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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창
켄 가이어 지음 / 두란노 / 2000년 6월
구판절판



광야에는 안전도 없고 체계도 없다. 강의 요강도 없고 노트 필기도 없고 교재도 없다. 처음에 나는 그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이며 과정을 마치기 전 치러야 할 수업료가 얼마나 될지 전혀 몰랐다.
나는 교사의 말에 불복했다. 때로 분노했고 때로 대들었다. 너무 어렵고 숙제가 많다며 불평했다. 과목을 도중에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딱 한 번만 개설되는 과목이었다.
나는 질문이 있어 손을 들었다. 줄기차게 손을 들었다. 그러나 교사는 질문에 답해 주기는 커녕 내 손을 봐 주지도 않았다. 적어도, 내 때에는. 내 기준으로 보기에는.
광야는 나의 논문이었다. 거기서 나는 하나님이 정말 어떤 분이신지 스스로 밝혀 내야 했다. 그것은 아주 독창적인 연구였다. 다른 자료에서 아무것도 인용할 수 없었다. 한 번에 뼈아픈 단어 하나, 한 번에 난해한 문단 하나,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렇게 써 나가야 했다. 논문이 통과될 때까지. 정해진 규격도 없었다. 여백도 없었고 행간도 들쭉날쭉한 데다 페이지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엉망이었다.
그러나 엉망인 것은 '나'였다.
바로 거기서 내 인생의 메세지가 나왔다. 적어도, 메세지의 첫머리가 나왔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의 삶- 다른 어느 누구의 삶도 아닌-을 통해 하나님이 진정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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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담 - 한권으로읽는
오세경 / 석일사 / 1998년 11월
품절


부산

부여의 백마강가에 부산이라고 하는 산이 있으니, 이산은 꼭 물 위에 뜬 것 같이 보이는데, 이 산은 원래 충청도 청주에 있던 산으로 옛날 비가 많이 와서 큰 홍수 때문에 떠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비가 그치자 청주 고을에서는 떠내려간 산이 부여 백마강가에 있는 것을 보고,
"이 산은 우리 고을의 산이다."
하고는 해마다 세금을 받아 갔었다 한다.
그런데 어느 해 부여에 새로 부임해 온 원님이 이 이야기를 듣고서 청주 고을 원에게,
올부터는 세금도 바치지 않겠거니와 이 산이 당신네 고을 산이면 하루 빨리 가져 가기 바라며, 우리 고을에서는 산이 소용없습니다."
라고 통지를 보내었더니 그 뒤로는 결코 세금을 보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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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시 - 증보
김희보 엮음 / 가람기획 / 2001년 12월
절판



내 생각을 노래함

밤 깊었으나 잠 이룰 수 없어
일어나 자리에 앉아 거문고를 켜본다.
엷은 휘장으로 밝은 달빛 비쳐들고
시원한 바람 불어 옷깃을 스친다.
바깥 들에는 외로운 큰 기러기 울고 있고
북쪽 숲속에는 기러기떼들 떠들썩하게 운다
밖에 나가 어정거리지만 볼 것이 무엇이리
근심스런 생각에 잠겨 홀로 슬퍼진다.

-52쪽


유주대에 올라서

훨씬 전에 태어난 옛사람을 만날 수는 없고
훨씬 뒤에 태어날 뒷사람도 만날 수가 없다
오직 천하만이 언제나 변함없이 이어지는 것을 생각하니,
사람의 일생이 짧다는 것을 알아 눈물이 흐른다.

-84쪽

산장의 가을날 저녁

가을 쓸쓸한 산에 비 내리고 개어
갠 날씨 저녁 무렵에 더욱 맑아 가을답다.
소나무 잎 사이로 비치는 맑은 달빛,
돌 위를 흘러가는 매맑은 샘물.
대나무 숲 너머 빨래하던 여인 왁자지껄 돌아오고
샛강 연꽃 움직이며 고깃배 강 따라 내려간다.
봄날의 꽃이여 멋대로 흩어지려무나
왕손은 그와 상관없이 여기에 머물리라.
-113쪽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

해는 향로봉 비추어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저 멀리 폭포는 긴 강을 걸어놓은 듯 쏟아진다
그 물줄기 곧추 3천 자 밑으로 흘러 떨어지노니
흡사 은하가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듯하다.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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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꼭 알아야 할 아이들 속마음 21가지
우르줄라 노이만 지음, 김태영 옮김 / 삼진기획 / 2003년 10월
품절


* 부모님이 내 실수에 너무 민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작 나 자신은 무슨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는걸요.

아이가 실수를 했다고 부모가 생각하는 것은 아이가 실수를 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수정이 아니라, 부모가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알려주면서 자신의 행동을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손과 발로 주위 사물을 시험하고, 시행착오에서 배운다. 아이가 이렇게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을 옳고 그른 잣대로 판단하면 아이의 즉흥성과 자신의 잠재력을 펼쳐 보일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아이의 자아 계발의 여지는 더욱 좁아진다.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는 데 위험의 소지가 있는 사물을 없애는 것은 아이가 아닌 부모의 책임이라는 당연한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159쪽

아이들에게 단어를 많이 가르쳐 주는 것과 실제로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항상 별개의 문제다. 과식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이성적인 사고 방식의 능력을 키워주려는 심각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이성적 사고방식 교육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의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잠재력이 차단되어 버리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주관적인 해석 능력을 가졌으며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이들의 경우
어른들의 이성적인 설명으로 인해 감성적인 성장이 늦어질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환상적인 세계관을 어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기 원한다. 자신과 주위 세계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다섯 살이 되면 아이들의 환상으로 가득한 세계관은 차츰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이 모든 사물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89쪽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해요.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야단칠 때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넌 대체 왜 그러니...?’
‘왜 이해를 못하니?’
‘다 컸는데 그 정도는 알아들어야지.’
사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그나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직접 말을 한다기보다는 아이들을 앞에 놓고 허공에 대고 얘기할 때가 더 많다.
여섯 살짜리 꼬마가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은 다른 언어로 말해요."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길 좋아하는 어느 아버지의 어린 아들은 그림을 그려보라는 나의 요청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추상적으로 그릴까요?"
그래서 나는 되물었다.
"어떻게 하면 추상적으로 그리는 거니?"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그림을 그려요."
눈에 보이는 물적인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지적인 세계를 접하게 되면 건강한 정신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은 사물에 대해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또한 어른들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아주 분명하게 ‘예’ ‘아니오’를 들어야 한다. 아이에게 무리하게 너무 일찍 언어를 배워주려고 하면 그만 아이는 언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린다.
부모의 시각에서 세 살짜리 아이가 멍청하게 보이는 이유는 어른들이 어려운 말로 설명을 해서 아이가 감정적으로 모든 신경을 꺼 버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실제로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언어로 어른들은 너무 오랫동안 너무 자주 말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부모님이 하는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이런 속뜻을 담고 있다.
"나의 흥미를 끌려면 제발 다르게 말씀하세요."
아이들로선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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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루비박스 / 2005년 8월
구판절판


글은 하루아침에 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읽기만 하면 안되고 나중에 글감으로 사용할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읽는다. 출력을 의식하면서 읽으면 수준 높은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61쪽

글을 쓰는 것은 에너지를 배출한다기 보다는 모으는 쪽에 가깝다. 즉 생각을 모아서 자신 안의 내공을 높이는 행위이다. 혼자 조용히 앉아 오랫동안 일기를 쓰고 있으면 자신의 내공이 매우 높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내부에 있는 욕망의 압력이 충만해진다고 표현할 수 있다. 힘들지만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에 파고들어 내공을 높이자. 그런 다음 그것을 글쓰는 것으로 연결시켜 나가자.
원래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은 매우 힘겨운 작업이다.-149쪽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쓰는 일기는 남들이 읽고 이해해주지 않는다. 게다가 돈벌이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확인시켜주지 않고, 그 누구도 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때, 결국은 자기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 그럴 때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힘차게 응원하자.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확이하고 더욱 인정하는 힘이 끌어 오를 것이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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