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삶이냐 홍신사상신서 24
에리히 프롬 지음, 정성환 옮김 / 홍신문화사 / 1991년 11월
평점 :
절판


나이가 든다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예전에 어렵게만 느껴졌던 책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비교적 수월하게 읽고 나서 '소유냐 삶이냐'에 도전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는데 실패했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너무도 근본적인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지면서 나는 이 책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

이 책에서 프롬은 삶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을 구분하고 있다. 소유하는 양식과 존재하는 양식이 그것이다. 프롬도 인정하고 있듯이, 존재의 양식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말로 표현해내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프롬은 능동성과 수동성, 의지, 사랑 등의 여러 심리학적 측면을 통해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의 방식을 설명하고자 애쓴다.

동양의 노자와 서양의 에크하르트 등의 철학에서 존재를 중시하고 소유를 배척하는 동일한 측면을 발견해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든든한 지지대를 마련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이 책이 1976년에 씌여졌다는 사실이다. 수 십년 전에 씌여진 책에서 프롬은 오늘날의 사회를 설명하고, 진단하고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소유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 파괴와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것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 있는 그대로의 삶을 인정하는 존재의 방식에 대한 철학서는 이 책 말고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여타 철학서들과 이 책의 다른 점을 꼽으라면 나는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장을 들고 싶다. 프롬은 마지막 장'새로운 사회의 특징'에서 그가 제시하는 이상향인 '존재의 나라'가 세워지기 위한 제반조건들과 그에 따른 우리의 노력사항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나열하고 있다. 프롬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사회가 현실사회에서 가능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프롬의 이상향은 말 그대로 이상향에 가까울 뿐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신의 철학이 인간을 위해 사용되고 궁극적으로 인간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이용되기를 원하는 한 철학자의 절실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

하루하루 더 많이 소유하기를 갈망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 소홀해지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프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진다. 빼앗고 정복하는 데에서 얻는 행복이 아닌 공유와 희생과 사랑안에서의 행복을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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