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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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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점.

 

책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이 두 장소에 특별한 애착이 없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저렇게 글로만 써놓았을 뿐인데도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햇살이 자욱하게 들어오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 같은

황홀경에 빠져버리고 마는, 나는 책, 활자 중독자다.

 

어려서부터 책은 특별한 친구였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빠를 따라 산골의 벽지학교로 전학을 다니던 시절.

수업이 끝나고나면 특별한 과외수업이 따로 없던 때라

오후 나절의 대부분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보냈다.

내가 주로 있던 곳은 학교 도서실이었다.

 

빈 교실을 도서실로 꾸며 놓은 곳도 있었고,

여의치 않으면 교실 한쪽 벽에 책을 쭉 쌓아두기도 했는데

이러나 저러나 책으로 가득한 그 공간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일선 학교의 교사이자 작가인 선생님들이 쓴 소설부터 성교육 교재,

뤼뺑전집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다 읽었던 덕분에

일찌감치 문학, 책의 매력을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그러니까,

보물 같았다.

 

북미, 남미, 유럽 등지의 독특하고 유서 깊은 서점에 대한

한 페이지 남짓한 설명이 때론 짧다고 느껴졌지만,

서점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칼럼과 인터뷰가 목마름을 채워주었다.

 

 

"서가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공간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차츰 자신의 윤곽이 녹아내리다 못해 중력과 거리감까지 흐려져

책의 바다와 자신이 같이 호흡하며 어우러지는 기분이었다.

기뻤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곳에서만은 헤엄을 치고 달리고 날아도 되고, 넘어지거나 자빠져도 되고,

잠들었다가 그 잠에서 깨어도 절대 끝나지 않을 무한의 세계에

나 홀로 흠쩍 잠겨 있을 수 있으니까..."

- 히라마츠 요코, 파리 시청사에서의 망상, 76쪽.

 

 

"서점은 여행하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소이다.

출발하기 전에도 그렇고 여행지에서,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도 그렇다.

떠나기 전에는 지도나 여행안내 책자만 눈에 들어오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소설과 평론까지 읽고 싶어진다.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독서로 정리하고 싶고,

그 독서를 통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된다.

이 두가지의 경험은 실제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눌 수가 없다.

시작은 끝의 일부이며 끝은 시작에 포함되어 있다."

- 미나토 치히로, 서점의 여행자들, 155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20곳의 서점 중

가장 나의 마음을 끌어 당긴 것은 런던의 돈트 북스였다.

여행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내가

언젠간 이런 서점을 차리고 싶다, 고 생각했던 곳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여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지역의 서점이나 도서관을 다녀볼 생각을 못했던가, 아쉽기도 했다.

 

 

"여느 평범한 서점에서는 지도, 가이드북, 소설, 평론을 다른 분야로 분류하지만,

돈트 북스의 생각은 다르다.

책을 장르별로 구분하지 않고 지리별로 나누고 있다.

대륙별, 나라별로 서가에 표식을 하고

거기에 픽션, 논픽션, 사진집을 가리지 않고 모아놓았다...(중락)

단순히 지리적으로 한데 모아놓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함께 읽어야 비로소 보이는 현실이 있다는 걸 그 서점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미나토 치히로, 서점의 여행자들, 155~156쪽.

 

 

같은 시기에 읽은 이윤기 선생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에도

등장했던, 종이책의 소멸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지금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21세기의 새로운 이코노그래피 문화, 이미지 문화가,

유구한 글말 문화의 전통을 드난살이로 전락시킬 것을 위태롭게 여기어 마지않는,

걱정스러운 전망이 바닥에 깔려 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지 문화는 고대 종교의 유구한 구전 문화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뮈토스(옛 이야기)', 근 3천 년 가까이 그 뮈토스를 기록하고 발전시킨 문자 문화(문학)의 적자다.

이미지 문화는 뮈토스와 문학이라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이지,

뮈토스와 문학의 어머니는 아닌 것이다."

-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203쪽.

 

 

"전자책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오히려 서점을 찾는 사람 역시 증하리라 생각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독서란 장소의 경험과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소의 경험은 색, 냄새, 촉감처럼 책 특유의 분위기와 떼려야 뗄 수 없다...(중략)

사람보다도 오래 사는 책이 모여 있는 그 장소에도 우연한 만남이 있다.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것이 책과 서점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해피니스, 보누르, 행복이라고 한다."

- 미나토 치히로, 서점의 여행자들, 157쪽.

 

 

그렇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종이는, 책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행복한가.

서점과 도서관과 이야기와 역사가 있어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홀짝이며 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아아, 인간으로 태어나서 얼마나 좋은가.

인류에게 역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새삼스레 내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기 되는 한순간이었다."

- 하라 켄야, 서점도 도서관도 지금부터다, 189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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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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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 만큼 우울한 일도 없다.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행이든 책이든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어찌 그를, 더구나 그의 '글쓰기'에 관한 글을 아무 사심없이 읽어나갈 수 있으랴.

 

 

책을 받아본 날, 정말 기뻤다.

이오덕 선생에 이어 글쓰기에 관한 또 하나의 큰 스승님을 대면한 기분이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문장가'로 칭송받는 그의 이야기를,

문장 작법의 수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유난히 바쁜 시기였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진귀한 역사유물을 대하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겼다.

 

 

아아,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집중해서 읽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반복해서 읽은 부분이 여러곳이었고,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은 대충 넘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미 작고하신 분의 글을 모아

다시 주제별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생긴,

어쩔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뒤에는 더욱 절망적이었다.

차라리 '작문법'이란 옷을 입힐 것이 아니라

작가, 번역가 혹은 인간 이윤기에 대한 에세이였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나의 소양과 그릇이 부족해서였겠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 그래도 기억하고 싶은, 그의 작가와 번역가로서의 고민들

 

 

"'글쓰기'에 관한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길고 짧은 소설을 차례로 써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아래로 갚듯이 이 빚은 독자에게 갚아야 한다.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박한다.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워서 물어본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 글쓰기가 곤혹스러워서 묻는다, 36~37 쪽.

 

 

"소설가 박인홍이 30대 초반에 마주했던 <벽 앞의 어둠>,

바로 그 어둠의 벽이었던 것이지요.

나는 박인홍보다 20년이나 늦게 이제 겨우 면벽합니다."

- 지금의 작가도 옛날 작가와 똑같다, 51쪽.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되풀이해서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 껍진껍진한 입말로 글쓰기, 81~82쪽.

 

 

"외국어 번역 공부, 나는 참 어렵게 했다.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많이 절망했을 뿐, 한 번도 만족을 경험하지 못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많이, 그리고 오래 걸었다.

판화가 이철수는 길을 잃고 오래 걸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수도 있다고 위로하고,

시인 강연호는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고 격려하지만

그 위로와 격려는 들을 때마다 슬프다."

- 공부에 지름길을 왜 찾나, 116쪽.


 

"'지금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21세기의 새로운 이코노그래피 문화, 이미지 문화가,

유구한 글말 문화의 전통을 드난살이로 전락시킬 것을 위태롭게 여기어 마지않는,

걱정스러운 전망이 바닥에 깔려 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지 문화는 고대 종교의 유구한 구전 문화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뮈토스(옛 이야기)', 근 3천 년 가까이 그 뮈토스를 기록하고 발전시킨 문자 문화(문학)의 적자다.

이미지 문화는 뮈토스와 문학이라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이지,

뮈토스와 문학의 어머니는 아닌 것이다."

- 호메로스, 살아 있었군요, 203쪽.

 

 

"'유심'과 '무심', 생활과 존재를 아우를 수 있어야,

삶은 강처럼 저절로 깊어지고 넓어질 것 같다.

문학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삶조차도.

책은 그래서 있는 것이다."

- '유심히' 또는 '무심히' 바라보다, 292쪽.

 

 

 

 

* 뻗어가며 읽기

 

미셀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예찬> 김화영 옮김

김화영, <한눈팔기와 글쓰기>, <소설의 꽃과 뿌리>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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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능적인 삶>, 이서희, 그책, 2013 11

 

 

애매모호한 각각의 글들을 관능이란 것으로 엮어낸

저자, 혹은 편집자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능이라.

묘하게 매력적이고, 은밀한 단어다.

 

늘 사랑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는 솔직한 여자들.

임경선 작가의 <나라는 여자>가 떠오른다.

그녀와 얼마나 비슷할 지, 혹은 얼마나 다를 지를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2. <시골 낭만 생활>, 고민숙, 청출판, 2013 11

 

 

나 역시 도시를 떠나 산골로 들어왔지만

이 책을 고른 건 순전히 한 독자의 리뷰 때문이었다.


"블로그 오랜 이웃으로 그녀의 사진과 글을 사랑한 나머지 네이버가 망해버리면 어쩌나.

저 예쁜 사진과 글들이 한순간 에러로 사라지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한적도 있었다.

그래서 8년간의 그 많은 에피소드중 아주 일부이긴 하나

안전하게 책으로 나오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두고두고 아껴놨다 곶감 빼먹듯 보고 싶은 책"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사람의 인생에는, 글에는

분명 우리의 결핍된 무언가, 어딘가를 어루만져주는

묘약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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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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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제목 아래 써 있는 저 세줄의 글귀를 주의깊게 보았다면

이 책이 누구를 위해 쓰여졌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바로 인생의 가을 단풍기를 맞고 있는 50~60대,

우리 엄마아빠 세대들이다.

 

전쟁, 가난, 독재, 산업화, 민주화 라는 굵직굵직한

삶의 굴곡을 지나온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늘 가슴 한쪽이 저리다.

그들 인생이 진짜 그들만의 인생인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어서다.

 

가난한 집안에 보탬이 되기 위해

배움을 포기하고 자기의 꿈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택하고,

못 먹고 못 배운 서러움을 자식들에게 되물려 주고 싶지 않아

밤낮으로 일만하다 보니 어느 순간 가족들과 멀어져 있고,

젊어서는 부모님 공양에

나이가 든 지금은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 다 큰 자식들 때문에

일생이 전전긍긍한,

퇴직을 했어도, 자식들 시집 장가를 보내놓고도

즐길 줄을 몰라 하릴없이 방항하거나 손자들을 키워내야 하는

'평생 노동'에 시달리는 내 엄마 아빠들.

 

이 책의 핵심은 간단하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내가 만드는 것이니

욕심일랑 버리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나이에 맞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것.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렇듯이

이것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법륜스님에게 자문을 묻는 이도, 독자들도 이미 다 알고 있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마음을 비우고 나 자신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며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 대한 번뇌가 늘어나고

그러다 보니 삶 전체가 불행해진다.

그러므로, 뻔한 줄 알면서도

우리는 법륜 스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늘에서 보배의 비가 내리는데

중생은 다 제 그릇 따라 양식을 얻어간다."(253쪽)는 것처럼

같은 법문을 얻고도 크게 얻어가는 사람 적게 얻어가는 사람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서적, 물질적으로 방황하고 있을 우리 엄마아빠들이

이 책을 읽고 한순간이나마 위로를 받았다면

그것으로도 족할 것 같다.

 

사실, 중년을 위한 책이라고는 했지만 이것을 읽는 내내

자식으로서 나의 도리와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 사랑하는 엄마아빠의 행복한 날들을 기도하며

좀 더 너그러운 나의 봄꽃같은 시절을 기대하며,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

 

 

어머니가 옛날 얘기를 할 때는, 해결하는 답변이 필요한 게 아닝에요.

"친구가 보고 싶다." 그러면

"친구 찾아드릴까요?" 하지말고

"네, 어머니. 친구가 보고 싶으세요"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만 내면 됩니다.

- 65쪽, 치매, 무의식의 세계에서 옛날 영화를 보는 것

 

바다에 가면 파도를 볼 수 있습니다.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또 일어나고 사라지지요.

그런데 바다 전체를 보면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물이 출렁거릴 뿐입니다.

바다 전체를 보듯이 인생을 관조하면 삶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파도 하나하나를 보면 분명히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듯이

인생도 언뜻 보면 생하고 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재가 아닌 인식의 문제일 뿐입니다.

- 76쪽, 삶과 죽음은 하나의 변화일 뿐.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았네요.

이렇게 살아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돌보는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를 돌보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 153쪽, 간병은 복을 짓는 일

 

자식은 부모가 도와주면 줄수록 손해에요.

자식을 위해서는 안 도와주는 게 나은데,

보는 내가 안타까워서 도와주는 겁니다.

자식을 위해서 도와주는게 아니라. 내가 못 견뎌서 도와주려는 거에요.

늘 얘기했지만 어릴 때는 돌봐주는 게 사랑이고

커서는 냉정하게 지켜봐주는 게 사랑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 때는 내가 돌볼 여력이 없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내가 지켜볼 인내가 없습니다.

아이가 넘어져서 울고 악을 써도 자기가 일어날 때까지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데,

가서 안고 어디 다쳤나 난리를 피웁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식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부모가 없이도 혼자 살 힘을 키워주는 것이 진짜 부모의 자랑인 거에요.

- 170쪽, 돈 대신 등 두드려주는 사랑

 

남자의 성질을 보면 소 같은 데가 있습니다.

옛날에 산에 소 먹이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사람이 소 고삐를 놓고 도망가면 소도 도망을 가다가

사람과 소가 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답니다.

그런데 사람이 소 고삐를 잡고 옆에 딱 붙어서 격려하면

그 소가 뿔로 호랑이를 잡는다고 합니다.

그처럼 여자가 고삐를 잡고 격려해 주면 남자는 없던 힘도 냅니다.

- 184쪽, 실직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저 분은 나이 들어도 참 밝고 당당하게 사는 구나,' 여깁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듯이

늙음이 비참해지지도 않고 초라해지지도 않고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226쪽,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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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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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듯 음악을 듣는 바람에 얻게 된 게 또 하나 있다.

나는 기타를 산 덕분에 음악을 열심히 들었고,

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덕분에 소설가가 되었다.

기타를 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게 됐고,

내게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음악적 재능을 흠모하게 됐고,

그러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게 됐고,

음악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됐고,

그렇게 소설을 쓰게 됐다.

혼자 있었고, 계속 소설을 썼고, 소설가가 됐다.

음악이 없었다면, 기타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

- 70쪽, 터닝 포인트 뮤직

 

가끔 이런 공상을 하는 소설가가

자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음악도, 소설도 상당히 편협하게 좋아해온 나로선

그의 다단계같이 이어지는(그의 표현이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몰두가 부러웠다.

 

그는 스스로를 엉뚱하고

'기호를 좋아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것으로 묘사했지만

글을 읽는 내내 그는 꼼꼼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음악사랑, 혹은 여전히 갈구하는 음악적 재능과

대중에게 사랑받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그의 고민이 읽혀졌달까.

 

그래서 좋았다.

이런 솔직한 열망은

프로의 세계에선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일테니까.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하며 선곡했다는 그의 곡들을 보자.

 

"오후에서 시작해, 꿈꾸는 달로 끝나는 선곡이었다.

그 사이에 바람이 있고 한가운데 시큼한 시간들이 있다."-159쪽

정말 철두철미하다.

 

책의 대부분은 그가 좋아했던 다양한 장르들, 뮤지션들, 곡에 대한 내용이다.

직접 찾아 듣고 싶을 만큼 흥분되는 묘사들도 여럿 있었다.

<맥주는 술이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의 바비빌이나,

<우리가 먼저 외로움을 찾아가자>의 롤러코스터의 음악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보다 그의 이야기들이 더 좋았다.

 

노래교실에서 "소설가!"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셨던 그의 어머니나

마흔이 넘었어도 여전히 '이해'를 믿지 않는다는 고백,

아이리버로 함축되는 한 시절,

짐의 부피가 늘어나는 한이 있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카페앞에 자주트는 음악 목록을 써붙이자는 대목에선

오호라! 통쾌했다.

 

책 한권을 읽고 그 글을 쓴 작가에 대해 상상해보는 일이 참 즐거웠다.

내 멋대로 한 사람의 세계를 규정짓는 일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그의 행보를, 이야기를 눈여겨 볼 것이란 점에선 긍정적이리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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