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이 내 실수에 너무 민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작 나 자신은 무슨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는걸요.
아이가 실수를 했다고 부모가 생각하는 것은 아이가 실수를 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수정이 아니라, 부모가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알려주면서 자신의 행동을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손과 발로 주위 사물을 시험하고, 시행착오에서 배운다. 아이가 이렇게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을 옳고 그른 잣대로 판단하면 아이의 즉흥성과 자신의 잠재력을 펼쳐 보일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아이의 자아 계발의 여지는 더욱 좁아진다.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는 데 위험의 소지가 있는 사물을 없애는 것은 아이가 아닌 부모의 책임이라는 당연한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159쪽
아이들에게 단어를 많이 가르쳐 주는 것과 실제로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항상 별개의 문제다. 과식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이성적인 사고 방식의 능력을 키워주려는 심각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이성적 사고방식 교육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의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잠재력이 차단되어 버리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주관적인 해석 능력을 가졌으며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이들의 경우
어른들의 이성적인 설명으로 인해 감성적인 성장이 늦어질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환상적인 세계관을 어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기 원한다. 자신과 주위 세계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다섯 살이 되면 아이들의 환상으로 가득한 세계관은 차츰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이 모든 사물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89쪽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해요.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야단칠 때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넌 대체 왜 그러니...?’
‘왜 이해를 못하니?’
‘다 컸는데 그 정도는 알아들어야지.’
사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그나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직접 말을 한다기보다는 아이들을 앞에 놓고 허공에 대고 얘기할 때가 더 많다.
여섯 살짜리 꼬마가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은 다른 언어로 말해요."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길 좋아하는 어느 아버지의 어린 아들은 그림을 그려보라는 나의 요청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추상적으로 그릴까요?"
그래서 나는 되물었다.
"어떻게 하면 추상적으로 그리는 거니?"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그림을 그려요."
눈에 보이는 물적인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지적인 세계를 접하게 되면 건강한 정신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은 사물에 대해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또한 어른들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아주 분명하게 ‘예’ ‘아니오’를 들어야 한다. 아이에게 무리하게 너무 일찍 언어를 배워주려고 하면 그만 아이는 언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린다.
부모의 시각에서 세 살짜리 아이가 멍청하게 보이는 이유는 어른들이 어려운 말로 설명을 해서 아이가 감정적으로 모든 신경을 꺼 버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실제로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언어로 어른들은 너무 오랫동안 너무 자주 말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부모님이 하는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이런 속뜻을 담고 있다.
"나의 흥미를 끌려면 제발 다르게 말씀하세요."
아이들로선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