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 하서명작선 82 하서명작선 10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 하서출판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읽은 책의 종류를 지하철에서 읽을 수 있는 책과, 그럴 수 없는 책으로 나눈다면 분명 <구토>는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구토'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 내게는 아무런 방해가 없는 조용한 공간과 구애받지 않는 시간과 기꺼이 주인공 '로캉탱'과 함께 하고자 하는 빈 마음이 필요했다.

철학자가 쓴 소설책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사상과 세계에 대한 관념을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 또는 다른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거리낌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 사르트르의 <구토> 모두 마찬가지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로캉탱'의 생활과 그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마치 내가 비 내리는 부빌의 어느 까페에 앉아 그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내가 '로캉탱'이 되는 경험 없이는, 그토록 몰입해서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잡지 않고는 이 소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철학자의 소설이란 읽기에는 부담스럽지만, 그들의 사상을 몸으로 느끼기에는 무엇보다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서는 무지하더라도 '구토'를 통해 '무(無)'로써의 '존재', 즉 존재하되 어떤 필연으로써가 아닌 우연적 결과로써의 존재하는 사물들의 충돌과 이해를 발견하게 된다. 로캉탱은, 아니 사르트르는 순간 순간 주위의 작은 사물, 미세한 존재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듯한 체험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존재 또한 그 모든 사물로써의 존재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소유냐 존재냐'에서 에릭 프롬이 추구하는 존재로써의 삶이 '채움'이라면, '구토'의 로캉탱에게 존재는 우연, 無, 그에 대한 초월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본질적인 것, 그것은 우연이다. 원래, 존재는 필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존재란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뿐이다. 존재하는 것이 나타나서, '만나'도록 자신을 내맡긴다. ..그런데 어떠한 필연적 존재도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우연성은 가장이나, 지워 버릴 수 있는 외관이 아니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무상인 것이다. 모든 것이 무상이다. ...'

'...사람이 살고 있을 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배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나가고, 그뿐이다. 결코 출발이라는 게 없다. 나날이 아무런 운율도 이듀오 없이 그저 계속된다. 그것은 끊임없고 단조로운 덧셈이다...'

이 책에도 '구토' 외에도 사르트르의 단편 몇 편이 실려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에로스트라트'를 추천하고 싶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거리에서 자꾸만 누군가와 부딪히고 또 다른 누군가를 밀쳐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개미만한 사람들과 나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기를 바라고 싶어질 때. 즉,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추잡함과 그 치열한 삶에 대한 경멸이 일어날 때 우리는 모두 에로스트라트가 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 한 권의 책에 담긴 여러 편의 소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우연성이나 무상함과 같은 큰 흐름은 동일한 것 같다. 다만,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색깔을 달리 하며 우리를 안내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햐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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