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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어빈 D. 얄롬 지음, 최윤미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얄롬의 책을 직접 읽기 전까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추천하는지,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은 또 주위에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의아했었다. 이제야 그 의아함이 풀렸고, 나도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되었다.
얄롬은 실존심리치료자이다. 실존주의적 심리치료에 관해서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한 마디로 인간의 실존적 관심사에 초점을 두는 심리치료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실존적 관심사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으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이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으로 얄롬은 죽음, 자유(선택과 책임), 소외, 삶의 의미 이렇게 4가지를 들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은 이 조건들이 사람들에게 자각되고, 삶 속에서 그 존재를 드러낼 때 우리는 무력감을 느끼고 고통을 겪고 절망하게 된다. 이 책에는 그러한 어려움에 놓인 열 명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우리와는 인종도, 나이도, 국적도, 문화도 모든 것이 다 다르지만 인간 존재로서 겪어내는 그들의 아픔과 내적 투쟁은 우리에게도 진한 감동을 준다. 왜냐하면 우리도 동일한 조건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이건 간에 대중들을 위한 글쓰기 능력이 있고, 그럴 마음이 있는 훌륭하고 진솔한 전문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할 만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얄롬은 그런 점에서 축복 같은 인물이다. 수업 시간에, 혹은 다른 이론적 경로를 통해 그의 이론을 접해보았을 뿐 이제야 막 그가 쓴 책을 한 권 읽어보았을 뿐이지만 아마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충분히 동감할 것이다. 치료자로서의 권위나 거창한 소명의식 없이, 그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동료이자 동반자로서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그의 진실된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나며, 특히나 보통의 경우에는 숨기고 싶어하기 마련인 자신의 약점이나 있는 그대로의 생각들까지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그의 솔직함이 이미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심리치료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것은 결코 헛된 노력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얄롬은 최대한 전문용어의 사용을 줄이고, 전문적 개념들은 알기 쉽게 풀어쓰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또한 열 명의 내담자가 풀어놓는 각기 다른 색깔의 이야기들은 마치 열 편의 짧은 소설을 읽는 듯 흥미롭게, 그러면서도 얄롬이라는 동일한 등장인물에 의해 조화롭게 전개될 것이다. 이미 이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 프롤로그를 꼭, 주의깊게 읽어볼 것을 권한다.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얄롬의 인간관, 치료 철학 뿐만 아니라 뒤에 전개될 내용들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깊은 성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이 별로여서라기보다는 마음 속에 깊이 와 닿는 주옥같은 문장들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나고 싶어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원서를 주문했다. 한 권의 훌륭한 책이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지 오랜만에 실감했다. 삶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실존의 조건들을 부여했지만, 그러한 불안과 고통 속에서도 살아나갈 희망과 기대 또한 주었다. 오래된 유행가 가사 같지만, 나의 가장 큰 희망과 기대는 내 옆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당신이 있다는 것. 혼자 가야 하는 길이지만, 이 길을 누구도 함께 가 줄 수는 없지만 내 옆에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수많은 당신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얄롬이 주는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