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간이 정말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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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을 한 시간이나 뒤졌다. 이렇게 아내가 말한 책을 찾다가 '성석제'라는 작가 이름과 인간적인, 너무 서민적인 책 이름(<이 인간이 정말>)이 끌렸다.

 

<론도>

'론도'는 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로 순환되는 형식을 일컫는다. 그는 사소한 자동차 접촉사고를 낸 후에 알게 된 자동차보험의 틈새를 통해 소소한 이득을 챙기게 되는데... <론도>에서는 보험을 둘러싼 순환고리 속에서 결국 자동차 수리업자만 배를 채운다.

돌고 도는 세상의 단면을 보게 된다. 서로의 꼬리를 쫓는 두 마리의 뱀처럼, 눈 앞의 상황만 몰두하며 자신이 '갑'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을'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현실.

<남방>

라오스에서 만난 꽃무늬 남방을 입은 '박'은 어떤 면에서는 조르바를 연상케 한다. 거침이 없고 떠들썩하지만, 세상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향수가 묻어난다.

습습하지만 따뜻한 라오스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단편으로 한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것 같다. '박'의 여정을 따라 라오스를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찬미>

어릴 적 흠모했던 여인을 기다린다.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몇 번의 스침만으로 우리를 중독되게 만들었던 소녀. 무성한 화제만큼이나 화려한 추문과 소문을 달고 다녔던 그녀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두근두근두근 설레임으로 찾아간 미술관에서 만난 그녀 옆에는 이미 다른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르누아르의 <시골무도회> 속 미녀를 눈앞에서 보는 듯...

아련한 기억 속의 풋사랑과 설레임이 르누아르의 그림과 함께 잔잔하게 다가온다. 가시덤불 속에 핀 고혹적인 장미라 눈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그 존재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설레던가.

<이 인간이 정말>

"처음 데이트하는 자리에서 기후 변화나 온실가스, 화석연료 고갈에 대해 열나게 이야기하는 남자"에 대해 여자는 "됐다 새끼야, 제발 그만 좀 해라."며 응수한다.

한 남자의 오지랖은 사회 전체의 육갑으로, 우리 인간의 만용으로 다가온다. "지구의 인간들이 증말~"

<유희>

임진왜란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유희를 통해 왜란 당시의 무능했던 조정과 관리를 비판한다.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전시를 더욱 해괴하게 만들어버렸던 일부 관리의 만행은 유희를 넘어선 비극적인 코미디에 가깝다.

<외투>

아버지의 유품인 외투 덕분에 교통사고를 모면하게 된다. 온몸을 감싸며 전해지는 부모님의 온기가 빠듯하다. 낡고 허름하다는 외형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가치...

<홀린 영혼>

주선은 화려한 말빨과 과장된 행동으로 주변의 관심을 끌고 있다. 뭔가에 홀린 듯...

누구에게나 이런 친구가 한 명쯤은 떠오르지 않을까. 거창하고 요란하지만, 왠지 가벼워 보이는, 가벼운 충돌에도 '텅~' 하면서 빈속을 들켜버릴 것 같은 친구. 하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 또한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해설자>

"아주 간단한 사실을 과장과 허세, 근거 없는 찬양으로 오리무중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해설자에게는 진실해야 하는 역사마저도 개인적 도구일 뿐이다.

이번 여덟 편의 단편은 심각하거나 모호하지 않고 명쾌하다. 나와 이웃의 일상이나 기억을 통해 가족이나 사회, 역사를 이야기했다. 그래서 읽기 편하고 쉽게 와닿는다.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시간이 남을 때면 언제나 폰을 들고 있다. 멍하게 들여다보는 액정화면은 짧은 웃음은 줄지 몰라도 긴 여운을 주지는 못한다. "그만 봐야지", "이제 꺼야지" 하는 스마트한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이럴 때 딱 좋은 선택이 바로 '성석제' 표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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