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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평점 :
내가 참 좋아하는 지인을 통해 독립 서점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서점 죽순이를 자처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대형서점과는 다른 형태의 서점이 존재한다는 것에 신기했고, 어떤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서점의 문을 열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그 후로 독립 서점, 동네 책방을 살펴보면서 서점이라는 곳이 책을 구입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관계를 시작하는 장소이자 잠시 현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월의 시작과 함께 나의 마음에 따듯한 바람을 불어넣어 준 책,
마음에 온기로 가득 채워 준 책
바로
『책들의 부엌』이다.
'곧 이 공간이 책 냄새 가득한 공간으로 변신하겠지.'
북카페이자 북스테이를 결합한 "소양리 북스 키친" 오픈을 앞둔 유진은, 텅 빈 책장을 살펴보며 생각한다. 치열하게 살았던 도시 생활을 과감하게 접고 내려온 시골 마을 '소양리'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유진을 중심으로 그 곁에는 시우와 형준이 자리한다.
스타트업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유진은, 모든 것을 맡길 만큼 진심이었고 온 힘을 다해 격렬하고 치열하게 집중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유진은 알았다. 벅참도 후련함도 없는, 그냥 마음조차 담기지 않은 빈 상자와 같음을. 유진은 과감하게 멈춘다. 그리고 또 다른 방향으로 삶을 시작한다. 소양일 북스 키친을 열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책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을 떠올리면서.
나는,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을 읽으면서 많은 이들의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스톤하우스에서 꼬박 일주일을 보내는 꿈을 꾸었는데, 유진은 직접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서로 같은 책, 같은 문구를 읽으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었다는 것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 유진이 꿈을 이루었듯, 나도 곧 나의 삶에 잠시 쉼표를 새겨넣고 싶은 꿈을 이루리라 꿈꿔 본다.
가수라는 꿈을 이루고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된 다인은 스타인 자신과 진짜 자신의 모습이 다른 괴리감으로 불면증과 공황장애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너무나 지친 다인은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을 그리워하며 무작정 소양리 마을을 찾는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매화나무와 주춧돌, 할머니가 생전에 계셨던 집터에 세워진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은 다인은, 그 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할머니가 남겨준 온기로 편안한 숨을 쉬고, 깊은 잠으로 내일을 향해 걸을 힘을 얻는다.
반들반들하게 닳은 곳간채 창고의 주춧돌을 보고 있자니 다인은 왠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미소가 지어질 것도 같았다.
책들의 부엌. 29쪽
시우는 3년이라는 잠수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고, 사총사로 불린 친구들을 "소양리 북스 키친"에 초대한다. 현실의 삶에서 지쳐가던 사총사들은 20대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며 새로운 내일을 꿈꾼다. 그리고 함께 한 시간 속에 피어난 벚꽃과 자전거를 타고 달린 호수길, 초코과자 위에 올려진 빼빼로 초와 친구들의 목소리로 들은 생일 축하 노래 그것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친구 그리고 시간 속에 담긴 기억은 우리에게 따듯한 온기로 오래도록 새겨질 것이다.
"스무살 때 꿈꾸던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꿈이란 건 원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거라서 자신을 더 근사한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에너지라는 걸. 인생의 미로에 얽히고설킨 길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렸을 때, 가만히 속삭여 주는 목소리 같은 거였어. 꿈이란 게 그런 거였어."
책들의 부엌. 77~78쪽
소희는, 누구나가 부러워 할 만큼의 능력과 명예를 가진 변호사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항상 우위를 차지했던 그녀에게 삶은 이기는 것이었고, 빡빡한 일정 속에 자신을 혹사시키며 해 내는 것만이 전부였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암선고는 삶을 멈추게 하는 급제동이고, 진정으로 원한 삶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첫질문을 던지게 한다.
누구도 소희에게 '너는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묻지 않았다. 진교 1등에게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 때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보려는 사람은 없었다. 소희 스스로도 그런 걸 묻지 않아도 당장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주어진 경쟁에서 이기는 걸 목적으로 여기며 직진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건강검진 결과서가 인생에 급제동을 걸더니, 저를 빤히 바라보는 것 같더라고요. 나의 진짜 꿈이 뭐였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살았냐고 묻는 것 같았어요……."
"그랬군요…….”
유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소희와 눈을 맞췄다.
"어쩌면…다행인지도 몰라요.”
“어떤 게요?”
"인생에 급제동이 걸린 거요. 그냥 직진만 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니라 멈춰서서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된 거요.[중략] 그러니까…… 기회인지도 몰라요. 인생에 급제동이 걸린 게 아니라, 진짜 인생을 살아볼 기회를 선물받은 건지도 모르잖아요.”
책들의 부엌. 119~120쪽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까? 어떤 삶을 꿈꾸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몇번이나 던지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져온다. 자신에게 처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원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꿈을 꾸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었는지, 어떤 삶을 꿈꾸고 있었는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급제동이 없었던 삶을 살았던 네가 왜?라고 묻는다면,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 계획을 세우기엔 꽤 괜찮은 나이인 것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라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다.
어머니의 죽음은 막다른 골목길을 집어 던진 것만큼 처절하고, 자신과 공존했던 평온과 행복이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만 같은 무기력감에 빠진 수혁은 계획에 없던 "소양리 북스 키친"의 손님이 된다.
'누구에게나 숨을 수 있는 동굴이 필요한 때'라고 수혁의 상태를 표현한 유진의 눈은, 상대의 내면을 꿰뚫어볼 만큼 깊이 있다. 상대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유진은, 손님들을 위한 북카페를 운영하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톤하우스와 같은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꾼 그녀, 무척 마땅한 꿈을 꾼 것 같기만 하다.
책마다 감도는 문장의 맛이 있고 그 맛 또한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생각났다. 각각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듯 책을 추천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 되듯 책을 읽으며 마음을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북스 키친'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책들의 부엌. 12~13쪽
유진이 3년동안 방치된 집터에 세운 '소양리 북스 키친'의 이야기 『책들의 부엌』은,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책과 음악, 음식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에 온기를 담아내고 있다. 치열한 삶 속에서 잠깐이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공간이 있다는 것, 마음에 위안이 되는 책이 있다는 것, 눈물 한 줄기 흘리게 만드는 음악이 있다는 것, 그리고 곁에 함께 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것, 이것이면 우린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힐링'이고 '위안'이며 '재충전'인 것이다.
『책들의 부엌』에는, 유진에게 새로운 꿈을 안겨준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 사회생활로 지친 시우의 친구 나윤이에게 추억 한 자락을 안기며 나에게 쓰는 편지를 쓰게 한 오가오 이토의 ≪츠바키 무구점≫, 인생에 급제동을 걸린 소희에게 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소꿉친구 마리에게 전하고픈 지훈의 마음이 담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인물과 상황,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마치 내가 '소양리 북스 키친'을 방문한 손님 같다. 그리고 북스 키친에 흐르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 잔하는 잔잔함을 덤으로 선물받은 것만 같다.
봄여름가을겨울, 손님을 맞이하는 북스 키친의 스테프와 북스 키친에서의 시간을 추억으로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의 부엌』은, 삶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낸 이들이 잠시 머물며 마음에게 쉬는 시간을안기는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책들의 부엌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나의 마음에도 잠시 쉬는 시간을 선물할 수 있어 참 좋았다. 마음에 따듯한 공기를 불어넣어주는 책이 다정하게 다가와 가슴 한 켠에 자리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인 견해를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