 사람들이다 보니, 각 사상들을 신학의 관점에서 평가한 부분도 이 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각 사상의 중심적인 개념들을 설명하려는 노력에 있어서는 매우 객관적이려고 노력한 흔적도 보이나, 일순간에 종교재판관 같은 태도로 돌변하는 저자의 논리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어려움 중의 하나이다. 각 사상가들의 중심사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좋은 경험이기도 했다. 허무주의의 예언자였던 니체와 그리스도의 관계, 키에르케고르가 기독교에 대해 내세운 논리 등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글이었다. 물론 철저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씌여진 이 책의 모든 글이 그랬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노오란 책장에 작은 글씨가 빽빽한 옛날 디자인의 철학서를 끝까지 읽게 된 이유는 약간은 그 빽빽한 글씨들이 주는 긴장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이라면 그런 디자인의 책을 아무도 사지 않겠지만 말이다. 蛇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