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공포 소설, 추리소설, 환상 소설... 환장할 소설.

암튼 굉장해. 동 틀 새벽녘까지 날 잠 못 들게 만든 책. 잠은 자야겠는데 책은 덮을 수가 없네... 700여 쪽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게 긴장과 스릴로 날 들볶는다. 옛날에 보거나 들은 '명작동화'의 유치하고 빤-한 드라큘라와는 다른, 단순히 내가 봤던 영화(그렇지만 온전히 기억나지도 않는)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왜 이런 책을 이제야 읽게 됐는지...

드라큘라...

조너선 하커, 미나 하커, 루시, 반헬싱, 아서, 수어드. 1인칭(각 주인공들)의 일기나 편지 형식의 글이 모여 한편의 소설을 이룬다.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연상할 만큼 현실적이고 박진감 넘쳐 보인다.

그래서 첨엔 좀 단원의 앞뒤가 별개의 사건처럼 보여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하나의 사건으로 합쳐진다. 적당한 개인적 시각 차이, 공간적 차이와 시간적 차이 속에서 긴장감이 더해진다. 오래된 글이지만 전혀 고루한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요즘의 글들과 비교해보면 단편적인 인물과 이분법적인 선악구조가 약간은 이야기를 진부하게 만들지만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과 구성방식(편지, 일기)은 오늘날의 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느낌...

고전이라고는 하지만 이야기의 스케일이나 순발력만으로 보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네... 마치 한편의 호러 연극을 본 느낌...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드라큘라와의 결전이 너무 간단히 끝나버려 아쉽긴 하다. 오늘날의 공포물에서처럼 최후까지 발악(!)을 한다던가,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살아나 우리를 깜짝깜짝 놀래키는 끈질진 생명력이라든가 하는 그런 맛은 없더라도 상당한 분량의 책 두께에 비한다면 너무 싱겁기까지한 드라큘라의 최후...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조너선의 커다란 칼이 번쩍 빛을 발했다. 나는 그 칼이 백작의 목을 싹둑 자르는 동시에 모리스 씨의 사냥칼이 심장에 깊이 박히는 것을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마치 기적과도 같았다. 바로 우리 눈앞에서 겨우 숨을 한 번 들이킬 동안에 온 몸뚱이가 먼지로 부서져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 11월6일 미나 하커의 일기 중에서(이때 드라큘라는 관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드라큘라는 잘 자다가 그냥 그렇게, 허무하게 목이 날아가 버렸다. 댕강...)

약간은 시시한 결말. 물론 드라큘라의 종말은 그 전의 많은 책과 영화에서 봐 온 터라 궁금함은 덜했지만 책을 덮는 시간까지 그 과정에 흠뻑 취해서 재밌게 읽었다. 결과야 알지만 그 과정과 내용을 추적해 보는 느낌, 어릴 때 보고들은 이야기의 '원판'을 접한다는 새로움과 함께 몇 십년, 몇 백년이 지났지만(드라큘라는 1897년 쓰여짐)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까닭을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아마 고전을 대하는 느낌이 더 새로워 질 것 같다.

드라큘라... 그가 맛본 피의 달콤함처럼 우리를 쫘-악 빨아 땡기는(!) 멋진 책... 독특한 전개방식으로 해서 소설이 아닌 현실처럼 다가온다. 옛날 한 TV에서 신기하고 무서웠던 경험들을 극화해 만들었었던 <이야기 속으로>처럼...

2000년, 책을 통한 내 최고의 모험이 됐으리라 싶다... Good!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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