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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앨런 피즈 외 지음, 이종인 옮김 / 가야넷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심리학에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다.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도 불리는 이 효과는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 기대, 예측이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을 말한다. 가령 '너는 정말 똑똑한 아이구나'라는 칭찬이 아이의 학습능력을 실제로 높인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에 관한 책은 정말로 많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각각 세상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가 늘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해하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책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일 테고 이제는 이 책도 남녀의 차이를 다룬 스테디셀러에 거의 진입한 듯 하다.
우선 이 책은 재미있다. 편한 기분으로 뒹굴뒹굴하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 한 권이 정말 빨리도 읽힌다. 위트 넘치는 삽화와 예시들도 책 읽는 내내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뒤 이 책에서 얻고자 했던 것들을 과연 얼마나 얻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볼 때, 나는 그리 많은 것들을 찾아낼 수 없었다. 흥미롭고 유쾌하긴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지 여러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 리뷰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는 남자친구에게도 즉시 이 책을 읽어보도록 했고 우리는 모두 책 내용 상당부분에 긍정적으로 동의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책의 결정적이고도 결론적인 전달방식이 그리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친구가 찾아내지 못하는 길을 내가 알아냈을 때, 어느 순간엔가 나도 모르게 '난 여자인데도 길을 잘 찾을 때가 있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생각인가. 여자가 남자보다 공간지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는 어려운 길을 찾아낸 것을 '사건'으로 여긴단 말인가.. 이후 몇 사건을 겪으면서, 나와 남자친구는 이 책을 읽은 것이 우리의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오히려 때로는 서로의 부당한 처사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게 만든 악효과도 있었다는 것과 더불어 말이다.
다양한 주장과 경험에 접해보는 것은 좋지만, 결정적인 사실인 것처럼 접근하는 것들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도 모르게, 그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순간 나는 이미 그 예언을 몸으로 실천하고 마음을 빼앗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물론 다르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대 일로 만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이해가 선행될 일이지 단순히 '나는 여자니까' '나는 남자니까'하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