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게 세상을 묻다 - 우리 사회 10대 난치병 feeling에서 thinking까지
이승연.김용희 지음 / 에이지21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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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에게 세상을 묻다> 일단 표지가 너무 이뻤다. 정말 영화의 한 장면 처럼 한 여인이 자유롭게 허공에 떠있는 모습과 푸른색 표지가 묘하게 시원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이 책을 쓴 두 저자도 세련되고 미인의 모습이였고 그러한 이미지가 정확하게 이 책에도 반영되어 있다. 영화로 세상을 읽는 시도는 여러번 있었고 특히 이 책은 영화를 통해서 정치에 말을 걸고 있다. 한 영화평론가는 '영화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고 했다. 이 말은 영화가 윤리도덕적으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그러한 교과서적인 매체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인간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장르라는 말이다. 즉 영화속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특정한 규범 밖의 것까지 모조리 다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평론가의 말은 예술의 장르로써 영화를 정의한 말로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표현이다. 이 책<영화에게 세상을 묻다>는 이 평론가의 말처럼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영화를 가지고 나름대로 현 정치에 대한 저자들의 시선을 풀어놓는 것이 재밌다. 즉 영화를 가지고 세상 읽기를 시도한 것이다.

 

10개꼭지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꼭지마다 3편의 영화가 있다. 영화는 내가 거의 보지 못한 것이였다. 일반 대중적인 오락영화가 아니라 사회의식을 지니고 있는 영화가 대부분이여서 영화를 알지못한 상태에서 그것을 풀이한 이것을 보니 영화의 전체 맥락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또 짧은 지면에 30개의 영화를 소개하고 그것으로 짧은 저자들의 단상들을 던지는 식이니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저자들의 주장 또한 비약이 많고 설득력이 부족하단 느낌이 들었다. 두세장 정도의 분량으로 영화의 내용을 쓰고 해석하고 한국사회에 적용하려니 듬성듬성 뛰어넘어 도대체 무슨말을 하려는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내용에 빈틈이 많다. 이러한 모음집을 나는 싫어한다. 호흡이 짧고 마케팅 위주의 책이라서 무엇가 설득력있게 길게 논의하지 못하고 몇편의 이미 써놓은 글들을 짜맞추어 그냥 책 형식으로 내어버리는 호흡이 짧은 책에서 건질것은 별로 없다. 책은 상당히 정성스럽게 만들고 편집도 잘되어 있는데 내용의 빈약하고 지나치게 호흡이 짧은 느낌이다. 유명한 정치인들과 영화인들이 추천을 했는데 저자중 한명이 정치권에서 홍보담당으로 일한적이 있어서 일식이 있는 정치인들이나 영화인들에게 추천을 부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 책에서는 영화라는 특정한 매체를 통해서 현 정치적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영화를 통해 현실을 다시 묻는다. 영화 '스윙보트'주는 아주 재밌는 상황을 보여준다. 주인공 몰리는 귀여운 딸인 버드와 함께 가난하게 살아간다. 마침 대통령을 뽑는 투표일이지만 몰리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귀엽고 똑똑한 딸 버드는 아빠에게 투표하라고 독려하지만 아빠는 시큰둥하다. 급기야 버드는 자신이 투표할려고 하다가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하나의 부재자 투표가 선거의 결과를 만들게되는 상황에 이르자 각 정당들은 몰리에게 자신을 찍으라고 온갖 아부를 다한다. 이때 몰리는 투표로 세상을 바뀌지 않는다고 하면서 투표를 행사하고 영화는 마치게된다. 정치인들은 표를얻으려고 하지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윙보트'를 통해서 아주 잘 보여준다. 비록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이 영화는 정치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 같다.

 

잘 만들어지 책인데 호흡이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좀더 긴 논의를 통해서 깊이 있는 영화와 현실, 그리고 정치를 연결시켰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새정부가 들어선 후 인선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전부터 씁쓸한 소리가 들리니 정말 정치는 구제불능인가..하는 생각도 든다. 정치인들이 영화를 본다고 바뀌지는 않겠지만 현실이 어떠한지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가상현실인 영화를 통해서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 이 책에 묻어있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브이 포 벤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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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박부장입니다 - (주)만복유통 글로벌 마케팅 감동 신화
정진호 지음 / 홍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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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박부장입니다> 소설제목치고는 좀 유치하고 어이가 없다. 소설의 기획과 내용에 비해서 이 제목은 다소 가볍게 느껴지고 내용의 스케일이나 진지한 의도를 담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이는 거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저자가 말하는 온전한 복음과 새시대를 위한 새로운 교회론의 의미를 알고 이 제목을 보면 '띵동'이라는 말은 교회를 사람들 가운데 가져다 주는 희망의 소리로 이해가 되고, 박부장이라는 말은 평신도 복음사역자의 대표격으로써 사용된 단어임을 알수 있다. 구입하기에는 소장가치가 조금 떨어진다 생각하여 이 책을 빌렸다. 가까운 지인이 강력히 추천하기에 빌려서 읽게 되었다. 저자는 정진호. 이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평양과기대와 연변대학에서 가르치면서 탈북자들이나 실크로드를 따라 이스라엘로 들어가면서 그곳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는 재료공학자로 알고 있다. 주로 평신도의 입장에서 개혁적인 글을 쓰시는 분인데 이 분의 글을 처음 읽어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도전적이고 시대 적절한 교회론을 제시하는 책이다. 요즘 한국교회가 이제 한계에 다달했다는 자성적 반성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교회론의 문제 그것도 교역자와 평신도간의 계급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근본적이라 할수 있다. 이 책은 목회자가 중심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평신도 전문인이 오직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자발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유기적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 책의 두 중심축을 말하자면 온전한 복음과 새로운 교회론이다. 나에게 매우 적절하고 평소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주는 책이였다.

 

일단 온전한 복음과 새로운 교회론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서 저자가 채택한 방식은 논리적인 논술방식이 아닌 이야기를 통해서 두가지 핵심적인 논의를 설명한다. 어쩌면 이야기야 말로 논의가 말하지 못하는 인격적이면서도 온전한 설명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야기는 혜진과 그의 남편 영광으로부터 시작된다. 혜진은 과거에 교회에서 만난 광서라는 남자를 사랑했다. 광서는 가난한 집안의 청년이였지만 건실하고 조용한 카리스마로 혜진의 마음을 잡았고 혜진은 그에게 마음을 주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의 형편의 차이로 인해 억지로 혜어지게 되었고 혜진은 조건좋은 영광이라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영광은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조건과 능력을 가진자로 혜진은 애써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광서와의 헤어짐을 잊으려한다. 어느날 영광이 혜리라는 젊은 여자에게 아이를 낳게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녀의 가정을 깨어지기 시작한다. 자녀 수민과 성민은 어긋나기 시작하고 영광은 자취를 감추고 혜진은 그동안 지켜왔던 가정의 틀이 모두 무너져감을 느낀다. 혜리는 영광이 임신시킨 딸을 데리고 와서 혜진의 마음을 어지렵했다. 그때 박부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부터 이상하게 하나둘씩 사건이 신비스러우면서도 은혜롭게 해결되기 시작한다. 박부장이라는 사람은 일곱 개의 비밀이 담긴 상자를 가지고 와서 이것을 시간이 될 때마다 하나씩 열어보라고 하고 혜진이 이 상자의 하나하나씩을 열때마다 그녀에게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된다. 그녀는 혜리와 수민으로 인해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나고 그들과 화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박부장으로 인해 중국으로 가게되고 거기서 옛 애인 광서와 그녀의 남편 영광을 동시에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이 혼란함의 중심에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의 경험을 주변의 친구들에게 전해주므로써 복음을 전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자 만복유통의 지점을 세우게되고 이것이 글로벌화 되면서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하나되는 특별한 교회의 틀을 만들어가게 된다.

 

대략적인 이러한 줄거리 속에서 저자는 온전한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현 교회에서 전하는 교회중심, 목회자 중심적인 불완전한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중심의 온전한 복음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직접 사역자가 되고 섬김이가 되어서 주의 복음을 잁터와 세상으로 확장시켜나가는 새시대를 위한 새로운 교회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복음의 다시 이스라엘로 들어가 유대인과 이방이 하나되는 우주적인 교회론적 모델을 제시하고 그것을 광서와 그의 유대인 아내 아비가일을 통해서 소설적 이야기로 구체화 하고 있다.

 

이 책은 참된 복음과 교회에 대해서 상당히 오랜세월 고민하면서 실천해온 저자 정진호 박사의 전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프로젝트에 대한 그림이 담겨져 있다. 그는 이러한 열린 교회에 대해서 그의 전공인 재료공학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재료를 구성하는 셀이 거대할때는 주변의 셀이 그 특성을 잃어버리고 거대한 셀에 편입되지만 작은 셀로 구성될때 그 재료는 더욱 단단한 성질을 가진다고 하면서 마이크로 셀로 구성된 재료가 튼튼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회또한 거대한 중심이 아니라 자발적인 작은 중심이 건강한 교회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닫힌 셀이 아니라 열린 셀이 서로의 결합을 단단하게 하듯이 교회 또한 물질과 영성이 흘러가는 담을 넘는 열린 곳이 될 때 교회의 연합과 부흥이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재료공학적으로 마이크로 오픈 셀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목은 다소 유치하기고 하지만 매우 거대한 스케일과 온전한 복음, 그리고 전혀 새로운 시대에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평신도와 사역자가 하나로 통합되는 새로운 교회론을 제시하는 매우 뛰어나고 중요한 책인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고민하고 생각해 왔던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어느정도 좋은 모델을 얻은 것 같았다. 하나님 원하시는 참된 교회의 모습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교회가 로마의 국교로 인해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로 구조화 되기전 1세가 초대교회에서 그 본질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은 마이크로 오픈 셀과 같이 작고 열린 모습을 통해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순회전도자와 상담자는 교회와 모임을 돕는 보조자일 뿐, 절대로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가지 않았다. 모든 성도가 예배자요, 설교자요, 또한 직업이 있는 전문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것은 모든 성도가 독립 예배자로서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직분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회 모임 역시 성도들의 집이나 더러는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일터교회의 성격이 강했다. 실제로 교회를 개척하면서 동시에 가능한 유통 사업을 함께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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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4주년이다..

내가 늦게 결혼한 탓에 이제 4주년이다..

함께 살아오면서 이제 부부가 되어가는 느낌^^

 

마침 상품권이 생겨 그걸로 빕스갔다가

아이스크림 케잌으로 결혼기념일 자축을..ㅎㅎ

 

행복하였스므니다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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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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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과연 통섭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과 과학이 만나고 과학과 종교가 만나고 문학과 예술이 만나며, 정치와 음악이 만나는 그야말로 퓨전의 시대이며 통섭의 시대이다. 이것은 무분별한 잡종이 아니라 새로운 종의 출현을 기대하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섞임인 것이다. 이 책의 기획자 애덤 블리이의 기획의도가 매우 신선했다. 그는 각분야의 매우 탁월한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대담을 시키고 지평융합이 일어나도록 했다. 이러한 시도는 언제나 행해져야 할 것이다. 구획짓고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종횡무진하면서 그안에 어떠한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가 불꽃튀며 솟아날지를 기대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에는 과학이 최종적 지식의 권위를 얻게되었다. 그 과학의 발전 속도에 걸맞게 새로운 인문학적 질문과 대답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새시대의 새로운 질문에 인문과학, 자연과학, 예술과 미디어등의 새로운 답변이 인류의 새로운 삶의 양태의 출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질문과 답변의 새로운 창조적 발상의 자리에 초대된 세계적인 석학들은 이름만 들어도 최고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지식의 최전선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노암 촘스키를 비롯하여, 에드워드 윌슨, 스티븐 핑커, 미셸 공드리, 피커 갤리슨 등의 지식의 프런티어들이 모여서 진화철학, 시간, 꿈, 전쟁과 기만, 자유의지, 프랙털 건축, 소셜 네트워크등의 주제에 대해서 풍성한 대화의 잔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거장들의 대화를 중간에 앉아서 들어보면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크다. 서로의 분야에 대해서 대가로써의 존중심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잘아는 만큼 자신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사실도 잘알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이러한 수준높은 지식과 인격적인 대화는 최첨단의 지식에 대해서 대화라는 장을 통해서 매우 쉽게 일반인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대화야 말로 전문적인 용어로 가득찬 전문지식을 가장 쉽고 일반적인 용어로 배울수 있는 최고의 도구이다. 이 책은 먼저 진화생물학의 저장 에드워드 윌슨과 진화론적 철학자인 데니얼 데닛의 대화로 시작한다. 윌슨은 과학자이고 데닛은 철학자이다. 특히 에드워드 윌슨은 인문학자와의 대화를 어렵게 생각하고 사회생물학으로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러나 두사람과의 대화는 신, 진화, 근친상간, 사회적 규범, 개미등에 대해서 진솔하면서도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한다. 둘은 진화론자이기에 동감하는 부분도 있고 과학자와 철학자이기에 다소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그런데 확실히 거장들사이의 대화는 서로를 존중한다는 느낌이 든다. 반대의견을 진정한 존중으로 여기고 그것을 수용한다. 반대의견을 자신에 대한 반대로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높은 지식과 품격이 느껴지는 대화이다.

 

이 책은 주제의 다양성이 최고의 장점이자 또한 단점이다. 여러가지 주제로 많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하지만 그 호흡이 짧아서 많이 아쉬운 감도 든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는 진화철학, 의식의 문제, 시간, 설계와 디자인, 객관성과 이미지, 기후의 정치학, 전쟁과 기만, 꿈, 픽션의 진실, 음악, 형상, 인공물, 누가 과학을 하는가, 인간등의 주제로 대화가 오고가지만 나는 2장 '도덕은 발명한 것일까 발견한 것일까'에서 스티븐 핑커와 레베카 골드스타인의 대화가 매우 유익했다. 특히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인간의 마음의 도덕적 의식을 심어주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의 과학자와 소설가들이 만들서 내어놓는 최고의 통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인간의 도덕성이 과연 어디서부터 오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진화심리학자이기도한 스티븐 핑커는 인간의 도덕성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부터 오는 사회성의 산물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소설가인 레베카 골드스타인은 그러한 진화적 관섬을 인간을 동물로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읽으므로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도덕성을 깨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과학과 인문학의 지평융합을 이르고있다. 특히 스토리텔링은 가공한 허구의 이야기지만 왜 인류가 그러한 가공한 스토리텔링을 그렇게도 좋아했고 그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어떻게 인간 도덕성을 키워왔는지를 말한 부분은 이내용의 백미라고 할수 있다.

 

과학과 인문학의 지평융합. 이제는 문과 이과로 나누는 시대는 지났다. 횡과 종으로 각 분야를 횡단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잡종적 창조물과 아이디어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는 시대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지평융합은 시도한 이 책의 기획자 애덤 블라이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이제는 정착적 지성인이 아니라 노마드적 유목적 지성인이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시대이다. 종과 횡으로 가로질러 무수한 지평융합을 만들어내는 일이야 말로 이 복잡한 21세기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수 있는 것이다.

 

<21세기 과학과 인문학의 지평융합의 시대..> 

 

과학과 종교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느쪽도 더 강해지지 못했다. 이 싸움은 그저 쌍방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을 뿐 대중을 끌어들이지는 못했다(종교의 기반은 과학의 기반보다 훨씬 크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화적 전쟁'이 지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유용했다. 그러나 종교는 과학을 쓰러뜨릴 수 없고, 과학 역시 종교를 쓰러뜨릴수 없다. 둘 다 인류 사회에 너무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p.7 -애덤 블러드의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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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nc 2013-02-2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 글이 신간평가단 페이퍼에 연결되어 있지 않네요.
아마 실수로 빠뜨리신 것 같은데, 수정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