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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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를 ‘버리다’의 뜻으로 해석하여 무가의 내용대로 ‘버린 공주’로 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바리’를 ‘발’의 연철음으로 본다면 ‘발’은 우리말에서 광명 또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생산적인 뜻이 있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광명의 공주’ ‘생명의 공주’ ‘소생의 공주’라는 뜻도 있겠지요. 그리고 접미사 ‘데기’는 주로 부녀자를 낮춰 가리키며 ‘부엌데기’ ‘소박데기’와 같이 쓰이는 말입니다.”
(작가 인터뷰 중에서)

1990년대 북한 청진, 위로 여섯 명의 언니가 있는 바리는 태어나자마자 산에 버려졌지만 집에서 키우던 흰둥이(개)에 의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남다른 신기(神氣)로 죽은 사람이나 동물과도 의사소통을 하는 등 신기한 영적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외삼촌의 탈북을 계기로 바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그녀도 중국과 영국을 전전하며 힘든 생활은 해나간다.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는 폐쇄정책과 군비증강으로 식량사정이 나빠져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는 90년대의 북한, 그 금지된 땅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중국, 영국, 중동 등 세계로 무대를 넓혀 전쟁과 테러, 폭력 등 ‘분쟁과 대립’이라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살펴본다.
우리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삶과 죽음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국가와 민족, 이념의 폭력 앞에 직면한 우리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개인의 건강, 행복한 가정, 드높은 명예나 풍족한 돈, 안정된 직장과 든든한 친구? 집단의 폭력 앞에 개인의 희망은 하나둘 사라져만 간다.
‘인간’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체 조직의 이익을 위해 소모되고 희생당하는 우리, 그 고통의 사슬을 풀어줄 해답은 없는 걸까. 살풀이 춤사위 같은 바리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자행되는 폭력의 근원을 살펴본다.

하지만 바리의 꿈을 통해 중요한 암시나 이야기의 상당부분이 진행되는 까닭에 조금은 지루하게도 느껴진다. 심령적인 분위기와 꿈을 통한 색다른 진행방식이 재밌기도 했지만 반복되는 꿈 이야기는 소설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 인간의 고통이라는 본원적 질문에 영적인 내용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조금은 산만해진 것 같다.

‘생로병사’라는 단어가 무심결에 떠오른다. 사계절에 비견될 수도 있을 인간의 삶이 덧없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한 줌 흙으로 바스러질 육신인데 무슨놈에 욕심이 그리도 많던지... 어쩌면 그 갈증을 풀어줄 생명수는 오늘 아침 무심결에 마신 냉수 한잔에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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