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났다, 그림책 책고래숲 3
김서정 지음 / 책고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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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무렵 우연하게 내 손에 닿은 그림책 한 권이 나를 그림책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였다. 그 인연은 나의 두 소녀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수업을 진행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그림책 평론집 한권에 마음이 뺏겨 아끼며 되새김질하느라 읽어내느라 며칠이 걸렸는지 모른다. 할머니가 오랜만에 만날 손주 주려고 꽁꽁 감춰둔 눈깔사탕을 하나씩 꺼내 입 안에 단맛을 느끼게 해 주듯, 그림책 한 권씩을 서가에서 빼서 읽듯 한 꼭지씩 꺼내 읽으며 서서히 녹여내는 중이다.

『잘 만났다, 그림책

김서정 글

책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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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간다, 그림책」에 이어 『잘 만났다,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은 김서정님은, 동화작가이자 평론가, 번역가이시다. 책을 쓰고, 번역하며, 학생들과 꾸준히 동화와 그림책 수업을 하면서 책과의 꾸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작가들이 쓰고 그린 그림책이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뿌듯함을 담은 이야기가「잘 나간다, 그림책」이라면 『잘 만났다, 그림책』은, 다양한 영역의 그림책을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담고, 그림책 한권 한권마다 그림과 색채, 내용과 메시지에 대해 진솔하게 기록하였다. 독자에게 읽을 가치뿐만 아니라, 어떻게 읽으면 좋을 지를 가이드해 주는,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 주는 그림책 평론집이다.

『잘 만났다, 그림책』은,

Ⅰ어른들이 더 뭉클할 것 같아요

Ⅱ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아요

Ⅲ 함께 배울 게 있는 것 같아요

세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그 속에서 또 다시 주제별로 분류하여

세심하고도 섬세한 정성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글밥이 적다고 그 속내도 얕다고 여겨

가볍게 읽을 책이라고 단정짓고

빨리 읽어내기 위해 그림책을 손에 드는 순간,

꽤나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닫는 데까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뭔가가 막아서면 싸우지 않고 피해가면서 낮은 곳도 더러운 곳도 마다않는 물을 닮아야 하고, 나 자신으로 나를 꽉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빈 그릇처럼 내 안을 비워 사랑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잘 만났다, 그림책』 노자 할아버지 같이 놀아요! 평론 중에서

그림책은 다양한 영역을 두루 갖추고

다양한 주인공들로 가득 채워

현실과 이상 세계를 넘나들며

독자의 마음을 흔들기고 뭉클하게 만들기도 한다.

평범한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를 표현하는가 하면,

한번도 만나지 못한 인물을 앞세워

우리가 잊고 지낸 감정들을 들춰내주기도 하고,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통해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독자의 마음을 흔들다가 내려놓고

살랑거리는 바람을 불어넣었다가

곧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을 띄우기도 하는,

그림책은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서로 다른 매력을 품어내는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최고의 도구이다.







『잘 만났다, 그림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책부터

몰라봤던 숨은 보석같은 그림책까지

다양한 그림책들이 담겨 있어

그림책 한권 한권을 만날 때마다

반가움을 넘어 감동이라는 감정이 찾아든다.


나오니까 좋은 건, 그냥 나와서 좋은 게 아니라 이렇게 높고 깊고 험난한 길과 쓰고 매운 과정을 거친 뒤 거둔 열매이기 때문에 좋은 거다. 부드러우면서 익살맞고, 밝으면서 따뜻한 글과 그림이 이런 생각을 자연스레 길어 올려준다.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게 한다.

『잘 만났다, 그림책』 나오니까 좋다 평론 중에서


책이란 것은,

나이에 따라 나의 감정선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감정의 폭이 매우 다르다.


글보다는 그림으로 풀어내는 그림책은,

그 간격은 더 크게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럴 때 『잘 만났다, 그림책』 이

길잡이가 되어 새로운 길을 보게 하고

그림속에 담겨진 메시지를 전달해 주며

우리의 내면을 쓰다듬어줄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좌절은 '우당탕'의 유쾌한 유희적 그림이 달래주지 않을까. 위기와 해결이 반복되는 '섬'에서 는 인생을 길게 보고 끈질기게 살라는 권유도 읽힌다. 작은 이야기안의 풍성한 메시지, 흥겨운 그림 속의 엄숙한 인생. 이것이 그림책의 매력이고 힘일 것이다.

『잘 만났다, 그림책』 매트에 앉은 고양이 평론 중에서



『잘 만났다, 그림책』을 통해

가볍게 읽었던 그림책 장면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고

잊고 지냈던 참 좋은 책을 다시 한 번 들춰보았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메시지를 다시 전달받으며

새로운 감정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혼자 읽으며 즐거웠던 그림책을

함께 나눠읽으면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준

『잘 만났다, 그림책』

정말 잘 만났다.


그림책은 누구든 무엇이든 쓰고 그리고 읽으며

감동받을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해 주는 책이다.

『잘 만났다, 그림책』 쑥갓 꽃을 그렸어 평론 중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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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방구석, 엄마의 새벽4시 - 나는 오늘도 책상으로 출근한다
지에스더 지음 / 책장속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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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신을 깨우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은가? 질문에 대한 해결책은 당신 안에 있다. 오늘 나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들어보자. 거기에서부터 진짜 나를 알아갈 수있다. 질문은 잠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내 손으로 하나씩 열어보는 건 어떨까?

『남다른 방구석, 엄마의 새벽 4시』 130쪽

어떤 습관을 만들 때는 내가 하는 행동 하나에만 집중하고 한 번에 하나만 한다. '멀티태스킹'이 아닌 '모노태스킹'이다. 작은 것 하나부터 제대로 하는 것, 처음 만드는 습관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 이것이 쌓일 때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번에 하나씩 집중하기! 미라클 타임을 하는 동안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남다른 방구석, 엄마의 새벽 4시』 190~191쪽



1.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2. 나는 어떤 것을 하면 즐거운가? 행복한가?

3. 내가 자꾸만 미루고 있는 행동이 무엇인가?

『남다른 방구석, 엄마의 새벽 4시』 260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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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모우 미운오리 그림동화 1
나피 지음, 송지현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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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린 눈으로 우린 여전히 눈을 그리워하는 겨울을 맞이하고 있어요. 코로나 19 시대로 다양한 겨울 축제는 즐길 수 있지만, 겨울을 담은 그림책 한 권이 있다면, 아쉬운 겨울도 따듯하게 느껴질 거예요.


『 숲 속의 모우

나피 Naffy 글, 그림 / 송지현 옮김

미운오리새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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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가득 메운 눈 밭 사이로 마주선 나무 두 그루가 마치 터널을 만들어주듯 서로를 안고 있어요. 그 사이로 한 소녀와 이름모를 동물 하나가 마주보고 있네요. 그들 뒤로 이어진 나무 터널은,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문과 같은 신비로움과 그들을 감싸고 있는 아늑함이 소복히 쌓인 눈과 함께 따듯하게 전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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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어느 겨울 날, 병든 할아버지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지내는 소녀 토토의 집에 낯선 친구가 문을 두드려요. 하얀 눈길을 헤치고 찾아온 낯선 친구가 토토도 어색한가 봐요. 그 둘의 어색함은 마주선 거리에서 느낄 수 있고, 열린 문과 낯선 친구 사이에 끼여 있는 투명 종이가 또 한번 말해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독자에게 낯선 친구를 살짝 가려주는 역할도 대신해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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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는 기운이 없는 할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추위에 떨었을 낯선 친구 '모우'도 보살펴요. 낯가림을 하는 모우가 곁을 주지 않지만, 토토는 기다려 주지요. 토토가 끓인 따듯한 스프로 배를 채운 모우는 깊이 잠이 들고 숲 속의 집도 고요하게 잠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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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난 토토는 숲을 향해 걸어가는 모우의 뒷모습을 보고 서둘러 숲으로 향해요. 모우의 모습을 그리며 모우를 따라가던 토토는 숲 속 깊이 들어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거든요.


그 때 토토와 모우 주변으로 처음 보는 괴물들이 모여 들어요. 소리치려는 순간, 하늘에서 커다란 소리와 함께 별들이 떨어지고 괴물들은 별들을 향해 걷기 시작해요.


토토가 놀란 눈을 떴을 때는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돌이 여기저기 굴러 다니고 토토는 별의 모습을 그려 괴물에게 보여주어요. 괴물은 토토의 그림을 들여다보며 떨어진 별을 가리키지요. 토토가 그린 그림이 별이냐고 묻는 것 같아요.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서로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게 해 주는, 마치 꿈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난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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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우주가 되었잖아.



눈폭탄처럼 떨어진 별들은 이 땅으로 내려와 눈과 함께 구르면서 빛을 가득 품은 우주 같아요. 숲을 환하게 비춰주는 별빛은 우주의 신비로움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그 주변에 있는 괴물과 토토 그리고 모우까지 푸른 빛으로 물들어 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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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별들을 담아 스프를 끓여 토토에게 한 그릇 나눠 주어요. 추운 겨울 마시는 따듯한 수프 한 그릇은 추위에 언 몸을 녹여주기에 충분하지요. 괴물의 마음과 별빛이 담은 수프는, 아픈 토토의 다리를 싹 낫게 해 주어요. 토토는 그 순간 침대에 누워만 있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수프를 담아 집을 향해 서둘러 길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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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다리를 낫게 해 준 수프의 힘을 알았기에 너무 서둘렀을까요?

숲길이 미끄러웠을까요?

토토는 그만 수프를 쏟고 말아요. 얼마나 속상할까요? 


아버지를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이었는데, 자신의 실수 때문에 기회를 놓친 것 같은, 토토는 할아버지의 침대에 매달려 소리내어 울고 말아요.


토토의 울음 소리는 숲 속을 울리고, 괴물들의 마음을 울렸나봐요. 토토의 눈물이 마르기 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요. 낯선 친구가 처음으로 문을 두드린 그 날처럼 말이에요.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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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깜짝 놀라는 소리 - 개정판
신형건 지음, 강나래 외 그림 / 끝없는이야기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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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꽤나 오랜 시간 거리를 두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시집 한 권으로 피식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보면 여전히 우리의 시는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어린 아이의 감성을 그대로 안은 채 글로 풀어내는 신형건 작가의 눈높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아! 깜짝 놀라는 소리

신형건 동시 / 강나래, 김지현 그림

끝없는 이야기 』







아이들의 웃음코드를 정확히 짚어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별스런 말도 행동도 아닌 쉬이 지나가리라 생각한 부분에서 갑자기 팡! 하고

팝콘이 터지듯 웃음주머니가 열리면,

그 웃음은 교실을 한 바퀴 돌고도 쉬이 잠들지 않는다.

아이들의 웃음을 따라 웃다 보면,

시작은 생각나지 않지만,

속까지 뚫을 정도의 시원함을 만끽하게 된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빛일까?

바람따라 뒹구는 낙엽만 봐도 재미나고,

자동차 경적 소리만 들어도 웃음이 터지고,

처음 만나는 모습에 놀라 절로 박수를 보내는

세상에 놀랄 일이 가득한 그들의 세상은

매일이 불꽃의 수가 놓아진 밤하늘같다.


호로롱 / 호르 / 르 / 르 / 르

물방울처럼 굴러 내리는 / 새소리

-깨질라!

땅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 얼른 두 귀 모아

받았다.

『아! 깜짝 놀라는 소리 』 새소리


봄바람의 주머니는 / 참 작구나.

방금 / 내 코끝에 뿌려 준 / 라일락 향기 한 움큼을

겨우 담을 / 만큼

고만큼.

『아! 깜짝 놀라는 소리 』 고만큼



가만히 읽기만 해도 봄이 느껴지고,

가만히 읽기만 해도 내 앞에 고운 손 두 개가 놓여진 것만 같다.

가만히 가만히 고운 손 두 개를 마주잡아 주고 싶다.



어른들은 과대 포장을 참 좋아한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보여주면 될 것을

예쁘고 그럴싸한 포장에 감추고 보여준다.

포장 속에 감춰진, 아이들은 이미 다 보았는데.

어른들 마음 살피느라 꾹 참아주는 아이들의 눈이 고맙고

그 마음에 참 미안하다.

한번쯤은 참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아! 깜짝 놀라는 소리』는,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자연의 모습과 일상 생활부터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바라본 어른의 시선까지

다양한 상황들을 시어로 표현하여 담은 시집이다.


아이의 해맑음이 느껴져 피식 웃음이 터지는가 하면

아이의 꾸짖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피겨 여왕 김연아의 모습이 담긴 시를 볼 때는 설렘이 찾아오고

위안부 소녀상의 일기를 읽을 때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시는 노래한다

우리의 마음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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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김욱 옮김 / 청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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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홀한 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글

청미 』

 

'고령 인구' 증가에 대한 보고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생산 가능 인구보다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 고령 인구가 늘어날 거라는 추측은

점점 현실화가 되고 있으며

이것은, 인구 비율의 균형이 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 발전과 더불어 생명의 연장은 자연스러운 변화라지만,

생명 연장과 더불어 경제적 활동과 건강이 직결되지 않기에

가족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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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동안 내 손에서 떠나지 않은 『황홀한 사람』은,

한 가족에게 갑자기 일어난 임종 소식과 치매 판정으로

'나이듦'이 주는 현실과 그 뒤를 따르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본다.

 

 

부모가 한창 나이 때, 우리는 성장하느라 바쁘고

부모가 나이들면, 우리는 가정을 가꾸고 커리어를 쌓느라 바쁘고

부모가 자식을 필요로 할 때,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는다.

 

 

『황홀한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곁을 떠난 시어머니와 부인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망령 난 시아버지를 보살피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열을 내도 아버지가 어디 쳐다보기나 하셔? 망령 났다는 건 이제 다 끝났다는 뜻이라고. 어디 망령 들 사람이 없어서 왜 하필 아버지야? 내 친아버지니까 더 견딜 수가 없어. 당신처럼 앞으로의 일을 설계할 기분이 아니라고."

. 중략.

"지금 내가 화내는 게 문제야? 아버지가 저렇게 되셨으니 이 집안이 뭐가 되겠어. 아버지만 보면 나도 늙어서 아버지처럼 될까 봐 얼마나 겁나는지 알기나 해?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내 머리까지 잘못되는 것 같단 말이야. 진짜가 하루도 더는 못 참겠어.

- 이북 29%

 


까칠하기로 소문난 시아버지 시게조의 망령은, 평온했던 한 가정을 흔들리게 하고, 아들인 남편이란 작자는 딴집의 일처럼 지켜보기만 할 뿐이고, 시아버지의 식사부터 배변, 목욕과 잠자리까지, 결혼해서 단 한번도 이쁨받지 못한 며느리 아키코의 몫으로 돌아온다.

 

늙어간다는 것이 무섭다는 남편의 말은,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피하고만 싶은 나약함과 가부장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 입시를 앞둔 아키코의 아들이자 시게조의 손자 사토시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라면을 끓여 먹고, 할아버지를 찾아 거리를 헤매기도 하며, 아기로 돌아간 할아버지를 위해 딸랑이를 사오는, 참으로 마음 깊은 손자이자 형이다.

 


"정년퇴직하자마자 죽어버리는 게 최고야. 노인클럽에서 삿갓춤이나 보면서 지낼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해. 전쟁터에서 돌아올 때가 생각나는군."

"어땠는데요?"

"그땐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지. 멋지게 한번 살아보자고 다짐했었어. 근데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처럼 되기 전에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만 들어.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사람이 죽지 않고 나이만 먹는 세상을 상상하면 너무 무서워.

- 이북36%

 


부모가 나이들고 늙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자식은, 애잔한다. 뭐든 잘 할 것 같던 부모는 모든 것이 어설프고, 한 번 말한 것을 잊기 일쑤에다 했던 말을 또 하면서도 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 모습이 답답하기 보다는 안쓰럽다.

 

세월이란 녀석이 왜 그리도 빨리 흐르는지 야속하다. 자식은 열심히 성장해서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키워내 이제서야 부모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부모는 그 짧은 시간조차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모는 아무 잘못이 없다. 다 세월이란 녀석때문이다.

 

상당히 되돌아가신 것 같군요.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노화의 극한에서 인생은 되돌아가는 것인가. 그것을 되돌아간다고 하는 것이었던가.

되돌아가는 길, 아키코는 시게조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이미 화도 노여움도 사라져버렸다.

 

두 소녀가 잠시 비운 주말 오후에 만난 『황홀한 사람』

출판사 편집자의 소개도 독자 서평 읽지 않고,

출판사와 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하면서

제목이 왜? 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까칠하기만 했던 시아버지와 그 곁을 웃는 빛으로 내내 지켰던 시어머니,

어머니가 더 오래 살 거라는 자식들의 짐작은 곧 자식들의 바람이었을 뿐,

현실은 눈 오는 날 시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노인성 치매를 앓는 시아버지를 보살펴야 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가족의 이야기와 마주하면서

왜? 라는 의문은 더욱 깊어진다.

 


늙음은 그렇게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단 말인가? 시게조를 보고 있으면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게조 같은 노인이 되는 것도, 가도타니 할머니 같은 노인이 되는것도. 늙음은 죽음보다 잔혹하다.

- 이북 68%

 


'노인성 치매'

부모도 자식도 피하고 싶은 관문이다.

 

이 세상에 남긴 자신의 흔적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자신의 의지대로 행할 수 없다는 것

가족에게 상처가 되고, 가족 모두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것

그 동안 살아낸 강인함을 한 순간에 놓아버리는 것

 

열심히 달려온 인생의 막바지에서 힘없이 주저앉아버린,

우린 그 모습을 '실패'로 볼 수 없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준 과거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받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아주 잠깐 또는 아주 긴 시간을,

늙음이라는 이유를 핑계삼아서.

 


노인은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는다는 건가? 아키코는 야마기시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노인들이 여간해서는 잘 죽지 않는다는데 동감했다. 에미의 생각도 멋졌다. 시게조는 꿈을 끄듯 황홀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이것이 장수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극치인지도 모른다.

. 중략.

"여보시우 할아버지는 꿈꾸는 사람이야. 황홀한 인생을 살고 있어.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 나아."

- 이북91%

 


손자 사토시가 말한다.

"엄마, 좀 더 살아계셨어도 좋았을 텐데……."라고.

손자 사토시는 엄마에게 말하고 있지만,

할아버지가 물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말을 잊고, 아들을 알아보지 못해도, 기력이 예전만큼 하지 못해도,

기저귀를 차야만 했어도,

가족 모두 이젠 좀 익숙해져가는데,

보살핌을 좀 더 받았어도 되었을텐데 하고 말하는 것만 같다.

 

시게조는 행복이란 것을 느끼지 못했다.

위장 장애와 부실한 치아로 내내 불편했고,

예민한 탓에 아주 사소한 것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치매는,

까칠함도 위장 장애도 틀니의 불편함도 모두 잊게 만든다.

예뻐하지 못한 며느리 아키코의 손을 잡고 시장을 보고,

손자 사토시가 끓여진 라면을 배부르게 먹고,

새의 지저귐도, 계절에 맞게 핀 꽃의 화사함도 느끼는,

평생 웃어보지 못한 그가 말대신 미소로 대답을 하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다.

치매라는 핑계를 이유 삼아.

 


황홀한 사람. 그는 그렇게 가족의 품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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