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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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드 창의 SF 단편 소설집. 서점가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한 책인데다 최근 출판된 그의 두 번째 소설집, <숨>과 함께 많은 화재를 낳은 작품으로, <컨택트>(2016)라는 영화의 원작으로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진 책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장편 소설인줄 알았다. 멋지게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에는 반론이 없지만 오감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 중심의 영화가 판을 치는 마당에 굳이 '휴먼영화'의 원작을 찾아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숨>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면서 테드 창에 대해 관심이 가게 되었고, 특히 '창'이라는 한국적인 성씨(사실 테드 창은 중국계 미국인)에도 호기심이 난 것도 사실이다.

 

  첫 번째 소설 <바빌론의 탑>은 성서와 고대 역사서에 등장하는 바빌론에 세워졌다는 전설적인 탑을 소재로 한다. 뱀이 똬리를 틀듯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탑을 쌓고 있는 인간은 곧 하늘에 닿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 공사에 참여한 힐라룸은 아득히 높은 탑 정상에서 하늘 천장과 마주하게 되고, 백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천장을 뚫기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이 뚫렸고 쏟아지는 하늘 호숫물을 헤엄쳐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하지만 하늘이라 믿었던 그곳은 바로 자신이 떠나온 지상 이었던 것.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원통 표면처럼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

  점점 높아지는 바벨탑에서의 생활과 풍광이 히말라야의 고봉을 등정하는 것처럼 신비롭게 다가온다. 지상에서의 근심에서 벗어나 더 높이 올라간 우리는 마침내 하늘과, 이상과, 신과 맞닿았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우리의 현실이 있었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합성 약물을 통해 뇌의 비활성화된 부분을 깨워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되는 영화 <루시>(2014)를 떠올릴 만큼 따른 속도와 흥미로운 전개로 독자를 빨아들이는 <이해>는 뇌 손상을 당했지만 호르몬 K 치료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지능이 발달하게 된 리언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을 연구대상으로 삼으려는 CIA를 따돌리고, 호르몬을 훔쳐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 생각과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고, 자신과 주변 환경을 완벽하게 컨트롤하게 된다. 하지만 그와 맞먹는 능력의 존재가 나타나는데...

  평범한 인간의 시선을 넘어서 각성해버린 그의 생각을 따라잡기 어렵다. 세상에 대한 완벽한 통찰과 조절을 통해 텔레파시로 의사소통하는 만화 속 외계인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까닭에 책을 읽는 동안 리언이 어떤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긴, 발아래 지렁이가 하늘 위 갈매기를 이해하기는 어려운 법. 하지만 테드 창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력과 긴박하게 엮어가는 이야기에는 힘찬 박수를 보낸다.

  <영으로 나누면>은 수학에 몰두한 르네의 이야기. 하지만 수학적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떤 수라도 영으로 나눌 수 없다는, 나눠서는 안된다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네 인생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로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소설의 뼈대가 되는 언어와 문자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것도 맞지만, 이 글을 원작으로 만들었다는 영화 <컨택트>에서 느꼈던 시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구체적인 영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어렵다' 는 느낌뿐...

  <일흔두 글자>, <인류 과학의 진화> 역시 마찬가지로 난해하다. 천사의 강림이 일상화 되어버린 세상을 다룬 <지옥은 신의 부재>는 소재는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말이진 감을 잡기 어려웠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인 칼리의 의무 착용을 두고 벌어지는 펨플턴 대학의 투표전을 다루고 있다. 인터뷰 형식의 짧은 글들로 구성되어 마치 다큐멘터리나 뉴스를 보는 것 같았다.

  컴퓨터, 스마트폰 등 미디어의 문제점을 지적한 넷플릭스 시리즈물인 <블랙 미러>를 보는 것 같다. 기발하고 참신한 기획으로 오늘날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아름다움 자체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걸 오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문제"라는 타메라의 독백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테드 창은 굉장히 전문적인 것 같다. 종교와 역사, 수학과 과학, 언어와 문자와 같이 인문학의 최고 정점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놓았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수록 집중력이 더 흐려진것 같다. 아니면 지나치게 문명화된 나의 생활과 반복적인 스트레스로 쫓겨다니는 직장생활로 인해 내 머리가, 아니 내 이해력이 퇴화한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SF~

  <컨택트>, <루시>, <블랙 미러> 등의 영화나 <멋진 신세계>(1932), <1984>(1949) 등의 고전을 읽은 후 보면 좀더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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