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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달
이지은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19/pimg_7271371644575375.jpg)
밤이 되어도 곳곳에 세워진 가로등과 상가 불빛으로 하늘에 새겨진 이들의 존재를 잊기 마련인데, 요 며칠 낮 동안 파란 하늘을 보여주더니 밤하늘에 별들이 아주 선명하게 비춘다.
그와 더불어 구름이 많고 안개가 낀 날에도 그 사이로 모습을 보이는 달은 밤길을 향하는 많은 이들의 외로운 발걸음과 항상 함께 하기에 난 밤하늘 달 보는 걸 참 좋아한다.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달은 나에게 반가움과 감탄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존재이다.
한 주 동안 천천히 읽은 『울지 않는 달』은, 「팥빙수의 전설」 「이파라파 냐무냐무」 「친구의 전설」등으로 이미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 성인들에게 알려진 작가 이지은의 첫 소설이다.
'전설'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팥빙수와 완벽하게 연결고리를 만들어낸 것처럼 '달'과 관련된 우화가 만들어질 만큼 우리에게 따스함을 상징하는 존재와 '울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를 연결한 『울지 않는 달』이라는 제목이 궁금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지은 작가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던 거 같다.
오래전 하늘에서 달이 몇 해 간 사라졌던 그때 그 이야기로 『울지 않는 달』은 시작된다.
달은 인간의 그 어떤 내용의 기도도 들어 줄 능력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온 마음 다해 기도하는 인간의 연약함이 한심해 실망감이 커지면서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사람들은 달이 자신들을 보살핀다고 생각했다. 부모처럼 미소 짓고, 눈물짓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은 눈을 움직이지 못할 뿐이고 입꼬리를 내리지 못할 뿐이었다. 그리고 달은 울지 못했다. 그뿐이었다.
… 달은 표정을 바꿀 수만 있다면 인간을 무섭게 노려보고 싶었고 손이라도 있으면 귀를 떼어버리고 싶었다. 울 수 있다면 매일 울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나운 기도가 하늘을 덮고 귀를 때리는 듯한 공포가 묻힐 무렵 달은 영문도 모른 채 땅에 떨어지고 만다.
어디인지 모르는 달에게 어렴풋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우는 아기에게 무엇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울음소리를 찾아 서서히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의 몸이 좀 더 세게 떨렸다. 달이 아이 옆으로 자리를 옮겨 바람을 막아 줬다.
달이 나지막이 입을 뗐다.
"원래 삶은 완벽하지 않단다."
처음이었다. 달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그 순간 달의 배 속에 물컹한 것이 느껴졌다.
달은 늑대 한 마리가 멧돼지로부터 아기를 보호하는 모습을 본다. 늑대 카나가 스스로 아기의 보호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곁을 달도 묵묵히 함께 하게 된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카나가 아기가 아이가 되어 가는 모든 과정에 관여하며, 아이가 동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규율을 정하고 그에 맞춰 양육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달은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에 의아하면서도 그 둘의 모습에 점차 익숙해지고 그 모습이 눈에 박히고 그들이 전하는 온기에 새로운 감정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짐승과 인간이 언제까지 이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그 끝을 보고 싶었고, 꼭 보아야만 했다. 달은 처음으로 존재의 이유 같은 것이 생겼다.
아이의 양육자인 카나와 달은, 서로 다른 언어와 다른 생이 주어진 이들이지만 하나의 목표를 가진 이들답게 서로의 마음을 느끼게 되며, 무엇이 옳은지를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사이가 되어간다.
달은 카나가 아이를 보살피는 동안 땅에 있는 식물과 동물들을 관찰하고, 먹을 수 있는 식물과 그렇지 않은 식물들을 직접 먹어보면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가려내는 작업을 하며 다른 방식으로 아이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너의 용기로."
카나가 늑대의 인사를 전했다. 늑대들은 배려에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이 인사는 '너의 배려를 잊지 않겠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하늘 위에 있던 달은 사람들의 기도에 지쳐있었다. 그 어느 것도 들어줄 수 없는 자신에게 차고 넘치도록 들려오는 기도는 고통이었다. 여전히 달은 많은 것을 하지 못한다. 다만 눈을 감을 수 있고, 가느다랗고 힘이 없는 두 팔을 가졌을 뿐이지만 온 힘을 다해 카나와 함께 아이의 옷을 만들어 입히고, 수영을 가르치고, 숨바꼭질을 하며 아이의 삶은 외롭지 않게, 위험한 숲이지만 안전할 수 있게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맡긴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기와 아기를 보살피고자 보호자를 자처한 늑대 카나를 통해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역할과 사랑, 배려와 감사, 용기와 의지가 무엇인지를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달은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일까 궁금했다. 달에게 감정이란 늙지 않는 쥐의 나이를 알아내는 것만큼 어려운 숙제였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무지개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 순간이 정말로 아름다웠다고 확신했다.
서로가 다른 어휘와 다른 습성을 가진 셋이 숲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 하나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 있으며 따듯하고, 잔잔하면서 매 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그들이 나누는 삶의 여정을 감히 아름답고 숭고하다 말하고 싶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몰랐던 달이 카나와 아기와의 시간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그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서서히 알아간다.
아기를 양육하는 카나의 동반자, 위험한 숲에서 아기를 지키는 보호자로서의 의미가 다가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의 시간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그 과정은 함께의 의미와 그 속에 나란 존재가 함께 하고 있음을 자각함에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울지 않는, 울지 못하는 달이 땅으로 내려와 동물과 인간의 사랑을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하는 시간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지켜내고자 희생을 선택한 용기 그리고 서로를 향한 배려와 다름의 인정을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녹여낸 『울지 않는 달』이 길을 헤매고 있는 누군가에게 따스한 손이 되어 주었으면 참 좋겠다.
달은 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매일 벅찼다. 땅의 세계는 곳곳이 완전히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았고, 완벽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에게 치밀하게 엮여 있었다.
[ 출판사로부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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