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김욱 옮김 / 청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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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홀한 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글

청미 』

 

'고령 인구' 증가에 대한 보고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생산 가능 인구보다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 고령 인구가 늘어날 거라는 추측은

점점 현실화가 되고 있으며

이것은, 인구 비율의 균형이 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 발전과 더불어 생명의 연장은 자연스러운 변화라지만,

생명 연장과 더불어 경제적 활동과 건강이 직결되지 않기에

가족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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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동안 내 손에서 떠나지 않은 『황홀한 사람』은,

한 가족에게 갑자기 일어난 임종 소식과 치매 판정으로

'나이듦'이 주는 현실과 그 뒤를 따르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본다.

 

 

부모가 한창 나이 때, 우리는 성장하느라 바쁘고

부모가 나이들면, 우리는 가정을 가꾸고 커리어를 쌓느라 바쁘고

부모가 자식을 필요로 할 때,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는다.

 

 

『황홀한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곁을 떠난 시어머니와 부인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망령 난 시아버지를 보살피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열을 내도 아버지가 어디 쳐다보기나 하셔? 망령 났다는 건 이제 다 끝났다는 뜻이라고. 어디 망령 들 사람이 없어서 왜 하필 아버지야? 내 친아버지니까 더 견딜 수가 없어. 당신처럼 앞으로의 일을 설계할 기분이 아니라고."

. 중략.

"지금 내가 화내는 게 문제야? 아버지가 저렇게 되셨으니 이 집안이 뭐가 되겠어. 아버지만 보면 나도 늙어서 아버지처럼 될까 봐 얼마나 겁나는지 알기나 해?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내 머리까지 잘못되는 것 같단 말이야. 진짜가 하루도 더는 못 참겠어.

- 이북 29%

 


까칠하기로 소문난 시아버지 시게조의 망령은, 평온했던 한 가정을 흔들리게 하고, 아들인 남편이란 작자는 딴집의 일처럼 지켜보기만 할 뿐이고, 시아버지의 식사부터 배변, 목욕과 잠자리까지, 결혼해서 단 한번도 이쁨받지 못한 며느리 아키코의 몫으로 돌아온다.

 

늙어간다는 것이 무섭다는 남편의 말은,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피하고만 싶은 나약함과 가부장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 입시를 앞둔 아키코의 아들이자 시게조의 손자 사토시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라면을 끓여 먹고, 할아버지를 찾아 거리를 헤매기도 하며, 아기로 돌아간 할아버지를 위해 딸랑이를 사오는, 참으로 마음 깊은 손자이자 형이다.

 


"정년퇴직하자마자 죽어버리는 게 최고야. 노인클럽에서 삿갓춤이나 보면서 지낼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해. 전쟁터에서 돌아올 때가 생각나는군."

"어땠는데요?"

"그땐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지. 멋지게 한번 살아보자고 다짐했었어. 근데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처럼 되기 전에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만 들어.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사람이 죽지 않고 나이만 먹는 세상을 상상하면 너무 무서워.

- 이북36%

 


부모가 나이들고 늙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자식은, 애잔한다. 뭐든 잘 할 것 같던 부모는 모든 것이 어설프고, 한 번 말한 것을 잊기 일쑤에다 했던 말을 또 하면서도 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 모습이 답답하기 보다는 안쓰럽다.

 

세월이란 녀석이 왜 그리도 빨리 흐르는지 야속하다. 자식은 열심히 성장해서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키워내 이제서야 부모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부모는 그 짧은 시간조차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모는 아무 잘못이 없다. 다 세월이란 녀석때문이다.

 

상당히 되돌아가신 것 같군요.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노화의 극한에서 인생은 되돌아가는 것인가. 그것을 되돌아간다고 하는 것이었던가.

되돌아가는 길, 아키코는 시게조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이미 화도 노여움도 사라져버렸다.

 

두 소녀가 잠시 비운 주말 오후에 만난 『황홀한 사람』

출판사 편집자의 소개도 독자 서평 읽지 않고,

출판사와 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하면서

제목이 왜? 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까칠하기만 했던 시아버지와 그 곁을 웃는 빛으로 내내 지켰던 시어머니,

어머니가 더 오래 살 거라는 자식들의 짐작은 곧 자식들의 바람이었을 뿐,

현실은 눈 오는 날 시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노인성 치매를 앓는 시아버지를 보살펴야 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가족의 이야기와 마주하면서

왜? 라는 의문은 더욱 깊어진다.

 


늙음은 그렇게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단 말인가? 시게조를 보고 있으면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게조 같은 노인이 되는 것도, 가도타니 할머니 같은 노인이 되는것도. 늙음은 죽음보다 잔혹하다.

- 이북 68%

 


'노인성 치매'

부모도 자식도 피하고 싶은 관문이다.

 

이 세상에 남긴 자신의 흔적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자신의 의지대로 행할 수 없다는 것

가족에게 상처가 되고, 가족 모두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것

그 동안 살아낸 강인함을 한 순간에 놓아버리는 것

 

열심히 달려온 인생의 막바지에서 힘없이 주저앉아버린,

우린 그 모습을 '실패'로 볼 수 없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준 과거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받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아주 잠깐 또는 아주 긴 시간을,

늙음이라는 이유를 핑계삼아서.

 


노인은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는다는 건가? 아키코는 야마기시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노인들이 여간해서는 잘 죽지 않는다는데 동감했다. 에미의 생각도 멋졌다. 시게조는 꿈을 끄듯 황홀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이것이 장수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극치인지도 모른다.

. 중략.

"여보시우 할아버지는 꿈꾸는 사람이야. 황홀한 인생을 살고 있어.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 나아."

- 이북91%

 


손자 사토시가 말한다.

"엄마, 좀 더 살아계셨어도 좋았을 텐데……."라고.

손자 사토시는 엄마에게 말하고 있지만,

할아버지가 물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말을 잊고, 아들을 알아보지 못해도, 기력이 예전만큼 하지 못해도,

기저귀를 차야만 했어도,

가족 모두 이젠 좀 익숙해져가는데,

보살핌을 좀 더 받았어도 되었을텐데 하고 말하는 것만 같다.

 

시게조는 행복이란 것을 느끼지 못했다.

위장 장애와 부실한 치아로 내내 불편했고,

예민한 탓에 아주 사소한 것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치매는,

까칠함도 위장 장애도 틀니의 불편함도 모두 잊게 만든다.

예뻐하지 못한 며느리 아키코의 손을 잡고 시장을 보고,

손자 사토시가 끓여진 라면을 배부르게 먹고,

새의 지저귐도, 계절에 맞게 핀 꽃의 화사함도 느끼는,

평생 웃어보지 못한 그가 말대신 미소로 대답을 하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다.

치매라는 핑계를 이유 삼아.

 


황홀한 사람. 그는 그렇게 가족의 품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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