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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이라는 말에 읽고싶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말에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받았을까라는 호기심이 컸다.
책 표지 안쪽에 은발의 환하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생각에 어떤 작가인지가 궁금해졌다.
앨리스 먼로는 1968년 단편 소설 '행복한 그림자의 춤' 으로 데뷔를 했다.
은퇴를 선언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앨리스 먼로 올해로 82세이다.
Dear Life 출간을 마지막으로 지병인 암으로 60년간 작가 생활을 접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60년이나 지난 후에야 그녀의 작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인데
그 누군가의 어떤 시작으로 이렇게 노벨 문학상까지 오르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된다.
단편소설만을 써왔다는 앨리스 먼로. 노벨 문학상이 단편소설 작가에게 수여된 것은 처음이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시작으로 14권의 단편집을 내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 출판될 당시엔 인기를 끌지 못했다고 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앞으로 그녀의 절판된 책들도 다시 출간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사람들의 눈길에서 잊혀져간 이야기들이 새생명을 찾을 듯하다.
노벨문학상이라는 말에 누구나 격하게 공감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일거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읽고 난 후에 쉽게 머리 속에 정리가 되질 않았다.
열다섯편이라는 많은 수의 단편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 단편마다 마지막에 던지는 저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골똘하게 생각하느라고 계속 책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일반적인 장르소설들을 읽다보면 한번에 쓰윽 읽혀진다.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명확한 결말과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책의 단편들은 생각은 독자가 알아서 해야한다는 점이 내게는 아주 어렵게 느껴졌다.
첫번째 단편 작업실.
쾌적하고 널찍하고 바다가 훤히 보이고 전망도 좋은 집에 사는 작가가 집을 떠난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 작업실을 갖고 싶어한다.
집이라는 공간은 남편이 일을 하고 와서 편하게 쉬는 공간이 될 수 있을 뿐, 여자에게는 그런 공간이 되지 못한다.
여자는 집이고 집은 여자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과 아이, 집을 두고 글을 쓸 수 있는 곳을 임대하려고 한다.
무턱대고 마음에 드는 비어 있는 사무실을 임대하게된다. 자신만의 조촐한 공간을 얻게 된 작가에게 집주인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작가가 집에 돌아간 늦은 밤 몰래 그녀가 쓴 글을 읽고 있는 집주인. 그녀는 그런 집주인을 점점 멀리하기 시작한다.
"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또렷이 떠오르는 그 그림 - 맬리 씨가 걸레와 솔과 비눗물이 든 물통을 들고 어설프게, 일부러 어설픈 동작으로 화장실 벽 앞에 구부정하게 서서 낑낑 거리며 문질러 닦고 서로운 한숨을 토해 내며, 이미 기이하기 짝이 없는데도 웬일인지 절대 성에 차지 않는, 믿음을 배신하는 또 다른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짜내고 있는 - 이 가물가물해 질 떄까지는 적어도 기다릴 참이다."
- 34page
늘 단편의 마지막에서 친절하지 않은 마무리는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뭐? 맬리 씨가 화장실에 낙서를 했다는 뜻인가? 집주인이 낙서를 했는데 모른척 해줬다는 뜻인가? 늘 그런 남편을 묵인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인가? 이런 식으로 계속 그 의미를 찾게 만든다.
두번째 단편 나비의 나날.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한소녀가 있었다. '나'는 아침 등교길에 그 소녀와 우연히 과자를 나눠먹으며 등교를 하고 봉지 속에 들어있던 나비 브로치를 소녀에게 선물로 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선물을 줬다고 친구들에게 말할까봐 조마조마하다. 백혈병에 걸려 입원하게 된 소녀를 반친구들이 문병을 가게 된다. '나'에게 소녀는 선물을 한가득 주며 돌아오면 수업 끝나고 집에서 놀자고 한다. 둘 사이에 우정이 피어난듯 했지만 그건 거짓이었던가보다. 집에서 놀자고 한 소녀의 말에 마음을 돌리는 '나' . 이 부분도 한번 읽어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마음을 돌린 것이지? 소녀는 애 외따로 떨어질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인지 또 많은 의문들이 머리 속을 맴돈다.
나머지 단편들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해서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계속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한 해설이 있을까 싶어서 검색을 하다가 한 이론을 보고 내가 왜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게되었다. 얼마전 사이언스에 발표된 문학 소설을 읽으면 마음의 이론이 향상된다는 논문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논문은 문학성 높은 소설을 읽으면 눈치가 생긴다. 소설의 몸짓, 표정, 말투를 보고 상대방의 현재 심청을 파악하는 눈치를 키워준다.
대중소설이 재미있지만 창조성, 공감능력 향상에는 도움이 안된다는 내용인데 앨리스 먼로의 단편 'Corrie'의 텍스트가 쓰였다고 한다.
마음의 이론에 쓰인 상대방의 시선을 보고 그 감정을 읽어내는 테스트를 직접 해봤는데 역시나 23점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테스트를 해보기 전까지는 사람의 감정을 왜 못읽겠어!라고 생각했다가 하나 둘 체크해가면서 도저히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문학성있는 소설들을 읽지 않고 흥미위주의 책을 읽어왔다는 결과가 아닐까 싶다. 얼굴의 표정을 보고도 그 사람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내모습에 적잖게 충격이었다.
그런 감정읽기능력이 부족하기에 책 속 주인공들의 행동에서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 같다.
문학성 높은 작품들을 많이 읽어 본 후 행복한 그림자를 다시 한번 찾아들어야겠다. 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느낌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