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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유홍준 지음 / 창비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도권 교육이 부여하는 편협한 역사의식의 세례는 긴 시간이 흐른 이후에도 여전한 관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우리나라 국토는 마치 토끼모양을 하고 있다'는 일제 식민사관과 단군의 창건이래로 계속되어온 중국에 대한 문화적 사대주의의 고수라는 삐뚤어진 역사의식에 길들어져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문화유산에 대한 고정관념, 즉 박물관 또는 찾기도 힘든 깊은 산골짜기에서만 우리의 문화유적을 확인할 뿐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극복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홍준 교수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우리의 편폅한 역사유물관에 쐐기를 박으며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쉬는 선조의 문화유산을 온몸으로 체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가 이미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나라 문화유산은 한반도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국토박물관에서 발견할 수 있다라는 사실이 영국의'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르브르박물관'과 정확히 비교되는 차이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한 문화유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새로운 정의는우리 고유의 문화 전통성이 후세의 자부심에 대한 매개체로 남는 것을 거부하도록 이끌어 준다.
이책의 전반에 걸쳐서 유홍준 교수가 주지시키려 했던 주제는 선현의 말씀을 통해서비유한 '아는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본다'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다. 이말은 단지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해주는 안목 갖지 못한다면 우리의 태만함이 종국에 가서는 후대에게 냉혹하게 평가받아야 할 비판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문화재는 그 시대의 사상적 토대가 문화적 양식에 오랜시간동안 녹아있는 수수께끼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단지 유아적 시각으로만 머무르고 있을 때는 결코 보이지 않던 조상의 빛난 시대정신을 깊이 있게 직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려는 그의 교훈이 갖는 의미를 퇴색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이와같은 책을 통해서 독자로 하여금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의식을고취시킬려는 의지는 80년대로 대표되는 치열한 갈등과 대집의 장에서 자주적 투쟁을통해 사회변혁을 이뤄내려 했던 초발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글은 형식이나 내용 모든 면에서 걸쳐서 철저하게 리얼리즘 양식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미술평론에 있어서도 조형전통상의 원리를 현대화된 보편적 조형언어로 표현하려는 그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할 수 있다.
이책을 읽으면 우리 국토는 거대한 박물관 유물창고와 같으며,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문화유산을 말하면서 결코 흘러간 역사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고 수천년 역사의 숨결을 느낄수 있도록 역사학, 고고학, 민속학, 미술사 등 어느 한 분야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문화유산의 진실한 대맥을 잡아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 우리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몇 세기 후, 과연 우리 후손들은 얼마만큼의 국토박물관을 갖고 있을까?'라는 질물의 해답은 철저히 우리의 몫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