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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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책을 덮어버리거나 아예 책을 버리기 까지 했던 적도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겨우 이거 이야기 할려고 이렇게 많은 분량을 쓴거야?'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어쩌면 아직까지 소설의 맛(?)을 보지 못했던지, 아니면 오래동안 머리의 힘을 잔뜩 주고 보아야 할 논문과 같은 딱딱한 글을 보는데 익숙해져서 한문장에 정확히 전달해야 할 내용이 보이지 않으면 힘들어지기 까지하는 편식적 글읽기의 뇌로 학습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소설을 선택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돈을 지불하고 사야될 책인지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보야 할 책인지를 선택한다. 선택하는 기준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소위 말하는 칙릿 소설이라든지 트렌드 소설은 거의 사지 않는 편이다. 한번 읽고나면 그냥 한바탕 수다떠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서면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영양가 없는 대화와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설에 대해서는 편애하였던 나의 책읽기 성향에도 불구하고 나의 선택을 받은 소설이 있었는데 그 소설이 바로 이 책도둑이였다. 

 

시립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았을때 먼저는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책도둑이라는 특이한 소설제목과 책을 펼쳐 보았을때 새로운 소설 형식의 글쓰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와 문단의 평가가 괜찮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선택하게 된것은 역사적 배경이 유대인 학살사건, 즉 홀로코스트였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역사 분야가 바로 유대인에 관한 역사였기 때문에 그것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이야기가 무척 나의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처럼 전체적이 스토리 라인이 '책'에 대한 내용이였다. 유대역사와 책, 이 두가지로 인해 나는 거의 필연적으로 책도둑을 선택하고 샀다.

 

그러나.. 역시나..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였고 이 책에 대해서 매우 좋은 평가를 하였던 서평이나 추천사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격조 있고 철학적이며 감동적이다. 천천히 아껴가며 읽어야 하는, 아름답고 중요한 작품. 키커스 리뷰

절제의 승리...최근 오스트레일리아 문학 중 가장 독창적이고 주목할 만한 작품. 더 에이지

이 책은 완벽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목록에 <책도둑>도 추가되었다. 이 책을 사라. 이 책을 읽어라. 그리고 이 책의 가치만큼 이 책을 사랑하라. 너무 멋진 작품이다. 아마존 독자 리뷰

이 책이 보여주는 비극은 미치 생명의 빛깔이 사라진 흑백영화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찌른다. <책도둑>은 <안네의일기>나 엘리 위젤의 <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고전이 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USA 투데이

 

하나같이 대단한 작품이라고 추켜세운다. 내가 이책에 대한 위의 평가중에서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독창적 작품'이라는 평가이다. 책도둑은 형식에 있어서 독창적이다. 먼저 죽음의 신이 한 아이의 일생을 내려다 보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죽음의 신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전지적인 작가관점, 일인칭이 되었다가 다시 사라지고 작가가 갑자기 끼어들면서 작가관점으로 돌아온다. 죽음의 신이 이 소설의 가장 처음 부분에서 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나레이션을 해주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죽음의 신의 역할은 이야기가 계속될 수록 흐지부지해지고 만다. 이것은 작가 마크 주삭이 죽음의 신의 역할을 창조적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주인공 리젤의 심리적 변화나 배경적 상황의 변화를 말해줄 때 색깔이나 말의 구체적인 묘사로 표현된다. 예를 들면 죽음의 신이 말하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하루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만 색깔을 관찰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수많은 색조와 억양이 뒤섞이면서 매 순간이흘러가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단 한 시간에도 수천 가지 색깔이 있을 수 있다. 밀랍 같은 느낌이 나는 노란색, 구름이 뱉어낸 파란색, 뿌연 어둠.나 같은 일을 하다보면 숩관적으로 그런 색들이 눈여겨보게 된다.

 

죽음의 신이 보는 색깔은 이 소설 전체에 흐르는 배경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그리고 리젤의 눈으로 소설속의 화자들에게서 나오는 말들이 독특한 형식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색깔과 언어의 묘사는 이 소설의 형식에 새로움을 불어넣어주는 기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소설 기법들이 책도둑의 가장 독창적인 형식을 창조하기는 하나 소설의 이야기와 작가, 그리고 화자와 그 묘사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하나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따로노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형식은 나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았을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면서 긴장감을 주는 밀도있는 스토리텔링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번역자의 번역능력부족인 것 같아서 번역자를 확인해 보았더니 번역자는 정영목이였다. 정영목님은 이미 좋은 번역으로 검증받은 분이고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은 매우 재미있게 읽었고 번역의 냄새를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책도둑> 스토리텔링의 느슨함과 밀도감이 없는 것은 번역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소설형식 때문이였다.

 

그리고 독일 나치 치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책도둑의 이야기와 그다지 밀착되는 연관성이 적다. 그래서 이 책과 똑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나 엘리 위젤의 <밤>에 비견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불성설이다. <안네의 일기>나 <밤>은 역사적 배경이 소설의 이야기에 온전히 녹아 있어 그 소설에 무게감과 진중함을 실어주고 역사적 배경이 이야기에 밀착되어 있지만 이 <책도둑>에서는 같은 배경이 이야기와 연결고리가 상대적으로 적다.

 

쓰다보니 리뷰나 서평이 아닌 비평으로 흐른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잔득 기대하고 읽었던 책도둑이 나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준것 같아서 다음부터 소설을 읽을때 서평이나 리뷰를 믿지말고 스스로 읽고 확인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보는 느낌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감동받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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