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 희곡선 범우희곡선 3
몰리에르 지음, 민희식 옮김 / 범우사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서민귀족]
 
부르조아 젠틀맨은 2006년 부요해진 우리 삶살이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주위사람의 시선과 벌어들인 돈을 대접받는 사회적인 계층으로 변화시키려는 모습이다. 아파트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로, 즐기는 오락은 골프로, 아이들은 비싼 브랜드의 옷과 음악,미술,철학 공부로 자신들의 위치를 보여주려한다. 돈이 있다면 누구나 이렇게 살고 싶어하는 사회가 되어왔다. 
 
혹 이런 삶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귀족이 지배하던 전근대적 프랑스에서야 돈 좀 있다고 귀족 행세하려는 상인이 우스웠겠지만, 돈이 있으면 되는(!) 우리사회는 더 이상 부르조와 젠틀맨이 경멸과 조롱거리가 아니다. 어쩌면 자본주의 민주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고 과거의 프랑스가 전근대적이며 귀족위주의 건강치 못한 우월주의를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누린다는 것이 과연 적당한 수준인가는 생각해 보아야한다.
 
고급품 소비의 열병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를 통해 중국으로 들불 번지듯 퍼져간다. 이제 명품가방들은 공장처럼 찍어내도 동아시아의 수요에는 모자랄 판이다. 동아시아 수요. 이거 내가 한몫하지 않는가? 명품 브랜드가 서민귀족에게 점령당한 지금 이제 현대의 귀족층들은 전문지식과 호사취미로 눈을 돌린다고 한다. 17세기와 무엇이 달라졌나? 우리 고상한 주르댕 역시 음악,미술, 검술, 철학 선생을 두고 열심히 내적 호사취미의 연마에 정진했는걸...
 
나는 무엇을 놓쳤는가? 삶은 왜 이리도 피상적이고 우스꽝스러운가? 인간은 필요한 만큼에 만족하고 나눌 수 있어야하며, 견실한 생각과 남을 돕는 모습으로 아름답다고 생각은 하는데...귀족의 입장에서 보지 않아도 꼴 사나운 것이고, 여전히 스스로도 부끄러운 행태다. 인간의 삶은 굳이 호화로울 필요도 없고 복잡할 이유도 없는 너무 단순한 것인데... 우리는 돈을 벌어들이는데 애당초 목적이 있지 않았다. 더욱이  유세를 떨 때 드는 그리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살고 싶진 않다. 무엇이 나를 이리로 몰고 가는가?
 
혹 자존감을 잃은 것이 이유는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그것에 대한 긍지. 자신의 고귀한 면이 주위사람의 유행을 좇는 것으로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는 자존심을 돈으로 사려들기에 항상 돈이 모자란 것은 아닐까? 나 스스로가 나니아의 피터처럼 이 세상의 왕이며 공정하고 의로운 판단으로 세상을 다스릴 자로 여기는 의엿한 자존심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
 
자존감이 있어도 힘든건 습관이 될 정도로 뿌리내리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 습관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광고비를 퍼붓는 자본의 공세에 견디지 못하고 놀아나고 있는지 모른다. 습관은 훈련을 통해 가능하며 문화를 통해 가능한 것이니까. 만약 내가 휩쓸리지 않고 유행의 조류를 의연히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느덧 내 습관이 되고 우리 문화의 한부분으로까지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흐름을 거스르는 우리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나라가 될까? 그런 삶의 모습에 힘과 지지를 보내는 우리의 믿음과 교회는 얼마나 가슴 뿌듯한 것일까? 문화란 결국 사람이 선택하여 가는 것이다. 여태껏 문화운동이 따분한 건 문화란 아름다와야하고 감동적이어야 하며 강요되지 않아야함을 몰랐던 때문은 아닐까? 문화운동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고 막상 문화를 바꾸는 사람의 변화에는 소홀한 때문은 아닐까? 문화는 사람에 의해서만 바뀌며,  바뀌는 정도 또한 문화를 습관으로 원하는 자가 선택하는 범위 정도이니까...
 
습관이 되도록까지 시간을 들이지 못하는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삶의 모습도 큰 역할을 한다. 소란들과 쓸데없는 인터넷 서핑,댓글, 기사들, 게임, 신문, 드라마, 남의 이야기들, 사소한 약속들과 행사, 시간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이 조바심은 내적 고요에 익숙치 않음 때문이다. 문은 때로 잠겨져야 하고 고요를 위한, 기도를 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위대함은 아니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고요에서 찾아지니까. 잡지 않는 생각이 표류하듯, 의도하지 않는 시간들은 분명 쓰레기들로 채워져 둥실둥실 큰물을 따라 흘러내려가고 말 것이다. 내가 떠드는 기도가 아닌 침묵하며 듣는 기도가, 내 철학으로 해석하는 성경이 아닌 들려주시는 말씀이 삶을 바로 세우듯, 침묵 속에 정작 중요한 미세한 소리에 귀를 열리라. 적어도 서민귀족으로 살아가진 않으리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6-01-1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마립간 2006-01-1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대한 자본주의에 휩쓸리지 않은 저를 다른 사람과 차별하려는 자신의 성향은 서민 귀족이 서민과 구분지으려 했던 것과 같지만 차선책은 눈에 띄지 않고 최선책은 마음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현정 2006-01-11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사무엘처럼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며 살아가면 좋을 터인데....
그런데..예전부터 그 때의 사무엘 나이가 너무 궁금해요. 12살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