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143호 - 2009.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09년 3월
품절


2021394199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신체 어딘가가 지워지는 듯한, 옅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얼음을 가득 채운 위스키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자신이 좀더 부드러운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특별한 사고가 생기지 않는 한 그는 앞으로 삼십구만 사천백구십구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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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예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고종석 옮김 / 문학동네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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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윔에 대해서 써야지.-18쪽

내 애인의 중국 이름.
나는 그에게 그의 언어로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20쪽

때때로 나를 유혹하는 갖가지 행위들, 예컨대 이 젊은 남자의 죽음. 나는 그의 이름이 뭔지,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이제는 모르겠다. 글자 그대로 그의 무의미는 크다.-23쪽

그날 같은 여름날 오후면 내가 그랬듯 계속 횡설수설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
이젠 그럴 의욕도 용기도 잃었다.-25쪽

당신은 고독을 향해 직진하지.
난 아니야, 내겐 책들이 있어.-30쪽

난 하얀 목재 토막이죠.
그리고 당신도 그렇지요.
다른 빛깔의.-54쪽

당신은 당신 됨됨이 그대로예요, 난 그게 기뻐요.-55쪽

날 보렴.-80쪽

난 이제 입도 없고 얼굴도 없어.-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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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희망곡 문학과지성 시인선 315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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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모스크바까지
모스크바에서 또 서울까지
우리들은 잠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지워진 몸으로 연결되었다. 이제야
수많은 손가락들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다.
잠 속의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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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잠 속의 모래산 민음의 시 111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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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문득 머나먼 나날을 지난 어느 날 같은. 눈을 뜨면, 그 어느 날의 어둠에 내 흰 몸 부드럽게 저며드는. 눈을 뜨면, 어느덧 나는 그 무심한 어둠 속 그대가 쓰는 물글씨처럼.-53쪽

물글씨처럼, 두 그루의 전신주와 두 알의 갓등이 만드는 두 개의 둥근 세계 사이에서 뜻 없이 웃어보기도, 그래, 그래 보기도 하는. 물글씨처럼, 한번도 지나본 일이 없는 곳을 지나듯이 밤눈 내리는 언덕을 한량없이 오르는 겨울의 길섶 어딘가. 물글씨처럼, 아무리 멀리 돌아가도 그대를 피하지 못하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53쪽

나는 두 그루의 전신주 나는 두 알의 갓등 나는 두 개의 그 둥근 세계를 향해 힘껏, 돌팔매질도 해보았던 것인데. 그러나 다시 눈을 뜨면 문득 머나먼 나날을 지난 어느 날 같은. 눈을 뜨면 아직도 나는 이상한 나라에 갇힌 앨리스처럼. 그대 아주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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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토끼 2009-05-21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홍아 금홍아도 좋지요? 시인도 좋코.

whistle 2010-02-06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홍이와 앨리스라..
 
벨 자
실비아 플라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2월
절판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들은 내가 들고 찍을 소품을 찾으려 애썼다.
제이 시가 시집을 이야기했지만, 사진 기자는 너무 뻔해서 안 된다고 했다. 시를 은유적으로 보여줄 만한 물건이어야 했다. 마침내 제이 시의 최신 모자에서 종이 장미를 떼어냈다.
사진 기자는 뜨겁게 달구어진 흰 조명을 조정했다.
"시를 쓰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줘요."
나는 창가의 고무나무 뒤로 펼쳐진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가장 큰 구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구름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구름과 함께 행운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술 선을 유지하는 게 아주 중요하게 느껴졌다.
"좀 웃어봐요."
결국 내 입술은 복화술사가 조작하는 인형의 입처럼 비틀리기 시작했다.
사진 기자는 갑자기 무엇을 예감한 듯 말했다.
"이봐요, 울 것 같은데."
멈출 수가 없었다.-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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