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책 읽는 클린턴, 안 읽는 부시

[조선일보 2004-05-14 17:44] [조선일보]

“클린턴은 나에게 전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 작가)의 신간을 읽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책을 구하려 했지만 그 책은 아직 출판되지 않았다. 클린턴은 교정쇄를 읽은 것이다.” 백악관의 테러 담당 조정관을 지낸 리처드 A 클라크가 펴낸 책 ‘모든 적들에 맞서’의 한 대목입니다. 클린턴은 참모들이 건네준 메모를 꼼꼼히 읽기로도 유명했고, 최신 화제를 다룬 책과 잡지를 종종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르윈스키 스캔들로 곤경에 처했을 때 브라질이 낳은 세계적 작가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를 읽으며 마음을 달랬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후에 그는 코엘류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독후감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처럼 책을 좋아하는 클린턴이라고 하지만, 아직 출간되지도 않은 책의 교정쇄를 구해서 읽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특히 마르케스는 미국에 비판적인 남미의 좌파 지식인 그룹에 속하는 작가인데, 미국 대통령이 그런 작가의 글을 챙겨 읽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마르케스는 지금도 미제국주의에 맞서 단신으로 싸우겠다는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절친한 사이입니다. 카스트로가 최고급 쿠바산 시가를 마르케스에게 정기적으로 보낼 정도입니다. 클라크는 ‘모든 적들에 맞서’에서 클린턴의 독서열에 찬사를 보냈지만, 현재 백악관의 주인인 부시는 한 방에 날려버립니다. “부시는 일부 고위 보좌관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 우리는 일찍부터 대통령은 독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밤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는 이야기를 들어온 터였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클라크는 단순히 부시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만 흉본 것이 아닙니다. 그는 클린턴이 보다 다양한 정보와 보다 폭넓은 조언자를 찾았던 것이 독서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는 식으로 지적했습니다. 책을 멀리하는 부시는 소수의 측근들에게만 귀를 기울인다는 소리지요. 책이란 것이 저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소통의 수단이란 점에서 보면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은 보다 많은 타인과의 대화에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독서로 얻은 지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책읽기라고 할 수 없겠지요. (박해현 Books팀장 hhpark@chosun.com )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 주소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OD&office_id=023&article_id=000006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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