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간의 국어여행 - 2009년 최신 개정판
남영신 지음 / 성안당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미녀들이 나와 수다를 떠는 '미수다'는 한국말에 능숙한 외국인을 초대해 우리나라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출연한 외국인들의 대부분은 몇 년간 한국 생활을 한 유학생, 직장인으로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상당히 정확한 우리말을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에도 그들의 한국어 실력에 놀랐지만 <4주간의 국어여행>을 읽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그들을 더욱 새롭게 보게 되었다. 어떻게 공부했기에 이렇게나 복잡한 한국어를 자신의 모국어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언어는 습관이라지만 이를 익히기 위한 기초 문법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30년 이상 써왔던 나도 헛갈리는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을까. 스튜디오를 가득 메운 각국의 미녀들은 모국어에 대해 여전히 문외한인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

 <4주간의 국어여행>은 국어에 대한 기초입문서라기보다는 광범위한 국문법의 역할과 활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전에 가까웠다. 그래서 전체적인 통독을 통해 국문법의 전반적인 흐름을 익혀둔 뒤 필요할 때 찾아가며 살펴보는 용도로 적합하지 싶다. 영어공부를 하면서 영어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왕창 다 외우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국어 역시 이런 새새한 문법적 규칙을 몽땅 외우려 드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 같은 초보자가 읽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복잡했다. '4주 완성'이 아니라 4년 완성이라고 해도 버겁지 싶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에 내제된 수많은 규칙은 국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국어공부에 대한 의욕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강력한 식욕억제제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일까 초반의 의욕과는 다르게 후반으로 갈수록 건성으로 읽게 되었다. 이런 규칙도 있구나하고 인지하는 수준에서 넘어갔다. 아직 나의 국어 수준이 여기서 설명한 문법적 규칙을 이해하고 적용할 만큼의 수준에는 닿지 않았다는 것을 통감하면서 말이다. 국어를 좀 더 알고 싶다는 처음의 호기는 그 광활함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렇다고 나의 사정만 놓고 국어 문법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의 글이라도 문법에 맞지 않아 읽는 이의 오해를 일으킨다면 그건 제대로 된 글이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법 덕분에 수많은 미문이 탄생되고 보존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너무 일상적으로 접하는 국어인지라 그 의미와 깊이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책을 통해서나마 국어의 깊이를 뼈저리게(?) 느껴볼 수 있었다. 만만치 않은 내용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법을 통해 국어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확하게 쓰고 말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지 싶다. 좀 더 많은 공부가 있은 뒤에 다시 정리해봐야겠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의 굴레에서 한발 물러난 스님들의 치열하지만 인간다운 모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라다이스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몇 달 전에 두 권 모두를 구입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펼치게 되었다. 베르나르의 화려한 글 솜씨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두 권으로 엮인 단편집이라는 특성상 언제 읽는 것이 좋을지 가름해왔었다. 거기다 SF적이고 코믹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소개를 들었기에 이 기다림의 시간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파라다이스> 1, 2권에는 총 열 일곱 편의 중단편이 등장한다. '있을 법한 미래'와 '있을 법한 과거'를 통해 있지 않을 법한 현재를 되돌아본다. 비상식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한 오늘을 과거와 미래를 통해 풍자한다. 일단 대표적인 단편부터 살펴보자.

 <환경 파괴범은 모두 교수형>
 우리의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고 있는 자연. 이제는 자연의 해택으로 우리의 문명을 키울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숲과 오존층은 파괴되고 석유는 고갈될 것이다. 이제 공기와 물까지도 사먹어야 할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베르나르는 그런 우려는 과장된 모습의 단편으로 형상화했다. 환경파괴를 우려해 이를 위반하는 사람은 무조건 사형에 처해버렸다. 더 이상 환경은 선택이 아닌 절체절명의 필수사항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웃지 못 할 미래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발끝에 나뒹구는 휴지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존중의 문제>
 유명 텔레비전 사회를 맞게 된 보디가드의 독백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콘트라베이스를 통해 세상을 논했던 파트라크 쥐스킨트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보디가드와 유명 사회자 사이의 금전거래를 통해 존중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프로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보디가드와 그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자. 하지만 보디가드가 느낀 모욕감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프로라는 자부심은 적은 돈 앞에서 분개하기 시작했다. 보디가드에게 '존중'은 어떤 의미였을까.

 <사라진 문명>
 환경오염과 전쟁으로 사라진 문명을 찾아 나선다. 이들은 지상의 삶이 파괴되자 지하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들의 싸움은 계속되었고 결국 멸망해버렸다. 이들은 다름 아닌 '인간'. 한 마리의 개미를 통해 잊혀진 문명을 회고한다.
 소설 <개미>를 연상케 했다. 우리를 휘감고 있는 이기심을 본다면 이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개미에게 문명의 주도권을 내어주기 싫다면 지금 당장 사랑해야 하리라. 지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리라.

 <내일의 여자들은>
 마들렌은 방사능에 면역력을 갖는 신인류를 탄생시킨다. <에바103>이라 명명된 이 생명체는 기존의 인간과는 다르게 '알'에서 탄생했다. 여자의 몸을 갖고 있으며 남자 없이도 생식(임신)이 가능한 존재들이다. 만일 방사능으로 인류 전체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마들렌에 의해 창조된, 알에서 태어난 여자들만이 세상에 남겨질 것이다. 결국 남자들은 존재는 전설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도 암컷(여성)의 유전자가 우월하다고 한다. 특히, 수컷 없이도 생식이 가능하도록 변이된 암컷 도마뱀(레피도닥틸루스)처럼 암컷의 단성생식으로 진화가 이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먼 미래에는 '남자'들의 존재를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의 거장>
 3차 세계대전으로 인류의 2/3가 사라졌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종말의 대표적인 원인이 되이던 국가, 종교, 역사를 부정하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했다. 신인류에게는 이제 영화가 가장 큰 관심사로 등장하게 되었고 영화감독인 데이비드 큐브릭은 자신의 명성과 부를 이용해 패쇄적인 공동체마을을 만들었다. 그는 이 마을에서 과거로 여행할 수 있는 타임머신을 만들어 과거의 실제 삶을 찍어 영화로 만들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를 본다는 사실을 모른 체 영화를 극찬했다.
 역사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했던 큐브릭, 그를 통해 과거를 새롭게 해석했다. 과거는 '버려야 할 악습'이 아니라 미래의 해법을 쥐고 있는 열쇠라는 것이다.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역사일지라도 그 속에는 또 다른 희망이 숨어있다고 믿었다. 베르나르 역시 '앞으로'만 외치는 우리의 모습에서 세계대전보다 무서운 미래를 봤던 것은 아닐까.

<농담이 태어나는 곳>
 농담의 기원을 쫓아가는 트리스탕은 유머를 만들어내고 전달하는 GLH라는 비밀집단에 들어간다. "유머의 시작은 어디일까?"라는 조금 황당한 질문에서 시작된 이 단편은 단순한 킬링타임용으로 머물렀던 유머를 철학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물론 조금 억지스럽기는 했지만...
 이런 기발한 생각을 소설로 옮겨놓을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인상깊다. 무심결에 넘어가는 일상의 소재를 통해 그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 이것이야말로 소설가만이 갖고 있는 탁월함이지 싶다.

 <당신 마음에 들 겁니다>
 “법칙은 마르고 닳도록 똑같은 것이다. 음악이든 텔레비전이든 출판이든 마찬가지다. 이미 잘 팔린 내용을 메겨서 예술 작품을 계산과 확률의 기준표 속에 집어넣는 거다.”
 이제 세상은 경제성의 원칙에 따라 좌우될 뿐이다. 확률과 통계를 벗어난 감성은 현실성 없는 몽상으로 치부되었고 개인의 자유의지는 사회적 획일화 속에 묻혀버렸다. <당신 마음에 들 겁니다>는 '사회'의 틀에 갇혀버린 우리시대의 초상이었다.
 인간이 거대한 컴퓨터의 일계 프로그램으로 느껴진다. 계획과 절차, 효율성과 능률, 분석과 통계라는 수치화된 코드에 맞춰진 현대인을 보는 것 같다.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관계와 계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졌다. 몇 분간이라도 좋으니 온전히 나만을 바라보고 싶었다. 심호흡과 함께 눈을 감는다... 어둠속을 응시하며 나를 쉬게 한다.
 프리즘 로그오프!

 "여러분이 직접 생각해야만 하는 것을 누가 여러분에게 말해 줄 거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어떤 외부적 영향도 받지 말고 혼자 깊이 생각하십시오. 설령 여러분 생각이 틀렸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저지르는 오류조차 여러분을 규정합니다. 적어도 그 오류가 여러분 대신 생각하려는 사람들 것이 아니라, 여러분만의 것이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유를 활용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자유를 잃게 됩니다." (2권, p218)

 과거와 미래에 대한 풍자와 상상은 단순한 유희거리를 넘어서고 있다. 인류의 기원과 발전, 그로인해 발생된 무수한 문제점을 돌이켜보면서 우리들의 화려하지만은 않을 미래를 예견한다. 인류의 미래는 몇몇 작품에 등장하는 것보다 더 암울하거나 아예 사라벼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르나르는 그 해결의 실마리 역시 인간이 쥐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인간의 오만함과 이기심이 우리의 목줄을 조이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결국 오늘의 우리가 미래의 우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파라다이스>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베르나르의 목소리는 언제나 '인간'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남의 한 백화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무너졌다. 500여명이 20초도 안 되는 시간에 흙더미에 묻혀 사망했다. 영화 속 이야기 같은 사건이 서울시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성수대교와 함께 우리나라의 부실공사, 나아가 졸속경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백화점이 무너지기 몇 해 전, 군대 휴가를 나왔던 나는 그 옆을 걷고 있었다. 고속버스 터미널과 법원 건물을 지나 핑크빛으로 치장한 백화점은 예상외로 한산했다. 시내에 자리 잡은 다른 백화점에 비해 아파트 단지 속에 파묻혀 있는 백화점이라 장사가 잘 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강남의 부자들이 많이 출입하는 명품 백화점이라는 사실은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강남몽>의 박선녀도 대성백화점에 매몰되었다. 그녀는 대성백화점의 김진 회장의 둘째 부인으로 과거 룸살롱과 부동산을 통해 상당한 부를 모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백화점 잔해더미에 묻혀 구조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소설은 그녀와 남편(김진 회장), 그 주변의 인물들의 과거사를 통해 우리한국의 현대사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전후의 경제성장기의 흥망을 살펴본다.
 미국의 주요 역사적 사건의 중심을 두루 거치며 살아온 <포레스트 검프>의 일생처럼 일제 강점기와 해방, 신탁통치와 친일파의 득세, 좌우의 대립과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한국전쟁과 군사정권, 조직폭력배들의 할거, 경제계발과 부동산 열풍, 정경유착과 각종 비리, 과소비와 빈부격차 등의 역사 현장들을 두루 거쳐간다.
 하지만 작가의 개입이 지나쳐 보였다. 인물과 사건을 통한 이야기의 전개라기보다는 전지적 화자의 서술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한국 현대사에 관련한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온 굵직한 사건들의 평이한 나열이 소설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내용 역시 위압적인 분위기가 많았다. 대한민국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인지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서민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심지어 주먹질이든 우리나라의 권력층의 묘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문열의 <영웅시대>와 <변경>,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한강>, 박경리의 <토지> 등의 대하소설이 그러하듯 '역사'를 살아가는 주인공의 인생을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를 조망하는 것까지야 좋았지만 특정 부류의 집단을 소재로 삼았기에 갖는 한계성은 넘어서질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서울에서 떠밀리며 어렵게 생활해왔던 점순네가 등장했지만 아무래도 나머지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소품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 서울공화국. 그곳의 핵심 노른자위를 차지했던 강남. '강남'은 꿈(夢)을 꾸기 시작했다. 네온사인 아래에서 술에 취한 돈을 끌어 모으기도 했고, 재개발 열품과 건설 붐을 타고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들어섰다. 돈이 땅을 모으고 땅이 돈을 벌면서 수많은 졸부가 탄생했다. 밤의 세계를 지배하며 엄청난 이권을 확보했고 악착같은 노력으로 자신의 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파노라마는 한순간의 먼지와 함께 매몰되었다. 빛나던 서울, 강남의 역사가 꿈처럼 사라져버렸다.
 빛나는 역사 속에 숨겨진 '매몰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지나친 과욕은 희뿌연 먼지와 함께 또 다른 재앙을 가지고 올지도 모를 일이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는 오대양 사건을 모티브로 쓰였다고 했다. 먼저 광신도들의 집단자살사건으로 기억되어 있던 오대양사건을 검색해 봤다.
 “1987년 8월 경기도에 있는 오대양(주)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대표 박순자와 가족, 종업원 등 32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수사 결과 오대양 대표이자 교주인 박순자는 1984년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 종말론을 내세우며 교주로 행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살의 원인이나 자세한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되었다. 그 후 1991년 오대양의 신도였던 김도현 등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전면 재조사에 들어갔지만 집단자살인지 아니면 외부인이 개입된 집단 타살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네이버 백과사전 정리)

 <A>에서는 신신양회가 등장한다. 2세대에 걸친 신신양회의 성장과 소멸, 그리고 재건을 통해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비춰졌던 이들의 실체를 살펴본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신신양회의 주검들은 자칫 <A>를 사건 중심의 추리소설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시로 변하는 시점은 읽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했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와 갑작스런 장면전환은 글의 몰입을 방해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이 몸에 익자 책의 진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질적으로 전개되던 사건이 하나 둘 아귀를 찾아가면서 전체적인 흐름은 물론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있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하나의 리듬을 타고 흘러가기 시작했고 적당한 반복을 통해 읽는 이의 의식을 유도했다.
 <A>는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여성 공동체로 생활하던 신신양회의 독특한 생활방식과 엄마들의 집단 자살(혹은 타살)은 소설을 꾸미는 외투에 불과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방해해 현대의 물질문명이 내포하고 있는 혼란스러움을 극적으로 표현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성란 작가는 신신양회를 통해 남성중심의 사회가 감추고 있던 모순을 들춰내고 싶었던 것은 같다. 겉으로야 양성평등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남성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돈만 있으면 사람도 사고 팔 수 있는 물질만능주의, 여성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되돌아보게 했다. 어쩌면 남자들이 아무리 날고 뛰어봤자 '엄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진리를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현이 한순간 느슨해진 듯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탱탱한 긴장감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제대로 기를 펴보기도 전에 성급하게 풀어버린 느낌이랄까. 집단자살이라는 사건으로 저자의 생각을 전달하려다 생긴 틈일 수도 있겠고 장황하게 벌려놓은 전반부의 내용을 수습하기위한 조치일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수십 년간 미궁 속에 빠져버린 사건이 최영주 기자의 추리를 중심으로 술술 풀려나간다는 설정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소설의 분량이라든가 다른 장치에 의해 그렇게 했겠지만 뭔가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A>는 달콤한 향을 간직한 투박한 모양의 열대과일처럼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질적인 소재들을 적당히 버무려 독특한 향을 만들어내는, 독자의 관심과 작가의 의도를 적당히 조율하는 작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 독서토론회 이야기

 조금 늦게 도착한 독서토론회(2010.10.27, 부산 Y도서)에서는 이미 하성란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똑 부러지는 말투는 여느 방송국의 아나운서 못지않았다. 대부분의 작가는 글로 모든 것을 표현하다 보니 말이 조금 서툰 경우가 많았지만 하성란 작가는 예외인 것 같았다. 조리 있게 자신과 책을 설명하는 모습이 당당하게 느껴졌다.
 작가는 자신의 책을 이야기하면서 집단자살사건이라는 이벤트에 지나치게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 사건은 소설을 쓰기위한 일종의 장치로서 책을 읽는다면 시제라든가 추리적 기법에서 오는 혼란은 수그러들 것이라는 했다. 아마 많은 독자들로부터 독특한 소설이라는 말고 함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말도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집단자살사건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여성성을 통해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려고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 남성성의 역할과 공업화의 문제, 계층 간의 담합과 갈등 등의 내용을 그녀의 전작들과 비교하며 살펴봤다.
 작가는 ‘독자의 뒤통수를 내려치는 재미’로 글을 쓴다며 앞으로 더 다양한 시도로 글을 쓰겠노라며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글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