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머 에프 그래픽 컬렉션
마이크 큐라토 지음, 조고은 옮김 / F(에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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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긴 시간 속에 10대의 시간은 매우 짧은 듯 하지만, 우리의 삶에 꽤 깊숙이 파고든다. 그 시간의 많은 일들이 기억되고, 때로는 꺼내어 새롭게 재생산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10대의 시간은 그 때 그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 듯, 우리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들어 다음을 기약하기 힘든 상황과 대면하게도 하는, 매우 예민하고 중요한 시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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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보이스카우트단 여름 캠프를 떠난다. 캠프를 떠난 토요일부터 다음주 금요일까지 일주일 동안의 일들을 시간순으로 전개하며, 에이든의 과거가 삽입되는 형식으로 구성된 『플레이머』는 에이든의 주변과 감정 변화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에이든이 마주하는 현실과 친구들로부터 받는 정신적인 괴롭힘 속에서 온전히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에이든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이 아린다.

그래픽노블 『플레이머』의 작가 "마이크 큐라토"는 작가의 말에서 고백한다. 에이든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자신도 경험했으며, 그 경험에 바탕을 두고 픽션을 얹어 완성된 작품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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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남학생들이 갖춰야 하는, 그들이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에이든. 친구들은 에이든에게 '게이'라는 성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명칭으로 에이든을 더욱 작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스스로를 인정하는 힘마저 빼앗아간다. 누군가가 정한 기준에 맞춰 가며 억지로 삶을 꾸려나가는 10대의 현실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꼭두각시처럼 보여져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말하는 '정상'이란 것은 어디에도 없는 기준이다. 누구나 그 기준에 부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데, 때로 우린 그것이 모든 이들의 기준처럼 믿는 착각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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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깊이 꾹꾹 담아두었던 분노가 불쑥 찾아드는 순간, 불꽃이 빨갛게 타오르며 그의 주변을 에워싼다. 현실에 저항하며 자신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 불꽃과 함께 타오른다. 작가는 불꽃과 휩싸인 에이든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쳐보이며 보이스카우트 멤버답게 선서하는 모습으로 표지를 표현한 것을 보면, 현실과 쉽게 타협하며 수긍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한켠에 든든함이 스며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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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이 많을 10대들의 이야기는 아픈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믿음으로 끝을 맺을 수 있어 다행스러움과 그들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10대를 겪고, 10대를 겪고 있는 두 소녀를 둔 나에게 『플레이머』의 에이든은 아픈 손가락으로 안아주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운 소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저항하고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사과하는 모습에서 그의 자아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자신의 의지로는 변화되지 않는 현실이 우리와 자주 마주선다. 우리의 선택이 매번 옳을 수도 탁월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선택이 틀렸다면 다시 고치면 되는 것이다. 실수는 실수일 뿐 실패가 아닌 것이다. 남들이 정한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닌, 나는 나답게! 나는 나인 것으로! 살아가는 그것만이 나를 지키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빛으로 채워져있다. 나만의 빛으로 나를 밝혀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며 나를 세워주는 힘인 것이다. 10대들이여! 너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빛임을 잊지 말아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인 견해를 담아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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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나무 - 9·11 테러, 치유와 재생 그리고 회복력에 관한 이야기 사회탐구 그림책 11
션 루빈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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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전 세계인을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 맨해튼에 자리한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 두 대에 의해 붕괴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었습니다.

또한 붕괴로 인한 잔해물로 오래도록 고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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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나무 / 션 루빈 글·그림 /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침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는,

도시를 멈추게 하였고,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 살게 하였습니다.

도시도 사람도 치유되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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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된 건물 속에서 구조대원들로부터 발견된

콩배나무 한 그루

뿌리는 상하고, 가지는 부러지거나 불에 탄 상태였지만,

구조대원들은 콩배나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구조대원이 오기 전 이미 목숨을 잃은,

도움의 손길조차 필요치 않았던 많은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애타는 마음을 담아

콩배나무의 재생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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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묘목장 관리인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을까요?

콩배나무는 마른 줄기에서 새 가지를 틔워냈고,

이파리들은 다시 돋아나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 모든 사람들에게

회복의 힘을 몸소 보여준 "콩배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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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하였습니다.

콩배나무 한 그루를 모두의 아픔으로 기억되는 그 곳,

두 빌딩과 콩배나무 한 그루가 있던,

비어진 세 공간 중 하나로 채워주기로 했습니다.

그들의 슬픔 가까이 다가가

치유. 회복이라는 희망을 안겨주는 존재로 우뚝 서 있기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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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친구를 잃은 그 곳,

그 곳에 함께 있던 콩배나무 한 그루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그 자리에 다시 선다면

슬픔에 잠긴 이들의 마음에 잠시라도

희망이란 온기가 그들의 마음을 감싸줄 거라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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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잃는 것

친구를 잃는 것

갑자기 떠나보내야 하는 이들의 아픔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슬프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에 상처를 치유하고 돌아온

"콩배나무" 한 그루는,

그 어떤 품보다 따듯할 것이고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어줄 것이며

그 어떤 치료보다 강력한 힘으로 마음을 다독여 줄 것입니다.


생존자 나무로 불리는 "콩배나무" 한 그루가,

전하는 마음에는

치유와 재생, 회복의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을 담아

다시 일어설 용기를 드립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를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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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과 시몽 I LOVE 그림책
바버라 매클린톡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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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와 노랑의 은은한 색감이 어우러진 표지,

한 켠으로 보이는 높이 솟은 에펠탑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우리 남매의 이야기

우리와 함께 걸어보실래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항상 당당한 동생 시몽과

시몽의 곁에서 걱정가득한 표정을 짓는 나, 아델

우리의 하교길,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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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과 시몽 / 바버라 매클린톡 지음 /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지금 파리는 가을이에요.

색깔 옷을 입은 나무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사람들은 더 자주, 더 많은 시간을 실외에서 보내요.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가을과 참 잘 어울리는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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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업이 끝나면 서둘러 시몽에게 가요.

함께 집으로 오는 길은 항상 즐겁거든요.

오늘 시몽은 또 어떤 일로 저의 정신을 쏙 빼놓을까요?

시몽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요.

모자, 목도리, 스웨터, 외투, 장갑, 배낭, 크레용, 책

그리고 아침에 그린 고양이 그림까지.

시몽은 오늘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해요.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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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퉁이 시장에서 잠깐 멈추었어요.

사과를 하나 받았을 뿐인데,

시몽의 고양이 그림이 없어졌어요.

여기저기 사방을 모두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아요.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잠깐 사이에 어떻게 없어질 수가 있나요?


시몽과 제가 시장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동안

여러분도 함께 둘러봐주세요.

분명 시장 어딘가에 시몽의 고양이 그림이 있을 거에요.

꼭 기억해 주세요.

시장의 고양이 그림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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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파리 식물원에서 책을 잃어버린 채

국립자연사박물관으로 왔어요.

공룡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서 일까요.


우리는 책을 없다는 것을 박물관에 와서야 알게 되었지요.

어쩌면 좋아요.


시몽은 왜 없어졌는지?

어디에 둔지도 기억하지 못해요.

시몽은 박물관에서 기어이 목도리마저 잃어버렸어요.

나의 한숨에도 시몽은 어깨만 으쓱할 뿐 당황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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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이 여기저기 자기 물건들을 떨어뜨려 당황스럽지만

파리의 즐거운 볼거리를 포기할 수는 없어요.


시장에서 식물원으로,

식물원에서 자연사박물관으로,

박물관에서 생미셸 지하철역을 지나 뤽상부르공원까지

우리의 파리 시내 구경은 즐겁기만 해요.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지금의 파리는

우리의 마음을 설렘으로 가득채워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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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하는 시몽을 위해 박물관에 갔어요.

시몽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당당하게 그림을 설명하고 사인을 하려 했지만

이번엔 크레용을 잃어버렸대요.


또!


시몽을 나무라고 싶지만, 시몽은 나를 너무 잘 알아요.

배고프다는 말에 나는 서둘러 식당으로 갔어요.

이젠 더이상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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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과 나는 오늘도 무사히 집에 도착했어요.

시몽이 잃어버린 물건은, 세고 또 세야 할 만큼 많아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언젠가는 있겠죠.


시몽이 잃어버린 물건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시몽에게 안전하게 돌아왔을까요?


나와 시몽의 하교길을 함께 한 소감이 어때요?

복잡한 시장부터

우리의 시선을 끄는 인형극과 퍼레이드 공연,

가을의 향을 느낄 수 있는 식물원과 공원까지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파리 시내 한 바퀴

함께 해 주셔서 나는 참 좋았어요.


책장을 덮기 전,

시몽이 잃어버린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어디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확인하는 거 잊지 마세요.


시몽과 아델과 함께 파리 시내 한 바퀴

오늘은 여기까지!

우리 다음에 또 만나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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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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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좋아하는 지인을 통해 독립 서점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서점 죽순이를 자처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대형서점과는 다른 형태의 서점이 존재한다는 것에 신기했고, 어떤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서점의 문을 열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그 후로 독립 서점, 동네 책방을 살펴보면서 서점이라는 곳이 책을 구입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관계를 시작하는 장소이자 잠시 현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월의 시작과 함께 나의 마음에 따듯한 바람을 불어넣어 준 책,

마음에 온기로 가득 채워 준 책

바로

『책들의 부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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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 공간이 책 냄새 가득한 공간으로 변신하겠지.'

북카페이자 북스테이를 결합한 "소양리 북스 키친" 오픈을 앞둔 유진은, 텅 빈 책장을 살펴보며 생각한다. 치열하게 살았던 도시 생활을 과감하게 접고 내려온 시골 마을 '소양리'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유진을 중심으로 그 곁에는 시우와 형준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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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유진은, 모든 것을 맡길 만큼 진심이었고 온 힘을 다해 격렬하고 치열하게 집중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유진은 알았다. 벅참도 후련함도 없는, 그냥 마음조차 담기지 않은 빈 상자와 같음을. 유진은 과감하게 멈춘다. 그리고 또 다른 방향으로 삶을 시작한다. 소양일 북스 키친을 열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책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을 떠올리면서.


나는,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을 읽으면서 많은 이들의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스톤하우스에서 꼬박 일주일을 보내는 꿈을 꾸었는데, 유진은 직접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서로 같은 책, 같은 문구를 읽으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었다는 것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 유진이 꿈을 이루었듯, 나도 곧 나의 삶에 잠시 쉼표를 새겨넣고 싶은 꿈을 이루리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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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라는 꿈을 이루고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된 다인은 스타인 자신과 진짜 자신의 모습이 다른 괴리감으로 불면증과 공황장애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너무나 지친 다인은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을 그리워하며 무작정 소양리 마을을 찾는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매화나무와 주춧돌, 할머니가 생전에 계셨던 집터에 세워진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은 다인은, 그 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할머니가 남겨준 온기로 편안한 숨을 쉬고, 깊은 잠으로 내일을 향해 걸을 힘을 얻는다.


반들반들하게 닳은 곳간채 창고의 주춧돌을 보고 있자니 다인은 왠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미소가 지어질 것도 같았다.

책들의 부엌. 29쪽


시우는 3년이라는 잠수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고, 사총사로 불린 친구들을 "소양리 북스 키친"에 초대한다. 현실의 삶에서 지쳐가던 사총사들은 20대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며 새로운 내일을 꿈꾼다. 그리고 함께 한 시간 속에 피어난 벚꽃과 자전거를 타고 달린 호수길, 초코과자 위에 올려진 빼빼로 초와 친구들의 목소리로 들은 생일 축하 노래 그것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친구 그리고 시간 속에 담긴 기억은 우리에게 따듯한 온기로 오래도록 새겨질 것이다.


"스무살 때 꿈꾸던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꿈이란 건 원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거라서 자신을 더 근사한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에너지라는 걸. 인생의 미로에 얽히고설킨 길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렸을 때, 가만히 속삭여 주는 목소리 같은 거였어. 꿈이란 게 그런 거였어."

책들의 부엌. 77~78쪽


소희는, 누구나가 부러워 할 만큼의 능력과 명예를 가진 변호사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항상 우위를 차지했던 그녀에게 삶은 이기는 것이었고, 빡빡한 일정 속에 자신을 혹사시키며 해 내는 것만이 전부였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암선고는 삶을 멈추게 하는 급제동이고, 진정으로 원한 삶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첫질문을 던지게 한다.


누구도 소희에게 '너는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묻지 않았다. 진교 1등에게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 때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보려는 사람은 없었다. 소희 스스로도 그런 걸 묻지 않아도 당장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주어진 경쟁에서 이기는 걸 목적으로 여기며 직진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건강검진 결과서가 인생에 급제동을 걸더니, 저를 빤히 바라보는 것 같더라고요. 나의 진짜 꿈이 뭐였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살았냐고 묻는 것 같았어요……."

"그랬군요…….”

유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소희와 눈을 맞췄다.

"어쩌면…다행인지도 몰라요.”

“어떤 게요?”

"인생에 급제동이 걸린 거요. 그냥 직진만 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니라 멈춰서서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된 거요.[중략] 그러니까…… 기회인지도 몰라요. 인생에 급제동이 걸린 게 아니라, 진짜 인생을 살아볼 기회를 선물받은 건지도 모르잖아요.”

책들의 부엌. 119~120쪽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까? 어떤 삶을 꿈꾸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몇번이나 던지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져온다. 자신에게 처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원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꿈을 꾸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었는지, 어떤 삶을 꿈꾸고 있었는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급제동이 없었던 삶을 살았던 네가 왜?라고 묻는다면, 인생을 돌아보고 새로 계획을 세우기엔 꽤 괜찮은 나이인 것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라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다.


어머니의 죽음은 막다른 골목길을 집어 던진 것만큼 처절하고, 자신과 공존했던 평온과 행복이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만 같은 무기력감에 빠진 수혁은 계획에 없던 "소양리 북스 키친"의 손님이 된다.


'누구에게나 숨을 수 있는 동굴이 필요한 때'라고 수혁의 상태를 표현한 유진의 눈은, 상대의 내면을 꿰뚫어볼 만큼 깊이 있다. 상대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유진은, 손님들을 위한 북카페를 운영하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톤하우스와 같은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꾼 그녀, 무척 마땅한 꿈을 꾼 것 같기만 하다.


책마다 감도는 문장의 맛이 있고 그 맛 또한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생각났다. 각각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듯 책을 추천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 되듯 책을 읽으며 마음을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북스 키친'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책들의 부엌. 12~13쪽


유진이 3년동안 방치된 집터에 세운 '소양리 북스 키친'의 이야기 『책들의 부엌』은,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책과 음악, 음식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에 온기를 담아내고 있다. 치열한 삶 속에서 잠깐이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공간이 있다는 것, 마음에 위안이 되는 책이 있다는 것, 눈물 한 줄기 흘리게 만드는 음악이 있다는 것, 그리고 곁에 함께 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것, 이것이면 우린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힐링'이고 '위안'이며 '재충전'인 것이다.

『책들의 부엌』에는, 유진에게 새로운 꿈을 안겨준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 사회생활로 지친 시우의 친구 나윤이에게 추억 한 자락을 안기며 나에게 쓰는 편지를 쓰게 한 오가오 이토의 ≪츠바키 무구점≫, 인생에 급제동을 걸린 소희에게 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소꿉친구 마리에게 전하고픈 지훈의 마음이 담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인물과 상황,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마치 내가 '소양리 북스 키친'을 방문한 손님 같다. 그리고 북스 키친에 흐르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 잔하는 잔잔함을 덤으로 선물받은 것만 같다.

봄여름가을겨울, 손님을 맞이하는 북스 키친의 스테프와 북스 키친에서의 시간을 추억으로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들의 부엌』은, 삶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낸 이들이 잠시 머물며 마음에게 쉬는 시간을안기는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책들의 부엌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나의 마음에도 잠시 쉬는 시간을 선물할 수 있어 참 좋았다. 마음에 따듯한 공기를 불어넣어주는 책이 다정하게 다가와 가슴 한 켠에 자리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인 견해를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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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안에서 사회탐구 그림책 10
르웬 팜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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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어느 날,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바이러스 확산은 급격한 속도로 진행되면서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한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는 코와 입을 마스크 속으로 감추고, 거리두기 시행으로 함께 하는 활동들에 제한을 두고, 비대면 수업과 재택근무, 배달 음식 급증 등 삶의 모습에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자유롭게 활동하던 우리가 삶의 공간을 밖에서 안으로 이동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와 그 변화 속에서 도 꿋꿋하게 자기의 자리를 지켜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밖에서, 안에서』 가 마치 지난 시간들을 보듬어주는 듯 따듯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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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안에서 / 르웬 팜 지음, 신형건 옮김, 푸른책들

계절이 막 바뀌기 전 특별할 것 없는 날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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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편하다고 투덜대거나 불평할 수 없습니다. 안전한 안으로 공간을 옮긴 우리와는 달리 온 몸으로 바이러스와 싸우며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료진들의 수고를 알기 때문입니다. 병상이 모자랄 정도를 끊임없이 들어오는 환자들을 돌보고, 쪽잠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며, 습하고 더운 방호복에 휘감긴 몸으로 환자의 곁을 지키는 그들의 희생정신은 우리 모두가 지금 이시간 건강한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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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우리를 맞이했던 학교도 회사도 이제는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학력 격착와 근무 태만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자기 만의 공간에서 수업을 듣고, 근무를 하게 되면서 집중략도 향상되고, 내면의 힘을 키우는데 충분한 시간을 제공받게 됩니다. 온전히 자신을 바라보며 바쁜 일정으로 미뤄두었던 자신을 위한 다양한 취미 활동을 키우는 모습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부각되고 있습니다.

처한 상황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 그 시간을 잘 견뎌내고 또 다른 시간을 마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가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자신에게 맞는 루틴을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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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듯 보이는 우리의 일상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켰습니다.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기 위해 그래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많은 분들의 노고를 알기에 참는 것, 이겨내는 것, 지키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노력했습니다. 다함께 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만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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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봄을 맞이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점점 그 수가 줄고, 치료제도 개발되었으니 우리의 일상도 곧 복귀하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 봅니다.

만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는 마스크 속에 갇혀 지냈습니다. 바이러스 전염에 가슴 졸이며 지내왔던 우리의 일상도 조금씩 회복되어갈 봄, 그 봄을 이야기하는 그림책 『밖에서, 안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안깁니다.

답답하고 지루했던 그 동안의 힘든 시간을 그림책 『밖에서, 안에서』를 통해 위안받으며, 일상으로의 회복이 모두에게 주는 귀한 선물이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랍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인 견해를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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