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땐, 귀신영화가 가장 무서웠다. '사탄의 인형'에 나오는 처키나 그보다 더 앞서는 강시 같은 존재가 내 어릴 적에는 꿈 속에 나타날까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무서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이 아니라 나와 똑같이 입고, 먹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걸 깨닫게 된 건 아마도 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특히나 역사에 대해 공부하게 되면서 알게 된 일제시대와 6.25 사변 당시의 끔찍했던 살상들은 나에게 인간 그 깊은 본성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사실 역사는 과거일 뿐이고 그 과거를 현재에 생생하게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어느 분야보다도 역사는 피부에 와닿는 진실로써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읽다 보면,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거시사 뿐만 아니라 미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줄기 속에서 쥐로써 표현된 한 유태인가족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어느 거창한 역사교과서 속에서보다 더욱 생생하고 가슴저미게 과거 속의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쥐"는 만화이다. 세계사적으로도 고난의 시기였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한 유태인 가족이 겪었던 일에 대한 사실적인 만화이다. 처음에는 만화라는 매체로 이런 심각한 주제를 얼마나 깊게 담아낼 수 있을까 의아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만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역사적 진실이 담겨있는가이다. 그런 점에서 "쥐"는 마치 전쟁에 휩쓸린 한 가족의 고난사를 눈 앞에서 보는 듯,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중압감으로 우리에게 역사를 직시하라고 요구한다.

만화로 이런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토록 마음을 동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놀랍다.나는 중간에 몇 번이나 가슴이 저며와서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친구"란 무엇인지에 대한 아버지의 냉혹한 정의와,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아무리 아들이 말해도 만일을 위해 먹을 것을 조금씩 저장해놓을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절박함.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상처가 평생을 가더라도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임을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죽은 줄만 알았던 가족이 살아 돌아왔을 때 보이는 애끓는 눈물은 비록 쥐로 그려진 만화 속 주인공의 눈물이었지만, 내게는 실제 내 앞에서 그 재회가 일어나는 것만큼이나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이 책과 만나게 된 것이 내겐 행운이었던 것 같다. 아우슈비츠의 상처가 어떤 것인지,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시킬 수 있는지 그 역사적 진실과 대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이 바로 저자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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