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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238
황동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평점 :
사람 속을 걸어/사람 밖으로 나간다
- 「1998년 5월의 문답」중에서
산다는 것이 결국 사람 속으로 들어가 헤아리고 사랑하고..
그런 다음 사람 밖으로 나오면 비로소 사람을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다..
시인 황동규는..
'다시 만날 때까지는/온기를 잃지 말라고/다시 만날 때까지는/눈감지 말라고/치운 세상에 간신히 켜든 불씨를/아주 끄지 말라고/이 세상에 함께 살아 있는 그 무엇'(「퇴원 날 저녁」에서)을 위해 따뜻하기를 열망한다..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감정이든 그 무엇에게 이토록 온유할 것을 바라고 또 바란다..
나는 진정 누구에게 따뜻한 적이 있었을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의「너에게 묻는다」전문)고 말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기 노력한다..
두 마리의 물고기
'추억은 인간을 사람으로 만든다'(「산당화의 추억」에서)고 했듯이 '추억'이란 우리에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나 역시 자꾸만 나이를 먹다보니 고향을 추억하고, 친구를 추억하고, 연인을 추억하고, 과거의 많은 시간들을 추억한다..
그러면 나도 이제야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이 시집은 한때 모질게 살았던 내 자신을 아름답게 추억하도록 만든다..
내게 수많은 추억의 에피소드가 있기에, 그래서 '외로움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토요일 저녁」에서)..
아직 나는 '삶의 온갖 고통 다 살아버리고 다 살아버리'(「바우아 데비의 그림」에서)지도 않았는데 어찌 이렇게 약해 빠졌을까..
마흔 즈음 다시 유턴한다..
순수했던 내 유년의 아름답던 시절과 같이 다시 회귀하리라..
유채꽃
여기 이 시집의 시인 황동규 시들은 자못 쓸쓸하다..
외로움, 사랑, 나이듦, 홀로움, 추억, 사람 등등 인생을 회고하듯 쓸쓸한 느낌이 강하다..
'외따로 핀 꽃들./꽃판에서 떨어져 작게 외따로 서 있는 꽃에게/잠시 마음 주어보라./마음 온통 저며진 꽃!'(「외따로 핀 꽃들」에서)처럼 시인은 진정 쓸쓸하고 외로운 것 같다..
하지만 표제작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다..
아내나 연인에게 꼭 들려줘야 하는 시다..
시를 읽어주는 것으로 끝나면 안된다..
아래 시처럼 우리나라 남자들이 진정으로 아내나 연인을 위해 큰 일도 아닌 설거지 같은 걸 해주는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달기도 아니고
사랑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앉혀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겨울 비 잠시 그친 틈을 타
바다쪽을 향해 우윳빛 창 조금 열어놓고,
우리 모르는 새
언덕 새파래지고
우리 모르는 새
저 샛노란 유채꽃
땅의 가슴 간지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이국 햇빛 속에서 겁없이.
-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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