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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최인호 유고집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우리에게 올 겨울은 결코 쉽지 않은 계절이었다.

 

첫 책을 마무리 하던 중 둘째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입덧과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첫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설렘을 다 누리기도 전에 시작된

고작 16개월 된 딸아이의 입원, 수술

그리고 시 외할아버지의 별세.

 

이때만큼 삶과 죽음을 생생하게 느꼈던 적이 없었다.

번뇌와 고통과 숱한 다짐이 제멋대로 떠다녔고,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생각을 할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는 날들이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기를,

그래서 내가 겪어야 하는 모든 것들이 희미해지기만을 바랐다.

 

우연일까, 인연일까.

재밌게도, 이번 달에 서평을 작성해야 할 신간 두 권이

모두 고인이 되신 분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

 

 최인호 작가 유고집 <눈물>.

 

이 책은 2008년 암 진단을 받은 작가가 2013년 가을 영면하기까지

5년간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사랑하는 벗에게' 쓴

편지 형식의 영적 고백들이다.

 

그런데 그 대상이 재밌다.

 

이 편지를 받는 그대가 누구인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대는 이미 제가 만났었던 사람인지, 친하였던 동무였는지,

아니면 오가는 길가에서 스쳤던 사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어쨌든 내 사랑하는 벗이 되어 생전 처음 그대에게 쓰는

이 편지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 19쪽.

 

 

죽음의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써내려간 것이

사랑하는 아내나, 자식이나, 혹은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상조차 불분명한 이들을 위한 것이라니.

 

독자들 중에는 그의 강한 종교적 색채나 신앙 고백이

불편한 이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은 언젠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그의 행보를 먼저 간 어떤 이의 것으로 이해하면

글이 신앙 고백의 형식인 것 역시 죽음에 이르는 수많은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죽음을 앞둔 순간이야 말로 신과 가장 가까울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면에서 볼 때 그가 부르는 '사랑하는 벗'이란 종교 유뮤를 떠나

본인이 경험한 신의 기적, 신앙의 신비를 공유하고픈 모든 사람들,

혹은 (본인처럼)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어찌 두렵지 않았을까.

어찌 외롭고 무섭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닥친 현실에서 도망치거나 곡해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였고,

고통속에 절망했고, 그러나 다시 일어섰다.

가끔 내가 상상헤보곤 하는, 나의 마지막 모습과도 무척 닮아 있었다.

그 같은 신앙의 동료가, 선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산 자인 나에겐 위로이자 희망이었다.

 

언뜻 보면 이 책은 한 개인의 신앙, 혹은 성경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

투병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느낀 인간의 아름다움과 슬픔, 외로움,

특히 작가로서 죽고 싶어한 그의 '숭고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과연 나에겐 그 만큼의 열정이, 확고한 의지가 있는가.

자신이 없다.

 

 

수십년 간 그를 곁에 지켜본 이들의 말을 빌어보면

그의 유쾌하고 정이 많았으며, 자신의 일에 무척 열정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청년이라 부르고, 반항아라 묘사한다)

 

손톱이 다 빠져버릴 만큼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손가락에 골무를 끼워서까지 마지막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완성했고(337쪽),

"나는 수녀님이 나랑 사귀다 실망해서

수년원 간 거라고 뻥치고 다닐거다. 으하하"하며 이해인 수녀님과 장난을 쳤다(290쪽).

"망가져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다고.

그냥 써 쓰고 싶은 걸 쓰기만 하면 되는 거야." 라며

살뜰히 후배들을 아끼고 챙겨주는 선배였다(327쪽).

 

내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무척 많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그리고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초보작가로서

마음에 새기고 싶은 두 부분만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도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잘못한 형제를 무한정 용서하라는 말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중략)

내가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사랑의 행위인 것 같지만

실은 교만인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남을 용서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남을 단죄할 수 없듯이

내가 남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용서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받은 존재이자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발견입니다."

- 210쪽.

 

 

둘.

 

"저는 주님에게만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진실로 인정받고 칭찬받고 잊히지 않고 싶은 분은

오직 단 한 사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만년필을 잡은 제 손 위에 거짓이 없게 하소서.

제 손에 성령의 입김을 부디 내리소서."
- 194쪽.

 

 

이제 그가 남긴 글을, 한 인간의 역사를

천천히 따라가며 읽어가야 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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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부제,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인생의 목적어>는 카피라이터 정철 씨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뽑아낸 50가지 단어에 대한 글이다.

설문에 답한 사람 2,820명, 그들이 지목한 단어 3,063개.

작가는 "수천 명의 독자와 함께 쓴 책"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단다.

 

그럼 우리 이웃들은

그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무엇을 꼽았을까.

 

가족, 사랑, 나, 엄마, 꿈, 행복, 친구, 사람, 믿음, 우리

열정, 너, 도전, 지금, 희망, 돈, 건강, 자유, 이름, 추억

감사, 밥, 아버지, 여유, 웃음, 실패, 재미, 생각, 시작, 책,

마음, 여행, 변화, 다름, 배움, 만남, 일, 다시, 오늘, 왜,

보통, 휴식, 매력, 길, 술, 그러나, 굳은살, 스무 살, 자식, 그냥

 

굉장히 보편적이고 단순한 소재들 같지만,

이런 주제들이야말로 글로 풀어내기 굉장히 어렵다.

 

사실 나는 자기계발서 류는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이 책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신선했다거나

공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진부할 것 같은 일상마저 특별하게 만드는

작가의 역량, 관찰력은 여기저기서 진가를 발휘했다.

 

친구에 대한 부분을 보자.

 

새 친구 사귈 나이 지났다.

사회에 나가면 진짜 친구 사귀기 어렵다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을 물 마실 나이 지났다, 책 읽을 나이 지났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가슴 한 구석에 친구가 들어올 자리가 남아 있다면

친구는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지금도 내 인생 속으로 들어올 다음 친구는 누구일까 기대한다.

-94쪽, 7위 친구 가운데.

 

나이 든 어른이 어린 아이처럼 새 친구 사귀기를 기대하는 모습도 부럽지만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사회에 나가면 진짜 친구 사귀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돌이켜 보았다.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것들.

특히 다시, 왜, 그러나, 굳은살 같은 주제들이 그랬다.

 

이번엔 밥에 대한 글.

 

"저희 집에서 금방 싼 김밥입니다."

"제 딸아이랑 금방 싼 김밥입니다"

달랐다. 다르게 들렸다.

분명 김밥 사세요!랑 같은 말인데

그 말을 들은 내 귀는 금세 따뜻해졌다.

머릿속에 그림 하나가 그려졌다.

이른 새벽 서울 변두리 낡은 연립주택.

둥그런 프로판 가스통이 아슬아슬 벽에 붙은 꼭대기 층.

아직 밖은 깜깜하지만 그 집 창에선 꽤 오래전부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불빛과 함께 어떤 소리도 새어 나온다.

따각따각, 차르륵 차르륵. 그리고 가끔 깔깔 웃는 소리.

안으로 들어가 본다.

밖으로 새어 나온 불빛은 식탁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갓을 쓴 백열등이다.

백열등 아래에 두 사람이 보인다.

조금 전 내 귀를 따뜻하게 만들어준 아주머니와 그녀의 딸이다.

두 사람은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아 김밥을 싸고 있다.

딸은 계란과 단무지를 열심히 썰고

엄마는 그것을 돌돌 말아 김밥으로 완성하는 분업.

그 따뜻한 그림이 머릿속에 잔잔히 그려졌다.

...

나는 아주머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지갑을 열었다.

엄마와 딸이 마주 앉은 그 따뜻한 그림을 사기로 한 것이다.

아주머니는 내게 김밥 두 줄을 건넸다.

그러나 그것은 김밥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사람이라는 재료가 단무지나 계란보다 훨씬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뜻했다. 그녀의 새벽에 그대로 내 손에 전해져왔다.

-210~212쪽, 22위 밥 가운데.

 

그렇다.

그의 책을 읽는 내내 한 가지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단어는

'사람'이었다.

 

그는 8위로 뽑힌 사람의 부제를 이렇게 달았다.

- 정철이라는 사람이 책을 쓰는 이유.

그리고 거기다 두 줄을 덧붙였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 셋을 내게 물었다면

사람, 사람, 사람이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 273쪽.

 

 

이 책의 가장 큰 힘은 작가의 뛰어난 관찰력도,

유쾌함과 진지함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글빨도 아니다.

바로 저자가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에 대한 희망과 기대.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과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나는 무엇을 꼽을까, 하고

잠시나마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지금까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는 '자유'가 아니었나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

내가 살고 싶은 데서 살 자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

아이를 낳을 자유,

여행을 할 자유,

마음대로 사랑할 자유,

행복할 자유.

 

마침 이 책을 읽은 건 아이가 무척 아플 때였다.

물론 지금은 내 아이, 자식이 제일 먼저다.

사실 우선 순위의 문제지, 저 50가지의 단어 중

우리 인생에서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물론 1순위로 무엇을 꼽아야 한다는 당위성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얼마나 자주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다듬고, 발전시키고,

고마워하며 살아가는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작가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어느 연령대에나 다 "그냥 괜찮은" 책이지만

특히 20대 초반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가장 좋은 시절이므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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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9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리즈 2014-02-23 17:13   좋아요 0 | URL
라일락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수술 부위는 잘 아물어가고 있어요.
참 여러가지 일을 겪은 올 겨울,
우리 모두 더욱 단단해지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그간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다음 기수에도 도전을 해볼까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남자를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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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가 스물한 살, 그가 스무살 때부터 만났다.

연애한 지 만 7년 째 되던 해 봄 결혼을 했고,

새해가 되었으니 올해로 결혼한지 7년째에 접어들었다.

 

나의 책,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그 세월 동안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은

기복이 심한 굴곡선을 그려왔다.

 

맨 처음, 나는 내 스스로가 유치찬란하다고 느껴질 만큼 그에게 집착했다.

하긴, 이것이 사랑이구나, 하는 걸 처음 느꼈으니 눈이 뒤집힐 만도 했다.

 

하루 종일 그의 생각에 정신이 없었고,

어떻하면 그가 나에게 더 안달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보고싶다고, 그립다고, 더 사랑해 달라고,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도도하게, 센 척 하며 기선제압을 하고 싶었지만

애초에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울고 불고 매달리고 질척거리며

그렇게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결혼을 한 뒤, 그가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한 뒤 상대방이 변했다고 화를 내는데,

내가 화가 나는 건 바로, 그의 한결같음이었다.

 

여전히 틈만 나면 오락을 했고,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운다거나,

남편으로서 의무 같은 것을 고민해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나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결혼한 여자'로서 나에게 부과된 모든 일들, 예를 들어

퇴근한 뒤 몇 시간씩 집안 일을 하고,

시댁의 경조사를 챙기는 일들이 무의미해졌다.

나만 희생하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다행인 건, 우리가 여행중이라는 거였다.

그것도 텅 빈 황무지가 대부분인 거대한 대륙, 호주를.

몇날 며칠 똑같은 풍경을 보며 계속 달리는 캠핑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드디어 '대화'를 나누었다.

도대체 연애를 하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진짜 우리, 각자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는 나의 불만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그릇들을 부딪혀가며 큰 소리를 냈던 것이

그를 향한 분노의 표출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 이유는 또 얼마나 허망한지!

바로, 내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헤어질 뻔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대화'의 힘이었다.

해법치곤 너무 간단해서 허망하기까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많은 요인은

이 대화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특히 남녀 관계에서 더욱 그렇다.

여자는 남자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고,

남자는 여자가 직접 말해주지 않는 이상,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형경 작가의 <남자를 위하여>, 부제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는

남자, 여자 모두가 숙지해두면 좋을 '남자'들의 속성 내지는

결핍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남자에게 최초의 여자는 엄마라던가,

그래서 헌신적으로 사랑해주고 보살펴주는,

이상화된 엄마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한다던가,

남자에게 남자는 (심지어 아버지조차) 경쟁자라던가,

섹스는 남자들이 모든 감정과 욕구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창구라던가,

남자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는 것 등.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새로운 게 아니다.

유명해서 식상하기까지 한 오이디푸스 신화가 등장하고,

해외의 심리 상담 사례들을 인용하는 것도

기존의 심리학 책들의 패턴과 비슷하다.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가정, 특히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한사람이 생을 두고 사용하는 생존법과 생의 목표는

대체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성격이란 유아기부터 부모에게 잘 의존하기 위해 만들어 갖는 생존법이다.

정체성의 절반은 부모에게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고,

생의 목표는 대부분 부모의 꿈이거나 부모가 채워지지 못한 것들을

보상받고자 하는 노력이다"

- 남자의 관계 맺기, 86쪽.

 

"남자들이 그토록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유아기에 받은 애정의 양과 관련이 있다.

충분히 사랑받은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

사랑받는 것이 당연하고,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며,

심지어 부모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잘못 태어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다.

자기가 집안에 필요한 존재인지, 부모에게 유익한 자식인지 거듭 되묻고 확인한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부모를 돕는다."

-남자의 관계 맺기, 87쪽.

 

결국 제대로 된 남자, 아니 인간을 길러내는 일은

(대부분) 부모에게 달린 셈이다.

문제라면 아이를 좋은 어른으로 길러내야 할 주체인 부모가

애초부터 '너무도 다른' 남자와 여자의 조합이라는 것.

 

저자가 지적한 대로,

 

"...남녀는 원래 관계 맺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유아기부터 쌓아온 애착, 결핍, 분노, 환상 등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 있다.

남녀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그 사이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끼어든다.

페니스나, 반대 성의 부모나, 지하 칠층보다 더 깊은 무의식까지.

성적 관계, 그런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열정은

집요하고 격정적으로 반대 성을 추구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관계는 더 어려워진다."

-남자의 열정 사용법, 137쪽.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만난 지 14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싸우고,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르다는 것, 서로 안에 내제된 결핍을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것,

그리하여 열심히 대화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

애초에 극과 극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일 테니 말이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내가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느꼈던 건,

그가, 우리의 결혼생활이 완벽하리라는 환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결핍, 더불어 나의 부족함을 깨닫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나는 좀 더 그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안에 내제되어 있던 상처를 보듬어주고

새 살이 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나도 그렇게 위로받고 싶었다.

 

"남녀가 사이 좋게 지내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각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한 생존법, 성격의 왜곡된 측면을 알아차려 각자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면의 불편이 해소되고 관계가 개선된다.

자기 마음이나 행동은 볼 줄은 모르면서 상대방을 원망하더 태도가

바로 문제의 핵시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더 큰 사회든 똑같은 원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남자의 삶과 변화, 326쪽.

 

그렇다.

우리는 제일 먼저 자기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각자 어른이 되어야 한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바로 나, 자신에게서 시작되므로.

우리 삶은 결국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므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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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서른살 워홀러 부부의 호주 일주 여행기>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떨리고 설레고 긴장되고 숨고만 싶습니다.

 

책을 쓰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무척 간단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겪은 호주의 아름다움에 대해,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로서의 치열한 젊은 날에 대해,

무엇보다 권태기를 맞은,

오래된 연인이자 부부가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느꼈던 얼얼한 감동과 기쁨을

하나도 빠짐없이 글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아마 호주여행을 준비하고 있거나,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마음 먹은 분들이

관심있게 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디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그리고 젊음과 패기를 든든한 빽 삼아, 다양하고 값진 경험을 하는데

저의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관심가져주시는 분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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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 서른살 워홀러 부부의 호주 일주 여행기
안정숙 지음 / 책구름 / 2013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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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4-01-06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에 남긴 글을 보고 책 출간을 예상했는데, 첫 책을 출간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이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책도 출간 예정으로 알고 있는데, 바쁜 중에도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리즈 2014-01-07 13:27   좋아요 0 | URL
네 지난 연말에 나왔는데, 신생출판사의 첫 책이다보니 여러가지가 미숙하고 느리기만 합니다.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드려요.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서 좋은 분들을 만난 것도 저에겐 참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또 인사드릴게요.
청말의 해,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남희돌이 2014-01-08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예쁘네요. 승승장구하시길 빌겠습니다. 책을 내시다니...대단해요^^

리즈 2014-01-10 11:50   좋아요 0 | URL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막상 나오고 보니 아쉬운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네요.
격려와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리코짱 2014-01-1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책 출간 축하합니다!^^

리즈 2014-01-10 11:51   좋아요 0 | URL
알라딘 신간평가단 분들의 응원을 받으니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네요.
리코짱님 고맙습니다~~^^

hannangi 2014-01-2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 읽을수록 사랑이 스며드는 책!! 오랜만에 만나는 제대로된 책^^

리즈 2014-02-23 19: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 마음, 두고두고 갚으며 살게요^^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그 때는 꽤 한가했지,

 

하고 기억될 만한 순간이 과연 있을 지 모르겠다.

밀려왔다가 떠나가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파도처럼,

한 가지 큰 일이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이내 다른 일이 시작되고

때론 내가 나서서 쉴새 없이 주변을 북적이게 만들기도 했다.

 

알라딘 13기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했던 지난 6개월.

 

서울을 떠나 전남 화순으로 이사를 했고,

첫 아이가 돌을 맞았으며,

퇴고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우리에게 두번째 천사가 찾아왔다.

그리고 예정대로, 나의, 우리의 첫 책이 출간됐다.

 

틈만 나면 원고 수정을 해야 했고

그 틈을 다시 쪼개 아이와 놀고 집안 일을 하느라

사실 책 한권 제대로 읽기 힘들만큼 바빴다.

자연에 묻어 살고 싶어 산골마을로 들어갔건만,

앞마당에 조차 나갈 여유가 없던 날들이 숱했다.

 

마감 전 날부터 헐레벌떡 리뷰를 작성할 때마다

좀 더 정성을 다해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내가 직접, 내 글을 쓰는 시기라 그랬겠지만

작가, 기획자, 편집자, 출판사의 심정까지 헤아려지다보니

누군가의 글을, 책을 고르고 평가하는 일도 고역이었다.

 

그러나 한달에 한 번,

내 이름 앞으로 배달되는 신간 에세이 두 권을 손에 쥘 때마다 난 얼마나 기뻤던가.

그 즐거움을 더이상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서운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애닯고 애틋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그 마음을 담아 한 권의 책을 골랐다.

 

 

 

<눈물>, 최인호, 여백, 2013, 12

 

어줍짢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았다.

글을 쓴다는 건, 올바른 생각을 하고,

삶을 제대로 세워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감히 상상해 본다.

끝까지 '작가'로 남고 싶었던 그의 마음은

끝까지 제대로 살고 싶은 인간의 고뇌가 아니었을까, 하고.

 

 

“오늘은 2013년 새해 첫날입니다. 아이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주님, 제게 힘을 주시어 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수 있게 하소서.

주님은 5년 동안 저를 이곳까지 데리고 오셨습니다. 오묘하게.

그러니 저를 죽음의 독침 손에 허락하시진 않으실 것입니다.

제게 글을 더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시어 몇 년 뒤에 제가 수십 배,

수백 배로 이자를 붙여 갚아 주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본문 261쪽

“저는 주님에게만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진실로 인정받고 칭찬받고 잊히지 않고 싶은 분은 오직 단 한 사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만년필을 잡은 제 손 위에 거짓이 없게 하소서.

제 손에 성령의 입김을 부디 내리소서.”
-본문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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