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사는 사람들
윤중호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느리게...
말 그대로 세상의 흐름에서 조금은 비껴 살아가는 인생들을 그려내고 있다. 돈이라든가 명예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 무심하고 굼뜬 듯 보이지만 그들의 일에서는 진지한 정렬을 바치는 사람들, 외적인 보상보다는 자신의 마음속 가치에 따라 ‘느리게’ 거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의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장은 글을 쓰거나, 잡지사 일을 하면서 만난 문학계 사람들에 대해 얘기한다. 천상병, 신경림, 윤구병님 등 이름만으로도 알만한 사람들의 만남과 일탈들이 에피소드형식으로 엮어진다. 또한 사투리를 빌려 쓴 편안하고 구수한 글은 느리게 사는 인생의 단출함과 순수함에 힘을 실어준다. 마치 술자리에서 만나 한두 잔의 술잔을 나누며 듣는 이야기처럼 격식이 없다.
하지만 지나친 사투리의 사용과 함축적인 대화로 인해 글의 깊이와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사투리 섞인 번잡한 표현들이 글 읽기를 방해하고, 깊은 친분관계에서나 알 수 있는 그들만의 대화도 약간은 어리둥절하다.
또한 ‘술꾼에다 이런저런 잡글을 남발하는 부끄러운 글쟁이지만 세상의 더러움에 조금은 순수한 아름다운 사람이다.’라는 공식도 눈에 들어온다. 끼리끼리 모이는 느린 사람들,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그 유사한 흐름에 약간은 지루하게 다가온다.

오히려 후반부에 소개한 문학 이외의 사람들이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기사를 쓴다거나하는 일을 통해 일회적으로 만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중호님의 ‘문인파’ 보다는 객관적이고 다양하게 접근한 듯 보인다.
하지만 전반부(문학관련)의 비중과 깊이에 비해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약간의 전문적이거나 특이한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문인에게 쏠려버린 커다란 비중 때문인지 ‘그랜저를 사면 끼워준다는 티코’의 우스개 소리처럼 얕아 보인다.

오늘날처럼 번듯한 모양새에 화려한 명함이 있어야 인정받는 ‘초고속’ 사회에서 ‘느림’이라는 화두가 자주 책의 소재로 사용된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비롯해서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 같은 잠언서 역시 이런 내용을 저변에 깔고 있다. 약간의 상업적인 측면도 있다지만 그만큼 현대인들이 돈과 명예만을 쫓아 너무 빠르게만 살아간다는 반증이 아닐까...

나의 삶도 느리게 가꾸고 싶다. 속도를 제어하고는 브레이크 장치를 몇 개 가꾸고 싶다. 책이나 여행도 괜찮고 친구나 연인도 좋겠다. 물론 약간의 음주도 환영이다. 그래서 속도보다는 과정에 충실하면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


PS :
이 글을 쓰면서 윤중호님이 지난달(2004년 9월) 별세했다는 기사를 봤다.
텁수룩한 수염만큼이나 털털한 느낌이었는데... 젊은 나이라 더욱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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