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구판절판


나는 먹고 마시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기다린다.-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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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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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에서 말들이 분리되는 순간
마차는 스톱! 하지 않았다
마차는
서서 생각하지 않았다-122쪽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쓴다, 나로부터 멀어지는 말발굽들처럼-122쪽

극적으로 쓰러지는 대단원의 인물들처럼
다시 일어나 화려하게 웃으며 무대인사를 하는 여배우처럼
다른 사람처럼-122쪽

나는 쓴다, 쓰고 나서 지우지 않고 쓴다-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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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남편 외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4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정명자.박현섭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구판절판


"빠벨 빠블로비치!" 멀리 떨어진 객차에서 또다시 이렇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목소리에는 너무나도 초조한 음색이 깃들어 있었다.
빠벨 빠블로비치는 또다시 서두르며 안절부절못했으나, 벨차니노프는 그의 팔꿈치를 꽉 잡고서 그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어때요, 내가 지금 가서 당신 부인에게 당신이 나를 찔러 죽이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어떨까요, 네?"
"무슨 소리,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빠벨 빠블로비치는 대경 실색을 했다. "그것만은 참아 주세요."
"빠벨 빠블로비치! 빠벨 빠블로비치!" 두 개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자, 이젠 가세요!" 벨차니노프는 줄곧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드디어 그를 놓아주었다.
"그럼 오시진 않는 거죠?" 빠벨 빠블로비치는 거의 절망적인 표정이 되어 마지막으로 이렇게 속삭이며, 옛날식으로 두 손바닥을 마주하고 비는 것과 같은 흉내를 냈다.
"당신께 맹세합니다. 가지 않겠습니다. 얼른 뛰어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230쪽

그러면서 그는 힘차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밀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빠벨 빠블로비치는 그 손을 잡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의 손을 뒤로 감추어 버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세 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그들 두 사람에게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완전히 사람이 달라진 것만 같았다. 바로 1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웃고 있던 벨차니노프의 마음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몹시 동요하며 갑자기 울컥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빠벨 빠블로비치의 어깨를 화가 난 듯이 꽉 붙들었다.
"만일에 내가, 내가 바로 당신에게 이 손을 내민다면." 그는 칼로 베인 커다란 상처 자국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자신의 왼쪽 손바닥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손을 그냥 잡으시겠지요!" 그는 핏기가 가신 떨리는 입술로 속삭였다.
빠벨 빠블로비치 역시 얼굴의 핏기가 가시고, 그의 입술 또한 떨리고 있었다.-231쪽

우리 둘이 이렇게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들었다.-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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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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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나 되어서 한량처럼 빈둥거리는 것은 아무래도 보기 좋지 않구나."
다이스케는 결코 빈둥거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은 직업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귀한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은 아버지가 가엾어졌다. 아버지의 단순한 두뇌로는 이렇게 의미 있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자신의 사상이나 정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예, 곤란한 일이지요."라고 대답했다. -41쪽

그 친구는 가끔 말린 은어나 곶감을 보내주었다. 다이스케는 그에 대한 답례로 대개는 새로 나온 서양의 문학 서적을 보냈다. 그러면 그 답장에는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증거가 될 만한 비평이 반드시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읽을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읽고 싶은 생각이나지 않는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읽어도 이해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내용의 답장이 왔다. 다이스케는 그 이후로는 책을 보내지 않고 그 대신에 새로 나온 장난감을 사서 보내기로 했다.-202쪽

"너는 평소부터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도 언젠가 철이 들 때가 오리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잘 대해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는 인간이라고 나도 체념해 버렸다.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인간만큼 위험한 건 없다. 뭘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심이 안 된다. 너야 네가 좋아서 그러고 있는 것이니 상관없겠지만, 아버님이나 내 사회적 지위를 생각해 봐라. 너라고 가족의 명예에 대한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겠지?"
형의 말은 다이스케의 귀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단지 온몸에 고통만을 느꼈다. 그렇지만 형 앞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을 정도로 동요하고 있지는 않았다. 모든 것에 대해 적당히 변명을 늘어놓아 세속적인 형으로부터 새삼스럽게 동정을 받으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는 그걸로 만족했다.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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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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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말씀하실 수 없는 게 뭔데요?"
"그것은 내가 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는 거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편안하게 돌아다니면서 그들과 아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들 모두가 망연자실할 정도의 범죄에 관계돼 있다는 게 가능할까? 아니면 그건 나의 상상에 불과한 걸까? 나는 미쳤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날마다 그 증거를 보거든. 내가 의심하는 그 사람들이 증거를 끄집어내 보여주고 나한테 그걸 들이밀어. 시체들을 말이다. 그들이 돈을 주고 산 시체들의 조각들을 말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친구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의 거실에 있는 램프를 보고 예의상 좋다고 말하니까 그들이 '그래, 좋지? 폴란드계 유대인 가죽으로 만들어졌대. 그게 최고야. 특히 폴란드계 유대인 처녀들의 가죽이 최고라고'하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 집의 화장실에서 비누포장지에 '트레블링카-100퍼센트 인간 스테아르산염'이라고 써 있는 걸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이렇게 자문해보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이건 어떤 종류의 집일까? -151쪽

하지만 나는 꿈을 꾸는 게 아니야. 나는 너의 눈을 보고, 노마의 눈을 보고,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친절함만을, 인간적인 친절함만을 볼 뿐이야.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지. 마음을 진정시키자. 너는 하찮은 일을 과장하고 있어. 이게 삶이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받아들이고 사는데, 왜 너는 그럴 수 없니? 왜 너는 그럴 수 없니?"
그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그는 생각한다. 어머니가 원하는 게 뭘까? 어머니는 나한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자 하는 걸까?
그들은 아직 고속도로에 진입하지 않은 상태다. 그는 차를 멈추고 엔진을 끄고 그의 어머니를 껴안는다. 콜드크림과 늙은 살 냄새가 난다. 그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괜찮아요, 괜찮아. 곧 끝날 거예요."-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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