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얼굴을 감싼 후미지의 손등에 데쓰조의 이빨이 파고들었다. 후미지의 째지는 울음소리에, 온 힘을 짜내어 데쓰조를 떼어놓은 고다니 선생님은 흰 뼈가 드러난 후지미의 손을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말았다."

청소년도서 맞아? 일본 책은 다 이런 식인가? 학급 동료들을 죽여야 살아남는다는 일본영화 ‘배틀 로얄’이나 부모와의 갈등을 다룬 가출소년의 이야기 <내가 나인 것> 역시 그러했던 기억이 난다.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가학적이다 못해 엽기스러운 부분들은 공감대 형성을 방해하는 느낌이다. 이야기의 흐름상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내용이 아동도서인지 연애소설인지, 아니면 스릴러물인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마치 번쩍거리는 배경과 과장된 몸짓의 뒤섞인 일본 특유의 텔레비전 광고를 보는 것 같다. 광고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극적인 화면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들!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닐까. 좀더 순화된 내용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없었던가 아쉽기만 하다.
문화적으로 일찍 개방된 일본의 이야기라 그러지 더욱 걱정스럽다. 책이나 영화 속의 이런 황당한 내용들과 가까워지면서 우리의 문화도 점점 자극적인 일본식으로 변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소설 속에 나오는 바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날 흐뭇하게 한다.
김용생이라는 한국인 친구와의 아픈 기억과 동양척식회사에서 일하면서 고문에 의해 독립 운동가를 밀고하게 된 경위 등 일제 식민시대의 상황을 숨김없이 이야기한다.
역사외곡으로 문제가 많은 일본에서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게 무엇보다 흐뭇하다. 올바른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교과서도 좋지만 소설이나 산문과 같은 간접 문화를 통해 전달되는 것도 상당히 효과적이라 생각이 든다.

히메마쓰 초등학교의 고다니 샘과 파리를 키우는 데쓰조를 중심으로 한 학교이야기로 청소년소설(아동도서)이라기보다는 학교를 소제로 쓴 ‘사회소설’로 보는 편이 좋을 듯 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을 ‘아동도서’라는 틀에서만 봤을까? 동화 같은 책 표지와 어린이가 등장하는 삽화들, 그리고 여러 청소년 단체에서 ‘권장도서’로 지정했다는 띠지 때문일까? 어쩌면 이런 선입견 때문에 삐딱하게 책을 바라본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동도서의 모호한 경계에서 오가며 약간의 혼란함으로 책읽기를 마친 지금 출판사의 교묘한 판매 전략에 놀아난 듯해 마음에 약간은 떨떠름한 느낌이다. ^^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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