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일을 할 줄 아는 마음>


요즘 아이들 '놀 줄' 모른다. '일'이란 건 더더욱 모른다.

이오덕 선생님은 일과 놀이가 따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일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놀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처음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었을 때는 그냥 흘려들었었다.

사실은 나도 일하며 큰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도 조금 놀 줄은 알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땅따먹기도 가르쳐주고,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는 것을 몇 가지 가르쳐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무척 놀라고 신기해한다.

처음엔 그 모습에 내가 더 놀라고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얘네들은 무슨 낙으로 사나?' 하고...


아래 글은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의 데이비드 오어의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 내가 아는 한 애미쉬 친구는 자기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번창하는 농촌공동체에 필요한 많은 기술과 솜씨를 가지고 있는 드문 사람 가

운데 한 분이셨습니다. 도리깨꾼, 톱질하는 사람, 과수 농사꾼, 목수이기도 했고, 스스로 기

계를 수리했습니다. 한동안은 대장장이 일도 하셨고, 연광공 노릇도 하셨지요. 언젠가는 과

수원 분문기로 우리 젖소 외양간에 흰칠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잘 할 줄 아는 마음은 전문가에게 결핍된 복합성과 기민성, 탄력성을 갖

추고 있다. 이것은 하룻동안에 한 가지 재료에서 다른 재료로, 한 연장에서 다른 연장으로,

기계공학에서 생물학으로 또 동물돌보기로 옮겨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마음이다.

설계하고, 세우고, 고치고, 키우고, 치유하고, 만들고, 땜질하고 종합하고,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고, 이웃과 재미있게 이야기를 할 줄 아는 마음--폭과 깊이를 지닌 마음이다.>>


요즘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놀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컴퓨터 게임을 보면 화려하고 흥미진진하고 스릴이 넘친다.

정보도 많고 때에 맞춰 적절한 효과음까지 나온다.

하지만 모두가 ‘되어져’ 있는 것들이다.

기껏해야 그 위에 덧칠을 하거나 아니면 파괴하는 재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즐거움을 맛보기는 쉽지 않다. 설계하고, 세우고, 고치고, 키우고, 치유하고, 만들고, 땜질고, 종합하고,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것은 책상 앞에서 혹은 컴퓨터 앞에서 배우기 쉽지 않다.


데이비드 오어는 '기술'이 사라져 가는 것을 '상실'이라고 표현했다.

헬레나 노르베리는 [라다크 아이들의 어제와 오늘]에서

'아이들은 자기들의 자원을 사용할 줄 모르고, 자기 세계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학교를 마친다' 하고 했다.

또 한 가지,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줄 아는 것을 '마음'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공부 외에는 머리에 지식을 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아니라 다

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협동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

고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옛날 아이들의 선물은(그렇게 오랜 얘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필통이나 값비싼 인형이 아니라, 깎아 만든 새총이나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 키우던 병아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요즘 아이들은 그런 선물을 부끄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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