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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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이라는 이름은 어느 블로거의 리뷰를 통해서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공부>라는 책인데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그 책을 보았을 때 특별한 인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 책을 대충 훑어보니 현시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줄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서 엮어놓은 것 같았다. 문학동네에서 이 책의 독서 모니터요원으로 선정되어 받아 읽기 시작했다. 첫장부터 문장이 주는 감동과 내공이 만만치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런 것을 인문학이고, 인문적이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어쩜 산티아고 길을 걷는 과정을 통해서 이다지도 풍부한 문장을 풀어낼 수 있는지 감동과 감탄을 연발하며 읽어내려갔다. 표지 사진의 인물을 보고 인터넷을 찾아서 정진홍 작가의 외모를 보니 탄탄하고 단단한 덩치와 깊은 목소리가 뭔가 울림을 주는듯했다. 새로운 읽어야할 인물 한사람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저자가 47일동안 순례자의 길이라고 일컬어지는 산티아고의 길을 900킬로미터는 걸으면서 그가 보고 느꼈던 감상을 적어내려간 기록이다. 그 기록이 단지 자신의 경험을 단순하게 풀어낸 것이 아니라 그의 깊은 인문적 내공이 어울어져 멋진 향기가 되어 깊고도 긴 여운을 마음속 깊이 번지게 하는 인문적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미 중년의 안정을 누리고 있었던 사람이였다. 교수로 유명한 신문의 정기 기고자로 또 알려진 강연자로 그의 인생은 충분히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의 삶의 모토가 안주는 안락사이다인데 그의 모토를 따라서 그는 결단을 내렸다. 무엇이 그렇게 자신을 그 길을 걷도록 내어 몰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그는 언제나 구도자로서 무엇가 진실을 찾고자 하는 갈증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는 감성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는 자세히 풀어내지 않지만 자신의 삶의 응어리가 자신을 지금까지 달리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응어리를 아직 다 풀어내지 못해 몸부림치는 삶의 순례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그는 그때그때의 감상을 자세히 적어내려간다. 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상과 생각의 흐름을 포착하여 그의 인문적 지식과 어울어져 훌륭한 감동적 문장을 만들어간다. 그는 산티아고를 걷는 길을 어느 누구를 위함도 아닌, 사회의 인정받기 위함도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덕지덕지 붙게되는 여러 가지 명함들,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날것으로써의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기 위해 그는 길을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 울기도하고, 웃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싸우기도 하면서 그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진짜 날것으로써의 자신을 직면하였다. 그렇다 진짜 잘 살기위해서는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인간은 많이 채워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많이 비워지지 않아서 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 그것도 홀로 오랫동안 걷는다는 것은 분명히 순례요 구도의 행위이며 그 행위를 통해서 삶의 신실을 자신의 진실을 깊이 대면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개인적인 에세이가 아니라 어떤 구도자의 종교적 행위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를 맞고 홀로 자면서 길에서 홀로 하늘과 별을 벗삼아 걸으면서 자신을 가다듬는 구도자의 행위같은거 말이다. 나도 그냥 걷고 싶어졌다. 저자가 걸었던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현실에 묶어두고 있는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홀로 저자와 같은 길을 떠날 때 내안에 꿈틀거리는 참나의 모습과 마주치고 싶은 갈증말이다. 오래전부터 항상 내가 누구인지 궁금했고 그것을 알기 위해 분투해왔다. 왜냐하면 참으로 나를 알 때 참으로 나의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나지 않고서는 오히려 참나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수히도 많이 나를 엮어놓고 있는 현실의 날줄과 씨줄앞에 나의 모습은 감추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더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커져갔다. 물론 당장은 아니더라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꼭 그 길을 걸으리라 다짐했다. 사람이 극한에 내몰릴 때 비본질적인 모든 것들이 벗어지고 가장 기본적이면서 본질적인 부분이 보이듯이 자연으로 나를 몰아낼 때 그 자연은 나를 둘러싼 비본질적인 것들은 걷어내고 가장 본질적인 것들만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짐들을 내려놓았듯이 나 또한 작가와 함께 무언가의 짐이 내려지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어머니, 아니 엄마의 퍽퍽했던 삶을 떠올리며 엄마엄마하고 울면서 길을 걸었다는 그 대목에서 나 또한 돌아가신 어머니, 아니 엄마의 삶이 떠올랐고 엄마의 퍽퍽했던 삶, 자식을 위해 희생했던 삶,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버팀목이 되었던 나의 엄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저자가 혼자서 히죽이죽 웃을 때 나도 히죽이죽 웃으며 혼자말을 하기도 했다. 저자의 문장에 진실의 힘이 있었고 함께 공명할 수 있도록하는 어떤 경건한 힘마저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나의 모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잠깐동안이라도 떠나는 것 가장 필요한 짐만을 싸고 떠나는 것, 그리고 홀로 구도의 걸음을 내딛으면서 가장 자연스러운 나와 공명하며 참된 진실에 근접하는 것, 이것이 이 책에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길을 걸으면서 그것을 구도적인 행위로 승화시킨 것 같이 저자도 걷는다는 매우 단순하고 평범한 행위를 통해서 인생과 삶과 자아를 밑바닥에서부터 진실을 건져내는 구도의 행위로 승화시킨 것 같았다.

 

분명 받은 감동이 크고 할말이 많은데 자꾸만 안으로 맴돈다. 정리가 되어서 글로 나오지 않는 느낌이다. 가슴으로 읽어서일까, 내면으로 받아서일까, 머리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져 깊고 깊은 여운으로 나의 가장 깊은 곳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진정한 울림은 말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해지는 법. 비록 이 책에서 받은 깊은 감동을 다 전하지 못했지만 그가 준 감동이 작은 여운으로 퍼져갔으면 좋겠다. 올해 읽을 책중에 가장 감동있고 내면을 충만하게 하는 그리고 깊고 울림있는 문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이였던 것 같다. 자신의 내면에 충실히 따라가는 저자의 깊은 인문적 성향, 그리고 깊은 인문적 지식, 그리고 내면의 울림을 깊고 풍부하게 전해주는 문학적 향기가 모두 갖추어진 멋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정진홍이라는 이름을 다시 찾아봐야 겠다.

 

그 길은 진정으로 나 되기 위해 걷는 길이다. 그러니 빨리 걷는 길이기보다 느리게 걷는 길이고 여럿이 더불어 걷는 길이기보다 홀로 고독하게 걷는 길이다. 물론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고독하지만 쓸쓸하지 않게 말이다. 그래서 걸을수록 비워지고 걸을수록 채워지는 묘한 길이다.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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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1-2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추천 ~ ^^

불꽃나무 2012-11-29 18:37   좋아요 0 | URL
무조건 땡큐 ㅋㅋ
 
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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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책을 덮어버리거나 아예 책을 버리기 까지 했던 적도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겨우 이거 이야기 할려고 이렇게 많은 분량을 쓴거야?'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어쩌면 아직까지 소설의 맛(?)을 보지 못했던지, 아니면 오래동안 머리의 힘을 잔뜩 주고 보아야 할 논문과 같은 딱딱한 글을 보는데 익숙해져서 한문장에 정확히 전달해야 할 내용이 보이지 않으면 힘들어지기 까지하는 편식적 글읽기의 뇌로 학습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소설을 선택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돈을 지불하고 사야될 책인지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보야 할 책인지를 선택한다. 선택하는 기준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소위 말하는 칙릿 소설이라든지 트렌드 소설은 거의 사지 않는 편이다. 한번 읽고나면 그냥 한바탕 수다떠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서면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영양가 없는 대화와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설에 대해서는 편애하였던 나의 책읽기 성향에도 불구하고 나의 선택을 받은 소설이 있었는데 그 소설이 바로 이 책도둑이였다. 

 

시립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았을때 먼저는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책도둑이라는 특이한 소설제목과 책을 펼쳐 보았을때 새로운 소설 형식의 글쓰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와 문단의 평가가 괜찮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선택하게 된것은 역사적 배경이 유대인 학살사건, 즉 홀로코스트였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역사 분야가 바로 유대인에 관한 역사였기 때문에 그것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이야기가 무척 나의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처럼 전체적이 스토리 라인이 '책'에 대한 내용이였다. 유대역사와 책, 이 두가지로 인해 나는 거의 필연적으로 책도둑을 선택하고 샀다.

 

그러나.. 역시나..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였고 이 책에 대해서 매우 좋은 평가를 하였던 서평이나 추천사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격조 있고 철학적이며 감동적이다. 천천히 아껴가며 읽어야 하는, 아름답고 중요한 작품. 키커스 리뷰

절제의 승리...최근 오스트레일리아 문학 중 가장 독창적이고 주목할 만한 작품. 더 에이지

이 책은 완벽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목록에 <책도둑>도 추가되었다. 이 책을 사라. 이 책을 읽어라. 그리고 이 책의 가치만큼 이 책을 사랑하라. 너무 멋진 작품이다. 아마존 독자 리뷰

이 책이 보여주는 비극은 미치 생명의 빛깔이 사라진 흑백영화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찌른다. <책도둑>은 <안네의일기>나 엘리 위젤의 <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고전이 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USA 투데이

 

하나같이 대단한 작품이라고 추켜세운다. 내가 이책에 대한 위의 평가중에서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독창적 작품'이라는 평가이다. 책도둑은 형식에 있어서 독창적이다. 먼저 죽음의 신이 한 아이의 일생을 내려다 보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죽음의 신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전지적인 작가관점, 일인칭이 되었다가 다시 사라지고 작가가 갑자기 끼어들면서 작가관점으로 돌아온다. 죽음의 신이 이 소설의 가장 처음 부분에서 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나레이션을 해주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죽음의 신의 역할은 이야기가 계속될 수록 흐지부지해지고 만다. 이것은 작가 마크 주삭이 죽음의 신의 역할을 창조적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주인공 리젤의 심리적 변화나 배경적 상황의 변화를 말해줄 때 색깔이나 말의 구체적인 묘사로 표현된다. 예를 들면 죽음의 신이 말하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하루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만 색깔을 관찰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수많은 색조와 억양이 뒤섞이면서 매 순간이흘러가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단 한 시간에도 수천 가지 색깔이 있을 수 있다. 밀랍 같은 느낌이 나는 노란색, 구름이 뱉어낸 파란색, 뿌연 어둠.나 같은 일을 하다보면 숩관적으로 그런 색들이 눈여겨보게 된다.

 

죽음의 신이 보는 색깔은 이 소설 전체에 흐르는 배경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그리고 리젤의 눈으로 소설속의 화자들에게서 나오는 말들이 독특한 형식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색깔과 언어의 묘사는 이 소설의 형식에 새로움을 불어넣어주는 기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소설 기법들이 책도둑의 가장 독창적인 형식을 창조하기는 하나 소설의 이야기와 작가, 그리고 화자와 그 묘사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하나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따로노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형식은 나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았을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면서 긴장감을 주는 밀도있는 스토리텔링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번역자의 번역능력부족인 것 같아서 번역자를 확인해 보았더니 번역자는 정영목이였다. 정영목님은 이미 좋은 번역으로 검증받은 분이고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은 매우 재미있게 읽었고 번역의 냄새를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책도둑> 스토리텔링의 느슨함과 밀도감이 없는 것은 번역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소설형식 때문이였다.

 

그리고 독일 나치 치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책도둑의 이야기와 그다지 밀착되는 연관성이 적다. 그래서 이 책과 똑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나 엘리 위젤의 <밤>에 비견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불성설이다. <안네의 일기>나 <밤>은 역사적 배경이 소설의 이야기에 온전히 녹아 있어 그 소설에 무게감과 진중함을 실어주고 역사적 배경이 이야기에 밀착되어 있지만 이 <책도둑>에서는 같은 배경이 이야기와 연결고리가 상대적으로 적다.

 

쓰다보니 리뷰나 서평이 아닌 비평으로 흐른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잔득 기대하고 읽었던 책도둑이 나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준것 같아서 다음부터 소설을 읽을때 서평이나 리뷰를 믿지말고 스스로 읽고 확인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보는 느낌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감동받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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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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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책을 선택해서 읽게 된것이 C.S.루이스라는 사람이 주는 매력도 있었지만 이 책 제목에서 알수 있는 것처럼 그 내용이 요즘 드물게도 내 자신의 실존의 상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였다. 누구나 겪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러나 자신에게는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슬픔을 C.S. 루이스는 어떻게 다루는가가 궁금해졌다. 탁월한 사람이 겪는 평범한 슬픔은 어떤것일까..라는 것이..

그는 손쉽게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신다'라는 식의 답을 던져주지 않았다. 오히려 정직히 자기에게 떠오르는 하나님에 대한 의문들을 정직하게 풀어놓으므로 인간이 슬퍼하도록 허용되었으며, 슬퍼하는 것이 정상이고 마땅한 일이며, 그리스도인도 상실에 대해 이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그 어떤 훌륭한 신앙적 해법보다 더 많은 위로와 힘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가 슬픔에 짖눌려 있을때 어떻게 이렇게 명확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것을 표현해 낼수 가 있는지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슬픔을 헤아려 볼수 있다는 것자체가 탁월함이 아닌가? 그가 겪은 평범한 슬픔이 그의 탁월한 재능으로 인해 그의 슬픔마저도 탁월하게 구별되는 것같아서 조금은 씁쓸한 느낌이 들었던 책이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책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감상적이고 손쉬운 위로가 아니라 깊은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사랑이란 매혹되면서도 올바로 꿰뚫어 보는 힘을 주며, 그러면서도 환멸을 느끼지 않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처럼 꿰뚫어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앎은 서로 구별되는 별개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 자신과도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사랑하므로 보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보면서도 사랑하시는 것이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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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노보들 - 자본주의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안치용.이은애.민준기.신지혜 지음 / 부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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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자본주의 시대이다. 일본계 미국인 프란시스 후쿠아먀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인간 사회의 마지막 발전된 형태가 자본주의라고 하였다. 다소 순진한(?) 결론이기는 하나 이제 자본주의보다 다 나은 사회제도는 없고 자본주의에서 종결을 맺었다고 하였다. 자유, 시장, 인권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좀더 편리하게 하는 제도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생각하면 이 자본주의가 후쿠야마의 말대로 인간사회제도의 마지막이라는 말이 웬지 씁쓸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주는 폐혜와 부작용도 그동안 인간 역사에서 실험해왔던 사회제도 즉, 군주제도, 봉건제도, 공산주의 등과 같은 제도의 부정적인 측면과 비교해 봤을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떤이의 말대로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제도가 아니라 가장 단점이 적은 제도라는 말이 맞는 것같다.

 

우리네 주변을 둘러보아도 자본주의가 주는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젊이들을 보게 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스펙을 늘리는 것,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해외 어학연수는 물론이고 장기간 유학을 떠나는 것등이 그러한 것이다. 무한 경쟁체제에 생존하기 위해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응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말은 승자독식사회, 무한 경쟁사회라는 말과 순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그야말로 아름다운 연꽃과 같이 사회에 활력을 주고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보노보들이 존재하는 것은 참 다행이며 좀더 사람살기 좋은 자본주의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 <한국의 보노보들>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을 들었다. 기업의 원래 목적인 이윤을 추구하기 보다는 사회적 목적을 우선시 하는 기업이라고 한다. 이직 우리나라에서는 걸음마 단계이지만 이윤뿐만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함께 생각하는 사회적 기업을 통해서 좀더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참 인상적인 것은 사회적 기업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음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그들 또한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워임을 주지시켜주고 그 이윤으로 또 다른 장애인들을 돕는 장애인 기업이였다. 특히 '대안일터 큰날개'라는 기업은 처음에는 장애인들의 일상사를 돕는 서비스로 시작하였다가 제과업으로 돌려 장애인을 고용하고 그 이윤으로 다시 장애인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 '대인일터 큰날개'를 시작한 박정자 대표는 1년동안 아버지, 어머니, 남편, 큰오빠를 잃으면서 이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5년간 제대로 월급을 받지도 못하고 자신의 집을 저당잡혀 그것을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일정한 이윤보다는 장애인들을 고용하고 그들을 돕는 사회적 목적을 우선으로 하였다고 한다. 정말 이윤보다는 사회봉사의 확고한 자신의 인생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 <한국의 보노보들>은 이러한 사회적 기업 곳을 소개한 책이다. 모두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기업을 운영하며 사람을 위하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려는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였다. 이런 사람들, 이런 기업이 있는 이상 우리사회는 좀더 아름다워지지 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보노보들이 만드는 제품을 이용하고 그들의 단골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들의 기업을 이용하는 것이 내가 할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 아닐까 한다.

 

책 표지도 '자본주의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부제와 같이 심플하고 수수한 디자인이여서 참 좋았다. 나도 한국의 작은 보노보가 되기를 조용히 다짐하고 그들을 응원하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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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전쟁 - 마틴 메이어, 한국 교육을 말하다
마틴 메이어 지음, 조재현 옮김 / 글로세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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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전쟁, 이 책의 제목은 한국의 교육현상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말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마틴 메이어는 어떤 시각으로 어떤 한국의 교육의 치열함을 보았기에 한국교육을 한마디로 교육전쟁이라고 표현했을까? 그 안에는 자녀들을 좋은 교육을 통해서 풍요로운 삶을 물려주는 부모들의 열정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열정이 온전치 못한 성적과 대학진학의 절름발이식의 교육을 만들었다는 부정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몇해전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가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서 한말씀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의 대답은 한국의 교육은 한마디로 "crazy"하다는 것이였다. 마틴 메이어가 본 한국교육이 "전쟁"이라면 엘빈 토플러가 본 한국의 교육은 "crazy"하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밖에서 본 한국교육은 한마디로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교육은 공교육의 정상적 기능의 부재로 인한 엄청나게 고비율, 비인격적 사교육 현장을 낳았고, 이러한 것은 우리의 사회를 학력으로 평가받고 연대를 이루는 학벌사회로 전략시키고 말았다. 교육부장관이 바뀔때 마다 교육정책은 바뀌고 그에 따라 갈팡질팡하며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우리교육의 현실은 실로 눈물겨울 정도이다. 여기저기에서 교육개혁에 관한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진정한 참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 교육의 실태를 그 뿌리부터 진단하고 참된 교육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진단과 처방이 필요한 시기이다.

 

시중에 많은 교육과 관련된 책이 나와 있지만 특히 이 책 "교육전쟁"을 주목해 봐야할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이방인의 눈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한국사람은 한국사회의 특징을 잘 모른다. 하나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밖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 교육을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해서는 이방인의 시선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마틴 메이어가 이방인일 뿐만 아니라 교육을 평가하고 진단하기에 매우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야가 매우 넓다는 것이다. 먼저 그는 고등학교때까지 모국인 네덜란드에서 자랐다. 그리고 대학은 미국에서 다녔고 최종학위는 러시아에서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 8년째 교육계에 종사하고 있다. 단순한 그의 이력만 보아도 그는 네델란드어, 영어, 러시아어, 한국어에 능통하다. 이것은 그가 교육에 대해서 평가하고 진단하는 것이 단편적이거나 자신의 교육이론이나 경험이 아니라 다른 여러나라에서 겪었던 교육경험과 이론이 입체적인 비교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전공을 보면 과학으로 학사를, 신학으로 석사를 그리고 문학으로 박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가 가르치는 분야는 인문학의 핵이라고 할수 있는 철학과 신학이다. 마틴 메이어의 경험과 그의 전공을 보면 이보다 더 완벽하게 교육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가 잘 갖추어져 있다. 많은 나라들을 다니면서 선진교육을 접하고 직접 그들을 가르쳐보고 또한 훌륭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마틴 메이어는 매우 큰 시야로 우리 교육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주고 깊은 인문학적 통찰로 우리 교육의 폐부를 날까롭게 해부해준다.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그의 교육관은 넓고 깊다. 먼저 우리나라 현재 공교육이 참된 교육과 거리가 먼것을 지적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교육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위한 공부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전인도 없고, 재미라는 것은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단순한 입시를 위한 지식교육을 버리고 육체와 감성, 이성, 의지를 모두 표용하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참된 교육의 실현을 위해서 먼저 그는 한국교육의 문제점들을 분석한다. 부모와 자식간, 그리고 교사와 학생들간의 지나친 연대와 권위가 교육의 상승효과를 가지고 올수도 있지만 오히려 참된 교육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부모의 자녀에 대한 집착, 한국대학입시제도의 허점, 대학만 들어가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잘못된 교육제도등을 가장 중요한 한국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그리고 진정한 교육을 위해서 지식중심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깨울것을 강조한다. 학생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며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시민으로서 심성을 중심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재미를 느끼는 존재이므로 교육에 재미가 있어야 효과적은 학습을 기대할 수 있고 인성과 가치교육을 통해서 보편적 인재로 키워야 한다. 특히 교육전쟁에서 그동안 교육에서 소홀히 여겼던 건강한 신체교육을 강조한다. 그리고 휴식을 통한 스트레스 조절 능력을 키움으로서 전인적인 인간이 되도록 자극한다.

 

마틴 메이어는 굉장 정직하고 바르게 쓴소리를 뱉어낸다. 철학적이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방인이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쏟아내는 그의 질책들을 겸허히 받아들일때 진정한 교육을 위한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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