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는.... 

 

극사실주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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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주의 그림

 


 

극사실주의 그림

극사실주의 그림

 


 

극사실주의 그림 

 

 

 

그림 이였다.

 

이거슨 사진이 아님.

22살의 Diego Fazio는 이탈리아 사람이며 미술은 혼자 공부했다고 함.

타투를 디자인하다가 포토리얼리짐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눈을 의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출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267230?svc=live_story&q=섹시한 여자의 흔한 반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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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신호
David Jr. Cha 지음 / 예영커뮤니케이션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 시간동안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신앙해온 내가 항상 가지고 있었던 질문이 두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그 하나님이 지금도 세상을 경영하신다면 과연 이 역사속에서 나타나는 어떤 증거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였다. 이 두가지 질문은 거의 평생을 따라다녔고 나를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세상 경영에 대해서 탐구하고 그곳에 깊이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첫 번째 질문은 이미 내안에서 끝이난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두 번째 질문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바로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였다. 이스라엘을 발견하고 놀라운 개안(開眼)을 경험하게 되었다. 정말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경영과 중동에서 일어나는 그 일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역사속에서 행하시는 전체 그림의 윤곽을 어느정도 볼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들이 이 두 번째 질문에 좀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줄 뿐 아니라 새로운 영적 도전을 준 사람이 바로 이 책 <마지막 신호>의 저자 데이비드 차였다. 흘러가면서 이 분에 대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게 되었고 이 분의 책을 읽고 강의에 참석했다. 쇼킹 그 자체였고 숨겨진 부분이 놀라왔고 보이는 현상 이면에 어떤 다른 의도가 있음을 보게되었고, 그 뒤에 또다른 생명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물론 사람들에 따라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검증해야 될 내용이 많고 다 믿어서는 안된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그 자료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같이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한 내용임을 알고 혼란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오래동안 가졌던 두번째 질문에 좀더 구체적인 내용들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일일이 나열하기가 왠지 꺼려지기도 한다. 그것의 사실을 의심한다기 보다는 충격과 혼란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기전에 <끊어지지 않는 사슬>이라는 책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어둠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고 약간의 충격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어둠의 역사와 음모가 오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으로 그것도 평화와 화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십일조를 철저히 하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알아왔던 록펠러가 그렇게 경멸과 신화의 두얼굴의 역사속에 가려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정말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이 전부 사실인가는 의심하게 되었다. 중세 가톨릭 조직인 예수회의 설립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신부가 그토록 선행과 복음전파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로 교회사를 통해서 배웠는데 그것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약화되는 가톨릭을 다시 세우기 위해 약탈과 살인과 음모를 일삼았던 인물이였다는 사실을 보고, 또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확인하고 정말 충격적이였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배운 사실들, 나아가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들은 그것을 장악한 사람들에 의해 오히려 대중조작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음지의 역사가 아니라 새롭게 다가올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준비되어지고 또 그 역사속에서 행할 거룩한 신부가 되어지기 위해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준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저자의 말씀에 그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던 때와 시간, 그리고 그러한 때와 시간을 아끼고 준비하는 것에 대한 나의 마음을 확인시켜 주셨다. 개인의 인생에 종말이 있고 역사에도 종말이 있겠지만 현재의 시간속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신부로써의 삶을 살아간다면 종말은 오히려 새로운 생명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성경이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진리임을 믿는다. 많은 세상의 주의들과 학문들이 인문주의를 주창하고 그것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고 살인하는 이면의 악한 역사를 보여주지만, 진정한 인본주의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이름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 즉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의 삶으로 돌아갈 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의 믿음의 여정에 중요한 한가지 포인트를 이 책은 제공해 주었고,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의 순결한 신부로써 나를 세우고 매 순간 그분을 의지하며 겸손과 의로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과거 철학자들이 세상의 원리의 확장이 바로 ‘신’이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 원리 넘어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지금도 그 원리를 붙들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이 짧은 공부이지만 성경과 역사와 철학을 공부할수록 그것이 나에게는 참된 것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많은 역사가들과 철학자들이 역사의 흐름을 알려고 노력하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이 역사를 경영하시며 그 때와 시기를 알 수 있다고 믿는다. 뭐라고 할까 흔들어주며 다시 다져주는 책이다. 회색지대가 아니라 분명하게 선택하라고 도전하는 위험한 책이다.

 

지금 깨어 기도하고, 지금 회개하고 지금 힘써서 기도하고, 지금 중보해야 할 때이다. 지금이 은혜를 받을 기회이다. 지금 충성할 때이고 지금이 상급을 쌓을 기회이다. 게으른 자도 지금, 충성된 자도 지금, 은혜도 지금, 예비함도 지금, 영혼을 사랑하고 애타게 중보기도하는 것도 지금, 시간을 아끼는 것도 지금, 주님과 친밀함과 사랑의 관계를 더 맺는 것도 지금이다. 내일이 주어질지 안 주어질지 알 수가 없다. 오늘 이렇게 이런 정신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동일한 열심히 있어야 한다. 좀 더 할수 있으면 좀 더 하는 것이 영원한 영광에 가게되고 많은 영혼들을 천국에 가게 하는 것이다. 시간을 아껴야 한다. 이 마지막 시대 사단의 가장 큰 전략은 우리를 바쁘게 하여 하나님과 교제할 시간을 빼앗는데 있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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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물건에 대한 소유욕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기본적으로 생활할때 필요한 물건들과, 책사볼 돈만 좀 있으면

나는 만족이다.ㅎㅎ

 

그런데 요즘 정말 욕심이 생기는 것이 하나 있다. 집이다..좋은 집에서 살고싶은..

그것도 으리으리하게 비싼 집이 아니라 정말 내가 원하는 구조의 기능적인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 이러한 욕심은 비단 모든 사람이 가지는 욕심이지 싶다..

 

요즘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내에게 3억짜리 집을 지어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내는 나에게 차 사주겠다고 말한다. 비록 언제 실현될지 모르고

안될 가능성도 많지만 그냥 이렇게 말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이러한 덕담은 자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돈드는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행복해 줄수 있으니까 말이다.

 

길을 가면서 그리고 인터넷 책 서핑을 하면서 집에 관련된 책들을 유심히 보기시작했다.

언젠가는 정말 꼭 집을 짓고 싶다..가장 자연적이며 사적이기도하고 공적이기도

한 나만의 공간을 말이다...

그 책들을 정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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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 사건, 진리, 장소
이정우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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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라는 이름은 나에게 개념의 철학자로 각인되어있다. 그분이 쓴 철학 개념어 풀이 책인 <개념-뿌리들 01,02>를 읽고 우리가 사용하는 철학적 개념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그 과정을 매우 설득력있게 설명해주었다. 평소에 개념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던 부분들과 상응하는 면이 많아 매우 공감하였고, 사람들이 보통으로 쓰는 철학개념들을 저들을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가졌던 것들을 이분의 책을 읽고 그 의문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떤것을 설명할 때 그 근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렇게 된 연유를 설명해주므로 논리적 비약이나 생략으로 인해 생기는 낯설음을 없애주는 매우 탁월한 철학자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하여 그리스 철학을 강조하며 그리스 철학이 모든 철학의 기초라고 말한다. 이분의 글은 매우 탄탄한 기초적 철학의 매트리스가 깔려있다. 그뿐 아니라 미셀 푸코도 전문적인 연구가이다. 그래서 이 책 곳곳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푸코 뿐 아니라 베르그송이나 들뢰즈 같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어느정도 상당한 수준의 철학적 훈련과 기본 배경이 없이는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다시 앞장을 넘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책이 어려우면 차리라 마지막에 보론으로 첨가된 ‘미셀 푸코와 사유의 변환’이라는 저자의 글을 보고 푸코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꽤 많은 분량으로 쓴 서론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에서 전체적인 책의 윤관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적 철학자답게 약간을 역사와 진보의 문제를 사변적으로 다루고 있다. 즉 역사를 반복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반복에는 퇴보의 얼굴과 진보의 얼굴이 있는데 이 두가지로 인해서 역사에는 차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반복을 통해 시간에는 수많은 층위들이 있는 마디가 새겨진다고 한다. 이러한 반복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진보적인 사간에 매듭을 지어주는 것은 인간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며 사건 자체가 역사적인 계열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고 한다. 즉 사건의 계열은 늘 주체에 의해 구성되며 주체에 의해 반복되어진 진보의 시간을 매듭짓는 행위를 통해서 진보적 역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진보란 끝없는 귀환이라는 것 자체가 물적 체제의 끝없는 재생을 전제하기 때문에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하는 소수자들의 생성/운동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실재의 귀환은 물적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때에만 진정으로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 p.29

 

1장 ‘관리사회’에서는 현대사회를 관리사회로 정의하므로써 생성되어진 생명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닫혀진 사회이다. 타자들을 관리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차이를 막고 그 차이를 적절히 배분해 단지 그것을 하나의 일관된 특성으로 취급하여 상품처럼 관리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생명과 차이가 하나의 시스템속에서 제단되어져 버린다. 즉 관리사회란 자본주의의 대전제 위해 적절히 타자들의 차이를 배치하므로 그 치부를 인폐시키는 사회를 말한다. 1장에서 언급되는 화페 또한 순수한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정의되며 단순히 사물의 가치를 표시하는 등가물이 아니라 단지 사물과의관계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하므로 화폐가 괸리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어지는 장을 통해서는 서론을 통해서 이야기된 것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진보’라는 용어로 이해해서 정치권에서의 진보들이 어떻게 변화되어져야 할 것인지로 이해하면 큰 오산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철학적인 관점에서 특히 생명과 타자, 차이와 생성 등과 같은 개념을 만들어낸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의 개념을 사용해 진보를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차라리 제목을 <진보의 철학적 성찰>이라든지 <생성과 차이에서 본 진보>라고 붙이는게 더 적절할 것 같다. 괜히 대선이 다가오므로 진보정당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로 착각하여 덥석 이 책을 사는 오류(?)를 범하지 말도록 말이다.

 

몇 번이나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 근데 이 책 드럽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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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1-0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야 하는데 어렵다 하니 손이 잘 ㅋㅋㅋ 그래도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 - 정리되지 않는 인생을 위한 철학의 조언
이나 슈미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어크로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질서(Cosmos)와 무질서(Chaos)에 대한 것들을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풀어내는 철학 에세이다. 그런데 어렵다. 이 책을 보게된 이유는 내 주변에 강박적으로 질서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매우 날카롭고 조직적인 사유를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이 판단력을 심각하게 신뢰하며 늘 모든 현상들을 분석하고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조언하려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지만 이러한 습성으로 인해 자신도 주변의 사람도 어렵게 만든다. 옆에 보면서 어떤 질서에 모든 사람들과 현상들을 편입시켜 그것을 통제하려는 그 습성이 너무나도 나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쁘게 보이는 것을 넘어서 어떤 강박관념이 사람들의 자류를 빼앗기까지하는 정신적 폭력으로 까지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이 책의 주제가 코스모스와 카오스, 즉 질서와 무질서를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전개하는 내용이 궁금했다. 살려고 마음먹었다가 근처 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왔길래 일단 빌려서 보기 시작했다. 질서라는 뜻의 코스모스는 단순히 우리 주변의 질서뿐 아니라 우주와 나와의 질서로 확장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을 매우 예민한 철학적 사유로 전개해 나가기 시작한다. 질서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세계속에 이 모든 세계를 집어 넣으려는 편협한 자기 만족일 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맥락에서 이미 19세기 말에, 우리는 항상 가장 비슷하지만 절대 동일시하지 않은 사물들을 동일시한다고 한탄하였다. 우리는 사물들을 패턴과 책장 속으로 억지로 밀어넣는다. 뜻대로 잘 안 되면 새 패턴을 짜는 게 아니라 사물의 모퉁이를 살짝 잘라내고 그 위에 칠을 해 덮어버린다. 그래놓고는 아무리 해도 우리의 정신적, 외적 질서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의하애한다.

 

이 책의 저자는 완벽한 질서, 코스모스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모든 자아의 내면이 질서에 순응하는 이 세상이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질서의 혼돈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단호하게 철학적 사유를 키우라고 말한다. 철학적 사유란 어떤 패턴에 정해진 조직적 사유방식이 아니라 이 세상의 현상을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을 뿐 아니라 그 나름의 질서속에 스스로를 편입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적 시각을 가진 관찰자 속에서 그 관찰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사람, 그리고 나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점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탁월하게 설명한다.

 

지난 세기 양자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는 물리학과 철학의 ‘만남’을 집중 조명하여 이런 사실을 발혀냈다. "자연의 온갖 형태를 만들었고 우리의 영혼, 즉 우리 사고 능력의 구조를 책임지는 것은 동일한 정돈하는 힘들이다.“ 그러니까 몇 십 년 고전물리학이 양자물리학으로 발전하면서 우리도 이미 확고부동한 실체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관계 속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그에 따라 사물들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관찰자는 관찰 대상을 변화시킨다. 이 역시 과학의 세계를 뛰어넘어 사고 전환을 이루어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밝혀낸 중요한 깨달음이다. (p.44)

 

이 책을 읽으면서 질서와 무질서에 대해서 이렇게 집요한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세계는 코스모스지만 무수히 많은 카오스가 존재한다. 개별적 카오스들은 어쩌면 전체적 코스모스 속에 편입되어있는 지도 모른다. 카오스를 혼돈스럽게 여기지 말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약동하는 운동의 힘에 맡긴다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코스모스의 질서속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의 설명을 들으면 현대 철학의 첨예한 담론인 차이와 동일자 이론이 생각났다. 현대 시대의 우울과 파괴는 주체가 모든 차이의 타자들을 동일성이라는 질서에 편입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철학자들은 진단했다. 그래서 현대 시대의 문제점을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동일성’이라는 질서에 편입시키려는 폭력이라고 보고 ‘차이’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데 현대철학이 집중하지 않았나 싶다. 주체와 타자의 차이는 결국 카오스와 코스모스와 일맥상통한다. 주체의 입장에서 모든 타자는 카오스이다. 그러나 주체로써의 타자는 카오스가 아니라 코스모스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결국 전체 질서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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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0-26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빛이나요 ㅎㅎㅎ이글보고 천장지구가 떠올랐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글 보고 누구신지 알았네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