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도종환 지음 / 사계절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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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종환의 디스크 쇼'가 아닌 '도종환의 교육 이야기'를 듣는다. '이종환'이라는 DJ와 동명이라는 것 때문인지 도종환님의 육성으로 직접 이야기를 듣고있는 기분이다. 선생님에다가 시인, KBS 바른언어상을 수상했다는 이력처럼 책 속의 고운 말들이 아마도 이런 상상을 유발한 건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미사어구나 수식어 없이 단아하게 적혀진 글들은 곱게 늙으신(세상을 아름답게 살아오셨다는 느낌이 얼굴 속에 팍! 팍 묻어나는 그런) 어르신을 뵙는 듯 마음이 밝아지고 정화되는 느낌이다.

책은 도종환님이 집에서,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느낀 것들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직접 현장을 발로 뛰시는 분인지라 어느 말하나 쉬 놓칠 수 없다. 때로는 한숨 속에서, 때로는 미소 속에서 책을 읽으며 우리들의 교육과 선생님, 학생을 만난다. 우리 아버지 시대에 비해 우리가 받은 교육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상당히 발전했으며 오늘날의 교육 역시 민주적이고 학생중심으로 많이 발전해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와 문화(특히 청소년 문화)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부족한 부분에서 오는 오해와 모순을 일상생활을 통해 하나하나 집어나간다. 그리곤 그 틈을 메우기 위한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역할까지 조심스레 얘기하고 있다.어쩌면 이 책에선 좀처럼 좁혀질 것 같지 않은 현실의 괴리를 한 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엮어나가자 노력하는데 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특히 책 내용 중에서 시시포스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을 향해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는 일, 하지만 다 올려놓았다 싶으면 또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곤 하는 바위 이야기다.

도종환님은 말한다. '교육은 어쩌면 매일 그런 일을 되풀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지만 거기서 다시 일어서서 허무와 절망과 실패로부터 매일 다시 시작하는 일, 그게 내가 매달려야 할 교육이라 생각한다.'

나태한 나, 우유부단한 '문샘'에게 일침처럼 다가온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쉬 바꿔나가지 못한다. 이런저런 핑계거리로 현실의 교과서안에서만 안주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까지 든다. 점점 작아지고 옹색해지는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아래로 떨어지는 시시포스의 돌은 아이들의 돌이 아니라 선생님, 아니 나 자신의 열정인지도 모르겠다. 언덕위로 올려놓으려 하지만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바위...

끝없이 이어지는 희열과 추락의 반복일지라도 오늘의 주어진 무게만큼 밀어올리려 노력하고 싶다. 내일 다시 굴려 떨어진다 하더라도 오늘의 몫을 채우고 싶다. 아이들을 훌륭한 인격형성을 위해서라든가 국가나 민족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말은 삼가더라도 자신과의 줄다리기에 열심히 임하고 싶다.

오늘도 언덕 위를 향해 열심히 바위를 밀고 있을 도종환 선생님을 생각한다. 나 또한 오늘 실망하고, 내일 좌절하더라도 다시, 다시 도전하리라 다짐한다.

PS: 전혀 초면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글, 특히 수필이나 산문의 경우 마치 오래 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 진면목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도종환 선생님, 수필 형식의 잔잔한 일상이지만 그 평범함 속에 들어있는 비수는 예리하고 따끔하기만 하다. 보면 볼수록 도종환님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인 듯 하다. 그래서 글을 사랑한다. 수필과 산문에서 묻어 나오는 작가의 이미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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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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쑈킹하군... 한편의 유태인(전쟁)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잔잔하면서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폴리쳐상'이 전혀 아깝지 않은 느낌의 만화. 만화 같으면서 만화 같지 않은 만화... 저자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작은 전쟁사로 독일의 침공과 함께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수용소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전쟁의 끝과 함께 잃어버렸던 아내를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전쟁'과 '인간'이라는 무거운 문제를 다루면서도 만화만이 가지는 장면들의 연상력과 동물들의 의인화로 어렵지 않으면서도 직설적으로 잘 표현했다. 유태인을 쥐, 나치를 고양이라는 동물로 빌어 표현했는데 단순히 전래동화 식의 '토끼와 호랑이'라는 구도로만 볼 수는 없다. 못생겼지만 어둡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쥐와 약싹빠르게 그들을 쫓아다니는 고양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본다면 더없는 흥미른 제공하리라 본다.

거기에 보통의 편견을 가진 만화와는 다른 진지한 그림들... 단순히 내용을 설명하는 부수적인 산물에서 벗어난 그림들만의 독창적인 이미지를 전하기에 충분하리 만치 충실하게 그려졌다. 책 뒤의 부록에서도 나왔었지만 13년간의 작업이 느껴질만큼의 노력이 보인다. 구도를 만들고, 모델링을 하고, 스케치를 하고, 사진을 찍고... 한컷씩 한컷씩...

만화가 아닌 만화책...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매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실험적이고 진지한 만화가 많이 나와서 천편일률적인 형식의 만화와 만화에 대한 일반적 시각에 새로운 바람이 일었으면 한다. 투박하면서 섬세하고... 거기에 무척이나 사실적인 '쥐' 책으로 보는 또다른 '아름다운 인생'이 아닌가 싶다. 독일의 유태인 정책의 무자비함과 그 속에서 생명을 존속시키기 위해 싸우는 유태인. 그리고 전쟁 속에서의 사랑과 꿈... 우리 일제침략기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다.

아트 슈피겔만... '쥐' 멋진 책이다. 쥐라는 동물이 예뻐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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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지음, 김경숙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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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얘기했듯이 지난날의 나 자신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어떤 형태로 만난 이성이든 간에 그들의 생각과 느낌에 소홀했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런 아쉬웠던 지난날들의 기억과 함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는다. 아니 화성에서 온 '나'를 되돌아보고 금성에서 왔을 '그녀'들을 생각해본다.

책의 중심내용이란, 남자와 여자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차이를 이해해서 보다 '사랑스런' 관계를 유지해 보자는 것인데... 오호 통제라! 세상사가 어디 마음먹은 데로 쉬 풀리기만 하랴... '사랑'과 '관심'만으로 모든 남녀 문제가 해결될 듯 하다가도, 우리가 느끼고 겪어왔듯이 그 '해결'이란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여기서는 남자를 '만능수리공(맥가이버)'이 되고픈 '화성인'들로, 여자들은 '가정진보위원회'를 꾸려 가려는 '금성인'들로 표현한다. 또한 남자와 여자를 동굴과 우물, 고무줄과 파도에 비유하면서 그 해답을 찾아간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당연히 모든 환경과 여건이 틀리다는 걸 인정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저자 자신의 경험과 상담으로 얻은 다양한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싫든 좋든 어떻게 해서든 부딪혀야만 될 우리들의 반쪽, 아니 세상의 반쪽. 우리 자신과 더불어 나머지 반을 좀더 가까이 알게된다. 어머니, 친구, 애인, 선배, 후배, 누나, 동생... 한 남자로서 무수히 지나쳤었던 여자들의 모습이 지나간다. 남자와 여자. 이름이 다르듯 그 생각과 행동이 틀리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상대방을 위한다고 한 행동들이 자칫 상대의 맘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땐 왜 몰랐단 말인가... 물론, 어쩌면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그런 남녀 사이의 무지에서 오는 '상처'를 날카롭게 집어주고 해결방안까지 자세히 적어 놓았다. 일종의 연예백과사전이랄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심리나 행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는 의학서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꼭 남녀간의 문제가 아니라 할지라도 남자인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같은 책.

나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나아가 현재 생활은 만족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직장을 다니는지... 등등. '나'라는 특수한 상황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남자라는 50퍼센트의 공통분모에서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내적, 외적 욕망과 그로 인한 상처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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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우리 시대의 인물읽기 1
장정일 외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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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아니나다를까 제일먼저 떠오르는 건 '거짓말 사건'이다. 그 사건이 한창 불거져 나올 무렵 책방에서 일하던 한 친구로부터 이미 국가로부터 '판금'으로 분류돼 회수되어버린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빌려봤던 기억이 남는다. 문학적인 가치보다는 다분히 눈요기감으로, 호기심에 휩싸여 집어든 책이었다. 파격적이고 가학적인 '흥미있는' 내용, 하지만 대충 건너뛰며 속독으로 빠르게 읽어 내렸던 책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 불법CD를 통해 가슴 졸이며 봤던 무지 야한 영화, '거짓말'.

물론 장정일과의 첫 만남이 순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저그런 3류작가로 치부해 버리기엔 '뭔가 큰걸 놓쳐버리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단순히 '섹스'라는 눈요기를 벗어나 '인간 장정일'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이고 깊이있게 접근해 보고자 이 책을 든다.

책은 '장정일'의 모습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주변 사람들의 평과 장정일의 작품을 통해 표현한다. 첫 번째로 '인간 장정일'에서는 작가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다. 두 번째로 '작가 장정일'에서는 작가(시, 소설)와 원작자(영화)의 면에서 장정일을 논한다. 그리고 '장정일의 작품'에서는 대표적인 시, 단편소설, 시나리오를 실어놓았다.

1부. 인간 장정일 타인의 입장에서 쓴 초반부의 평에 비해 뒷부분에 나오는 작가 자신이 직접 쓴 '단상'이 어쩌면 장정일을 더 잘 표현해 놓은 듯 하다. '단상'이라는 말처럼 그의 위트와 유머는 기발하고 진지하게 느껴진다. 조금은 괴팍하면서도 한편으론 진지하고, 날카로운,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사람일거라는 느낌이 팍! 팍! 전해진다.

2부. 작가 장정일 내용이 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장정일에 대한 글 중에서 가장 비중이 있어야할 '작가'로서의 장정일에 대해 너무 전문적으로 설명한 듯한 느낌이다. 후덥지근한 날씨에서 오는 끈적끈적한 느낌도 일조를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난해하고 전문적인 '작가론'은 장정일에 대해 사전준비 없이 접근을 시도하는 이들(나 역시 그렇다)에겐 커다란 벽처럼 느껴진다. 먹음직한 붕어빵, 앙꼬는 있지만 너무 뜨거워 감히 삼킬 수가 없다.

3부. 장정일의 작품 '역시 장정일이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색다른 느낌으로 읽었다. 특히 '모기'라는 글이 인상깊다. 인간적인 살냄새가 물씬 풍기면서도, '글쓰기'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일침(?)이 멋지다. 그리고 약간은 신비스러우면서 복잡한 구조의 '보트하우스'.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조금은 괴팍스런 옆집 아저씨를 만나고 온 듯한 느낌. 낮에는 음탕한 농을 곧잘 하면서도 저녁이 되면 커다란 바가지 가득 정성스레 물을 길어 화단을 가꾸는, 밤이 되면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다가도 술이 깬 새벽, 뒷주머니에서 꺼낸 하모니카에선 잔잔한 팝송이라도 한 곡 흘러나올 것 같은 아저씨...

그런 느낌의 장정일. 자신만의 물음과 화두를 무심한 듯 세상에 던져놓곤 그 잔물결들을 천천히 음미하고, 즐기는 듯한 모습이랄까... 그리곤 그 잔물결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내는 '끼'를 간직한 사람인 듯 보인다.

나 역시 감히 '장정일 팬'이라 손들고 싶다. 하지만, 그의 작품 - 야한 글, 무척이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그의 글 - 앞에선 쉽게 손이 올라가질 않는다. 뭔가 내가 느낄 수 없는 또다른 의미가 있진 않을까 눈여겨보지만, 아직 내 눈엔 원색의 글밖엔 보이질 않는다.
외설 or 예술... 이런 내 마음속에서부터의 '외설시비'에 앞서 다양한 글이 갖는 '일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듯싶다. 또한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법적인 제재보다는 사회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수용과 여과에 맡겨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법이라는 테두리가 개인의 생각과 사상까지도 너무 많은 기준을 잡아나가려는 건 아닐까하는 음모론적인 생각마저 든다. 외설인지 예술인지는 법의 잣대보다는 독자들의 몫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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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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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교화적인 분위기일거라는 생각에 책을 앞에 놓고 많이 망설였었다. 잠언집이나 명언집과도 같이 번드르르한 모양만 앞세운 그저그런 책은 아닐까하고... 하지만 이것이 단지 내 기우일 뿐이라는 사실은 몇 페이지를 넘겨보지 않고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독특한(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의 일상... 그 평범한(?) 일상이 나를 긴장시킨다. 약간의 긴장감으로 '죽어가는 모리'와 '살아있는 미치'가 나눈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세상, 연민, 후회, 죽음, 가족, 감정, 두려움, 돈, 사랑, 결혼, 문화, 용서 등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랑스런 눈빛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곤 부드럽게 달래준다. 자신의 기력이 다하는 마지막까지도 제자에게, 이웃에게, 가족에게 한없는 사랑을 불어넣는다.

그의 다정한 이야기에서 문득 나 자신에게서 물어오는 수많은 질문과 대면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어떻게 살고싶은가? 지금의 생활엔 만족하는가? 때로는 긍정하며, 때로는 부정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가 있는가 하면, 애써 질문을 회피하려고도 한다. 이런 질문과 답들이 모리와의 대화가 섞이면서 점점 더 복잡하게 꿈틀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좋다.

한평생, 나 자신의 물음에 대한 완벽한 답을 끌어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런 질문들에게서 답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어쩌면 더 가치있는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답'을 모리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도록하는 좋은 책이라는 느낌. Good! 모리같은 스승이 되고 싶다. 미치 같은 친구를 두고 싶다. 모리처럼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느끼고, 조금 더 버리고 싶다. 모리처럼 죽음 앞에서도 평온할 수 있었으면 싶다.
모리처럼 외형보다는 내부의 가치를 존중하고 싶다.

비오는 날 잠시 우산을 걷고 비에 젖어보듯이 우리는 모리가 전하는 사랑에 흠뻑 젓는다. 언젠가 나 역시 이런 사랑을 뿌려줄 수 있는 '레인메이커'가 되기를 희망하며... 모리처럼 살고 싶다. 모리처럼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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