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雅歌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부제와 붉은색 표지, 거기에 '이문열'이라는 작가의 이름.
내가 책을 집어든 이유이자 바램일 것이다.

책읽기를 시작할(?) 무렵 나의 흥미와 관심으로 '이문열'이라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다 읽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만큼의 무게와 부피로 다가온 이름이기에 최근 들어선 가까이 하지 않은 것이 사실. 나로선 모처럼 만에 집어든 이문열의 책이다.

불우한 정신과 신체로 세상을 살아가는 '당편이'의 이야기로 글속에 담겨있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질퍽하다. 마치 고향친구의 입으로 전해듣는 옛 이야기처럼...

'글케 말이라. 그거 참 이상하제. 저거 옆에 있으믄 뭐신가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 생기지만, 그게 꼭 싫지는 않다꼬. 엎어질라 카믄 뿌뜰어조야 되고, 지 손 안 다으믄 내가 대신 내라(내려)조야 되고, 머라 카다(야단치다)가도 거다 멕이야 되고...... 그런데 말이라 짜증 나도 그래놓고 나믄 나도 뭐신가 세상에 난 값을 한 기분이라 카이. 억시기 대단치는 않아도 좋은 일 한 거 같고. 공덕이 따로 있나, 나도 이래이래 하다 보믄 쪼매는(조그마한) 공덕은 쌓아내지 않을라 싶고...... 그래다 보믄 마음까지 지절로 훗훗해진다 카이'

당편이의 희극적 삶 속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투박하고, 소담한 과거 이야기들. 그리고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의 삶의 모습들이 인상깊다. 완전하지 않은, 사회의 생산력에 별 도움이 안 된다 하더라도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공존할 수 있는 여유. 그런 모습들이 있다.
웃음과 미소, 추억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은 책.

내 어릴 적 우리동네에 살았던 한 친구, 아닌 형이라고 해야 옳을 '호상이'가 생각난다. 소아마비 때문인지 약간은 뛰뚱거리는 걸음걸이와 어눌하게 늘어지는 말로 아이들로부터 '바보'로 놀림을 받던 친구. 늘상 그렇게 울면서 도망하더라도 다음날 '호상아 놀자'하고 부르면 털털한 웃음으로 받아주던 친구. 미안한 친구...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던 '호상이'의 기억처럼, 빠르게 변해 가는 현실 속에서 놓치고 살아온 과거의 그림(호상이가 함께 있었기에 더 애뜻한)들이 그리워지게 된다.
작가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하던 것, 바로 과거 속의 '우리'라는 넉넉하고, 포근한 그리움이 아닐까.

희미하게 기억되는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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