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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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앵무새 죽이기? 앵무새를 어떻게 죽이는지 설명한 책 ^^ ?' '... 아니, 그저... 시네마 천국 같은 잔잔한 이야긴데...'라며 대학선배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책의 두께에 비해 상당히 괴상한 제목을 하고있었기에 그저 그런 류의 책은 아닐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러다 올해, 한 술친구가 흑인에 대한 '인권' 측면에서 이 책을 설명하는 걸 들었다. 출판 초기 미국에서 상당한 이슈가 되었던 작품으로 문학적, 사회적으로 많이 토론됐다는 책이라 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서로다른 시공을 공유한다. 좁은 동아리방에서 틈나는 시간의 대부분 책을 보고 있었던 선배의 진지한 '눈'과 거나한 취중일지라도 자연스레 책 이야기에 열중할 수 있는 친구의 열띤 '입'을 통해 책장을 넘긴다. 앵무새를 만난다.

1930년대의 공황기, 아직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미국. 변호사(애티거스)의 아들(잼)과 딸(스카웃)은 이웃집의 미지의 인물(레들리)을 탐색하며 어린 날들을 보낸다. 그러던 중 한 흑인(톰 로빈스)이 이웰의 딸을 강간하려 했다는 혐의로 재판이 열리고 애티거스는 그를 변호하지만 유죄로 판결된다. 결국 재판에선 이겼지만 민심을 잃어버린 이웰은 변호사의 자식(스카웃, 잼)을 해함으로써 분풀이하려 하지만 도리어 그 자신이 죽게 된다.

약간은 심각할 수도 있는 내용을 한 소녀(스카웃)의 천진함과 투정섞인(?) 시각으로 부드럽게 감싸안는다. 어린 날들을 아련한 기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실타래 같다고할까. 작고 미세한 그 끝을 따라가면 어느덧 무지개 색 동심 속에 다다른다. 한 마을의 구성원이자 아직은 어린 나이이기에 주변의 상황에 많이 휩쓸리기도 하지만 중심 잡힌 아버지의 따뜻함과 언제나 곁에 있어준 오빠(잼), 다양한 이웃들과 온갖 '사건'을 겪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을 만들어나간다.

그 사건의 중심에는 레들리라는 미지의 이웃과 톰 로빈스라는 흑인이 존재한다. 두문불출,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만 보내는 레들리는 동네 아이들의 상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스카웃에게 그의 집은 '유령의 집'이요, 그는 '공포의 화신'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레들리의 입장에서 마을을, 이웃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그 역시 '이웃'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또한, 애티거스는 마을 사람들이 상종하려들지 않는 흑인(톰 로빈스)을 온갖 협박 속에 변호하지만 사회(재판관, 배심원)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한 놈의 '깜둥이'로서 톰 로빈스를 유죄로 판결한다.

자신 이외의 이웃과 타인에 대한 편견, 혹은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오래된 멸시와 차별이 이야기 속에서 스며난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오래 전부터 그래왔듯이 지금도 그럴 것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무언의 약속'처럼... 오랜 시간 속에 굳어버린 해묵은 켜를 하나하나 되짚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의 편협된 시각으로만 세상을 제단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가? 상대방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이 '나'만을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당연히 자신의 테두리 외의 '아웃사이더'들은 적이 되고, 이단이 된다. 더군다나 이런 흐름들이 하나둘 힘을 모아감으로써 우리는 또다른 격류에 휘말리기까지 한다. 자신 내부의 순수한 목소리를 무시한 체 사회적 대세, 다수결의 원칙, 일반적 흐름에 자신을 합리화시키기까지 한다.

사회의 흐름 속에 이유 없이 흘러가는 '무지'에 대한 일갈처럼 다가온다. 앵무새와 같은,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 하면서 별다른 해악이 없는 존재를 누가 함부로 죽일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나만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사회적인 흐름에 편승하여 '앵무새'를 죽인 적은 없었던가?

산들바람처럼 잔잔하게 다가와서는 격노한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마치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옥희의 독백을 듣는 듯한 감상에 빠져들다가도 어느 순간, 숨가쁘게 펼쳐지는 법정드라마의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천진난만한 성장기의 소녀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한 단편을 훑어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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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의 문화디자인 - 삶과 철학이 있는 디자인 이야기
김민수 지음 / 다우출판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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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아티스트(Artist)'라는 점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다! 디자인...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며, 근근히 전역한 그 무렵. 고등학교 때부터 가슴속으로 동경해왔던 나만의 언어-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학원엘 나갔었다. 부산 서면에 위치한 R디자인학원. 데생을 하고, 색깔을 칠하고, 글자를 도안하고... 나의 예술적 능력과는 무관하게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디자인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졌다. '디자인이란 미술이 아니다. 예술도 아니다. 단지 상업적 필요성에 의해 조작되는 기능일 뿐, 디자인 자체의 가치보다는 디자인 이후에 나타날 파장(상품판매로 이어져 돈을 얼마나 벌여들였느냐...)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될 뿐이다.'라고...

시간이 흘러 내 사고의 폭도 넓어지고, 모서리도 무뎌졌다. 지금에서 생각하면 디자인을 단순히 상품판매의 촉매제 정도로 본 근시안적인 내 시각도 문제는 있지만, 어찌 보면 이런 '산업디자인' 위주의 편중된 이미지가 '디자인'이 갖고있는 가장 큰 벽이자, 뛰어넘어야 할 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 디자인에 대한 관심, 열망, 혹은 미련 때문인지 다른 부류의 예술서적에 비해 미술, 특히 디자인에 관련된 서적들을 많이 봐 왔었다. 이번 책은 많은 연구와 업적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텃세(?)에 배척당한 S대학교 교수의 디자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마음이 끌렸다. 일부 틀에 박힌 '형식적인' 학자의 모습과는 다른, 소신있고 '깡다구'있는 교수님일 것 같았기에... 미술, 디자인에 대한 끝나지 않을 관심과 언젠가는 내 손으로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열망으로 책을 읽는다. '디자인'을 한다.

'문화디자인'이란 책제목 때문에 우리가 흔히 접하는 디자인이나 문화 등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작가시선에서 풀이한 책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다. 한마디로 '디자인론'이라 해야 옳을 듯 하다. 상품중심의 돈 되는 '그림'이 아니라 문화를 이끌고 지탱해 나갈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나가자는 이야기.

하지만, 관심과 기대가 너무 커서인가. 초반부에는 전문적이면서도 일상적인 내용이 마음에 끌렸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대충대충 훑게 된다. 영화('JSA' 포스터), 만화(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도심 속 전경(건물, 전시회)등 일반인이 다가가기 쉬운 소재를 사용한 건 좋았지만 표현상의 난해함 때문에 정리가 잘 안 된다. 글에 대한, 그림에 대한, 문화에 대한 나의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이상은 높되 표현은 난해한 '글빨'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디자인에 대한 일반 교양서로서 조금 까다롭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재임용 탈락에 대한 '악빨'선 글들이 조금 보인다. 부당한 대우에 대한 김민수 교수의 개탄, 불만이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를 차지한다. 얼마 안 되는 몇 페이지, 몇 줄이지만 '문화디자인'이라는 책의 내용보다 더 강력하게 비쳐진다. 지나치게 밝은 달빛 아래에서는 별을 제대로 관찰할 수 없는 법인데.... 하루빨리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계속해서 지구가 태양을 돌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만의 문화를 디자인한다. 여전히, 내가 '아티스트(Artist)'라는 점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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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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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눈으로 글을 읽고, 뇌로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리고 가슴을 음미한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얼마 전 <뇌> 홍보차 방한한 모습을 부산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지적이고 딱딱할 것만 같은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포근한 느낌이었다. 세련된 외모는 물론, 통역자, 청중들까지 휘어잡는 부드러운 말투와 적당한 유머는 언어의 벽을 넘어 <뇌>라는 작은 '책감대'를 만들기에 충분했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만남이었지만 그 여운으로 하루종일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복상사'라는 행복한(?) 죽음을 맞은 핀처박사와 '뇌'를 중심으로 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두 기자(뤼크레스, 이지도르)의 이야기로 마치 '뇌'와 '동기'를 중심축으로 좌우를 오르내리는 시소놀이처럼 박사와 기자, 과거와 현재가 한 단락씩 교차되어 진행된다.
의학소설이라기 보다는 '이성과 감성', '자극과 반응'등 의식과 무의식의 기원을 찾아가는 심리소설, 철학소설의 형식이 강한 듯 하다. 우리 내부, 머리(뇌)와 가슴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파편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는 책이라고나 할까...

그 복합적인 파편의 중심에는 언제나 '동기(즐거움, 쾌락에 대한 욕구)'가 있다.
밥을 먹든, 잠을 자든, 책을 읽든, 산을 오르든, 그림을 그리든, 종교에 심취하든, 게임을 즐기든, 섹스를 즐기든 '삶의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한 동기는 언제나 존재한다.
책에선 그 '동기'를 직접적으로 충족시켜줄, '뇌'속의 진원지가 밝혀진다. 더 이상 자아를 찾기 위해 일을 하거나 땀을 흘리지 않아도 인생의 목적, 인생의 즐거움(슬픔), 인생의 쾌락과 환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치 철부지 아이가 약간의 조작(?)으로 백발 노인의 미소깊은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양손을 들어 내 머리를 만져본다. 까칠까칠한 머리털 밑으로 느껴지는 둥그스름한 살과 뼈, 그리고... '뇌'. 그 표면을 이루는 수많은 골짜기와 그 속으로 얽히고 섥힌 신경세포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전기적 자극을 통해 수십만, 아니 수백만 개의 뉴런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생각의 흐름'을 느껴본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복합적인 인지는 어떻게 뇌 속에 존재할 수 있으며, 생각과 말, 행동의 근원이 되는 '동기'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물질적(뇌)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이 어떻게 하나로 융합되는지 놀라움과 신비함을 넘어 경외감까지 들게 된다. 마치 우주의 근원과 신비를 대면하는 듯하다.

'내 머리통은 우주다. 나는 우주를 안고, 우주를 누비며 살아간다 ! ?'

잘 넘어가면서도, 한편으론 심오한 소설... 하지만 <개미>와 같은 '쫀득'한 재미는 덜하다. 전신마비의 '식물인간'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핀처박사가 '따뜻한 의술인'의 모습에서 갑자기 프랑켄쉬타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이 조금은 의아하다. 아무리 의학적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강하다지만, 자신의 뇌(팔다리가 아닌, 인간의 물리적 존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를 실험도구로 사용하는 설정은 약간의 무리가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아테나'라는 인간의 생각을 돕는 '생각하는 프로그램'. 마르탱(리스환자)의 머리(뇌)에 이식한 전극을 통해 컴퓨터를 조작, 이 프로그램과 대화함으로 자신과 아테나의 사고를 넓힌다는 설정은 이해가 가지만, 초반부의 뭐든지 척척 알아서 처리하고, 스스로 개량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설정과는 달리 후반부에서는 이렇다할 역할도 없이 너무 허무하게(?) 'Shot Down'되는 상황은 조금 조급한 설정처럼 보여진다.

<뇌>를 통해 나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동기'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한 '동기'를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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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전시륜 지음 / 명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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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듯 보이는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 그것만큼 진솔한 얘기가 또 있을까. 화려한 겉모습은 아닐지라도, 미흡한 부분은 많을지라도 그 공백을 자기 나름의 생각과 웃음으로 채워나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책으로 간단한 저자소개와 몇 편의 서평들만을 보고 바로 '구매하기' 버튼을 클릭 했었다. 약간은 충동성도 있었지만, 이런 '돌발상황'에서 오는 뜻하지 않은 즐거움(간혹 슬픔이 되기도 하지만...)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내가 마치 뛰어난 문학적 식견의 소유자라도 된 듯한 뿌듯하고도 즐거운 착각(!)속으로 빠져든다.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게 만드는 맛깔스러운 젓갈의 느낌처럼, 한국에서의 어린시절과 군대생활, 미국에서의 어려웠던 생활과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는 과정, 오늘날의 자신과 이웃, 사회의 이야기가 진시륜 님만의 '짭짤한' 언어로 적혀있다.

한국에서 젊은 날은 보냈지만 그후 미국과 타국에서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접해서일까. 한국적 사고와 어우러진, 형식이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표현들이 눈에 뛴다. 옆집 아저씨의 '취중진담'처럼 소탈하고, 무불도통한 선사의 '일갈'처럼 번쩍이고, 오랜 명상가의 '잠언'처럼 진지하게 전해진다.

재밌게 읽혀지는 다양하면서 소박한 내용들, 하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깊이와 날카로움은 어느 '유명 철학자' 못지 않다.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 흔히 접하는 평범한 사실, 문득 떠오르는 엉뚱한 생각들을 단순한 일상사나 객기로 넘겨버리지 않고 되짚어 보고, 느껴본다. 다시 말해 자신만의 '철학'으로 승화시킨다.

제자들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하는 그리스인이나, 뿔테 안경을 낀 어수룩해 뵈는 천재들만이 철학을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바로 이것 자체가 철학이 아니던가. 인생을 참으로 즐기려는 자세, 철학이 멋지게 다가온다.

정말 유쾌하게도 자-알 읽었다.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작은 용기들이 일상의 삶을 지루하지 않게 가꿔주는 듯하다. 부러움 속에서 지켜본 한 '촌놈'의 희극인생...

책 말미에 소개된 서머셋 모옴의 말이 기억난다. '행복의 관건은 골목길에 순경이 서 있나 없나를 살펴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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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1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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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입한 뒤 읽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오히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즐겁게 다가온다. 장롱 뒤에 숨어있을 꿀단지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입 속에 침이 고이듯 '이외수'라는 이름만으로도 진한 묵향을 느끼게 된다.

신선하고 감동적인 <꿈꾸는 식물>에서의 첫만남. 그리고 <들개>, <칼>, <사부님 싸부님>, <벽오금학도>로 계속되는 치열함과 즐거움, <산목>에서의 아쉬움과 <외뿔>에서의 실망감 등 20대를 함께 했었던 외수 형님의 소설을 오랜만에 마주한다. 기대 반, 설레임 반으로 책을 펼치지만, 손은 자꾸만 책표지를 쓰다듬게 된다.

괴물,
서로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 스스로를 인식하며 결국에는 독립된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나. '나'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모여 '우리'라는 사회를 만들어가듯, 사회라는 말속에는 여러 가지 다양성과 변화성, 그리고 모순과 혼동을 내포하고 있으리라.

혼란스러운 나, 우리, 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하는 듯 하다. 이렇다라고 말하기엔 저런 것 같고, 저런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가변적인 모습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음침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존재가 우리들 자신과 우리가 구성하는 사회가 아닐까? 마치 괴물처럼...

전생에 억울한 누명으로 자신을 죽게 했던 원수를 찾아 복수하는, 아니 세상에 대한 원한을 무차별적인 살인으로 보복하는 전진철. 그리고 연쇄살인이라는 중심축을 따라 전개되는 여러 이야기들은 마치 단편영화 여러 편을 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각각의 줄거리, 독립된 영화들의 중요장면을 부분부분 잘라 하나의 영화로 엮어놓은 듯한 놀라운 편집력이 돋보이다. 초반의 산만한 듯한 이야기가 종국에 가서 점점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외수님이 자랑삼아 말씀하신 '조각보'식 구성, 최초로 시도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여러 다른 작가들의 글에서 볼 수 있었던 이 '짜집기' 편집은 글을 더욱 긴박하게 표현하는 느낌이다. 일부 독자들은 난해하게, 혹은 복잡하게 생각되는 부분이지만 오히려 글의 성격으로 봐선 적절한 형식인 듯 보인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다각적인 면들, 아니 우리 인간이 갖는 계층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심리가 단편적인 조각구성으로 빛을 발하는 느낌이랄까...

이야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암울하다. 아니 암울하다 못해 비참하고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더욱더 철저하게 절망적으로 몰아간다. 그러다 마지막 절정에 가서야 약간의 틈 속으로 한 가닥 빛줄기가 비춘다. 엉망진창으로 썩어문드러진 고름덩어리 같은 현실, 오래 전에 희망과 꿈은 시궁창에 빠져버렸고, 진실 역시 실종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뒤뜰 담벼락에 핀 들꽃을 보며 새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외수의 소설을 약간은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진행은 약간은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의 유려한 문장과 어우러진 독특한 이야기 패턴은 욕구불만에 허덕이는 현대인에게는 하나의 이상향, 탈출구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잠시나마 외수 형님이 만들어놓은 안식처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하늘은 언제나처럼 잿빛이고, 도시는 온통 스모그로 뒤덮여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타인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이 종횡무진 설치며 뛰어다닌다. 이젠 쉬고싶다...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푸른 산내음이 물씬 풍기는 그곳에서 땅을 살피는 노동과 그 사이 휴식의 짬을 즐기며 살고싶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의 많은 제약은 나의 발을 잡는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손놀림과 낱장의 문자를 들여다볼 수 있는 두 눈이 있기에 마음속에서나마 그 곳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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