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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에 가고 싶다
곽재용 외 지음 / 일상이상 / 2022년 7월
평점 :
해남 땅을 처음 밟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학교도 계속 서울에서만 다녔으니 저 먼 땅끝마을 해남까지 가봤을 리가 만무했다. 그때는 해외여행도 자유화되기 이전 시절이니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여행조차도 지금처럼 흔하게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러니 집-학교만 오가던 뻔한 서울내기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남도의 끝 해남에 첫발을 들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만난 해남은 한참 뜨거운 여름이었다. 국문과의 하계 답사로 해남과 강진 일대의 사찰과 유적지들을 돌아보는 일정. 그즈음에는 우리 학과 답사 계획이 주로 호남과 경기도 쪽에 많이 잡혀있어서 학기 중에는 경기도 일대를, 방학 기간에는 호남 일대를 많이 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만난 곳들이 대흥사, 무위사, 백련사, 다산초당, 보길도 등이다. 미황사는 그때 답사 조가 달랐던지 어땠는지 대학생 때 못 가고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야 가보았는데, 그때도 역시 대학 때의 해남 답사가 새삼 떠올랐다. 그런 걸 보면 해남은 나를 대학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타임머신 같기도 하다.

<해남 땅끝에 가고 싶다>는 해남을 여행한 문화예술인 30여 명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해남군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해남의 대표 명소는 물론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지역 명소들을 필자들의 입을 빌어 소개하고 있다. 필진 중에는 시, 소설 등 작품이나 언론이나 지면을 통해 낯익은 이름들이 많고,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되는 작가들도 있다.
사람 때문이든 혹은 다녀왔던 경험이 있어서든 익숙한 곳에 대해서는 좀 더 세심히 읽게 된다. 필진은 대부분 문화평론가,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등 감성과 시각이 남다른 이들로 구성되었고, 그들이 느끼고 체험한 해남은 생생한 느낌으로 독자에게도 전해진다. 책은 땅끝마을 해남의 구석구석으로 독자를 이끈다. 추억의 장소는 추억으로, 생소한 장소는 새로움으로. 더구나 해남은 굳이 맛집을 찾지 않더라도 어지간하면 평균 이상은 하는 남도 아니던가.

다만 사진은 무척 아쉽다. 책에 들어간 사진은 지자체(해남군)용 사진이나 필자들이 그냥 편하게 찍은 사진이어서 여행지나 해당 장소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사진은 별도로 전문 작가가 찍거나 아니면 필진 중에 사진작가가 포함되었으면 사진이 훨씬 더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읽다 보면 넓은 해남 땅 중에 이전에 가봤던 몇몇 곳들이 보이고, 전에 미처 몰랐던 새로운 장소들도 보인다. 그런가 하면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장소들도 추억과 함께 새삼스레 눈에 밟힌다. 대흥사의 천불전이며 일지암 가는 길, 백련사에서 누렸던 여유로운 차 한 잔, 백련사 동백숲을 지나 다산초당에서 서늘하게 누렸던 바람 한 자락, 어부사시사를 떠올리며 걸었던 보길도, 아늑하고 고요했던 은적사 등등… 여유로움과 한적함을 느끼고 싶을 때, 해남 땅을 찾아 다시 한번 대학생 때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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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