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학고재신서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는 몇 가지 좋지 않은 습관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고약한 것 하나가 바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예 듣지를 않거나, 듣더라도 성심껏 듣는 일이 적어서 내 마음대로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곤 하는 일이 적잖이 있다. 이번 가을, 친구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늘 가이드북과 팜플렛 속의 빈약한 정보로만 일관하던 나는 많은 사람들의 추천으로 계획에 없던 생생한 1일 가이드 투어를 경험하게 되었다. 문화재와 작품이란 그저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 굳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쫓아다닐 필요없다고 자만감에 빠져 있던 나는 하루종일 성심껏 새로운 문화의 작품세계로 안내하는 충실한 설명을 들으면서 나의 고집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달았다. 역시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알고 보는 것인가였다. 유명한 어느 분의 말처럼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처음 읽게 된 책이 이 책이었다는 것도 이렇게 되고 보면 우연은 아닌 것이다.
책꽂이에 몇 년을 꽂혀있었는지 드물게 먼지가 쌓여있는 1994년 발행본을 꼭 10년만에 열어보게 되었다. 드문 설레임을 가슴에 안고서 말이다. 과연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지 내가 알고 있다고 자신하던 것들이 어디까지 거짓없는 마음이었는지..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커다란 스승을 만난 것 같았다. 그동안 문화와 역사 속의 스며있는 아름다움을 보고자 애써왔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눈에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보아도 어디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내게는 한낱 옛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최순우 선생은 한결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보통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그러기에 보지 못하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펼쳐보여 주신다. 선생의 말씀대로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못한 것의 차이는 단지 기교로써만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을 만들고 품어낸 민족의 성정과 염원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며 한민족으로써 그 꾸밈없는 정신을 발견할 수 있는 우리에게 그 아름다움은 한층 값진 것이 된다.
다양한 분야의 많은 문화재에 대해 한결같은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시는 최순우 선생의 글에서는 못난 자식일지라도 그 어여쁜 점을 찾아 남에게 자랑하게 되는 따스한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일견 지나치게 주관적인 민족애의 발로로도 보일 수 있지만 나 역시 그 글에 감동하고 따스해지는 것은 나도 역시 한민족의 성정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